이 글은 <표류사회: 한국의 여성 인식사>라는 책자로 제작될 예정입니다. 현재 책자 제작을 위해 텀블벅에서 펀딩이 진행 중입니다. 일제 식민사관과 산업화시대의 폐단으로 왜곡된 현재의 전통문화/가족문화의 원형을 밝히고, 당당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갔던 한국 역사 속 여성문화와 양성조화의 문화를 밝히는 데 앞장서는 책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책에는 이보다 더 알차고 많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
https://tum.bg/3TZQII
17세기 반계 유형원은 ‘조율시이’로 18세기 다산 정약용은 ‘조율이시’로 설명하고 있다.
두 학자의 학식으로 미루어 볼 때 둘 중 누가 틀렸다고 보기는 힘들다. 조선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질 좋은 제철 과일이 ‘대추·밤·배·감’이었기에 그런 것들을 올리면 된다는 예시로 제시된 것으로 보인다.
20세기에 와서 아이들에게 쉽게 제사를 가르치기 위해 만들어진 습례국(예를 익히는 판)이란 놀이판에서 ’조율이시‘를 수학 공식처럼 사용하고 있다. 어린이 대상 행사에 동요를 틀거나 청소년 대상 행사에 아이돌 노래를 트는 것은 그것이 대체로 무난하다는 뜻이지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다. 제사상의 공식들 또한 마찬가지다. 대체적으로 그렇게 따라 하면 무난하다는 의미일 뿐, 반드시 그렇게 하라는 뜻은 아니다.
즉, 상황에 따라 종류와 방식을 바꿔도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본질을 지키는 것이다. 형식과 말단을 고집하면서 궁극의 목표와 본질을 해하는 것이야말로 미련한 짓이다.
노나라 계씨가 제사를 지내는데 날이 어두울 때부터 지내느라 참여한 이들이 피곤해 했다.
공자의 제자 자로는 밝을 무렵에 제사를 시작하여 아침 늦게 마치고 물러났다.
공자는 늦은 제사로 참여자들을 나태하고 불경하게 만든 계씨보다 차라리 간략하게 하여 경건한 마음을 지키게 한 자로를 칭찬했다. 공경한 마음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주자의 스승격인 장횡거 역시 꼭두새벽에 제사 지내는 것은 예가 아니라 했다. 하지만 주자는 전날 기물 등을 엄숙히 준비해 두었다가 날이 밝을 무렵에 제사를 시작해 일찍 마쳤다고 한다. 조선 주자학의 거두인 우암 송시열 역시 제사의 때는 ‘밝을 무렵’[質明: 새벽녘]이 적당하다고 했다.
오늘날 제사 풍속을 보면 간혹 하루가 시작하는 자시(子時: 오후 11시~오전 1시)에 제사를 지낸다며 밤 12시에 지내기도 한다. 심지어는 자시가 시작하는 전날 밤 11시에 지내는 경우도 있다. 이유를 물어보면 조상귀신이 제삿밥을 얻어먹고자 제삿날이 시작되는 자시부터 집에 와 계신다는 다소 황당한 대답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유교나 주자학적 시각으로 보자면 그런 생각은 조상을 ‘올바르지 못한 귀신’으로 대하는 모독에 불과하다. 또한 예법의 본질과도 맞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