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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정 Jun 30. 2021

6. 한국 여성사를 보기 위한 첫걸음

우리 철학은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본 글은 2021년 10월 20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창작지원금과 텀블벅 펀딩의 후원금으로 (도)아이필드에서 <표류사회: 한국의 여성 인식사>라는 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책에는 더욱 흥미로운 내용이 가득합니다.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동양을 넘어 한국 사상의 원형을 보는 것이
오늘날 묵은 전통으로 인해 생겨난
모든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된다.


| 우리 문화의 뿌리

옛날, 현 중국 대륙에는 자주 대립하던 두 민족이 있었다. 하나는 동이족(東夷族)이었고 다른 하나는 화하족(華夏族)이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자신들을 화하족·한(漢)족이라 부르며 천하의 중심[中]이자 문명의 꽃인 대중화(大中華)로 자처했다. 주변국들은 모두 오랑캐라 부르며 자기들 멋대로 이름을 붙였는데, 동쪽 민족은 동이(東夷), 서쪽 민족은 서융(西戎), 남쪽 민족은 남만(南蠻), 북쪽 민족은 북적(北狄)이라 불렀다.

 화하족은 특히 문화 강국이자 예에 밝은 동이족을 ‘군자국·대인국’이라 경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동쪽의 오랑캐라 부르며 적대시했다. 그래서 동이족의 이(夷) 자를 그들은 ‘오랑캐 이’라고 새겼다. 자고로 화하족은 동이족을 같은 민족, 같은 문명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동양 삼국의 오랜 역사 속에서 동이족은 늘 한(漢)족과는 다른 ‘이(夷)족, 한(韓)민족’으로 존재해 왔다.

그렇다면 그들이 본 동이족의 나라는 대체 어떤 나라들이었을까? 중국의 대표적인 역사서 『삼국지』와 『후한서』에는 「동이전」이란 장이 따로 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동이 국가들은 부여, 고구려, 동옥저, 예, 한(韓), 왜 등이었다. 전통적으로 우리 역사로 여겨진 나라들과 거의 일치한다.

동이족의 유물은 신석기 유적에서부터 보인다. 초기에 동이족이라 불리던 사람들은 무수한 부족국가로 나뉘어 방대한 지역에 펼쳐져 살았다. 당시의 국가 개념은 지금처럼 정확한 국경과 명확한 소속감을 느끼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곳의 통치자가 포악하게 굴면 저 나라로 떠나갔고, 저곳에 더 풍요로운 땅이 있다면 그곳으로 향했다.

수많은 동이의 부족국가들은 시간이 흐르며 크고 강력한 몇 나라로 통합됐다. 그중 우리와 인연이 깊은 나라로 대개 두 나라를 꼽을 수 있다. 바로 현재 중국 대륙에서 번성했던 상나라(=은나라)와, 대륙의 동북쪽에 위치했던 고조선이다.

오랫동안 중국은 상나라를 전설 속의 나라로, 고조선은 한무제 시절 한사군의 지배하에 있던 변방 오랑캐로 취급했다. 중국의 사관들은 집요하게 고조선사를 깎아내리려 노력했다. 덕분에 고조선사는 모화사대주의를 선택한 후대의 조선왕조에 의해 분서갱유를 당하고, 황국신민화를 도모한 일제에 의해 단군 ‘신화’로 전락하면서 더욱 그 실체를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 결과 우리 민족은 늘 중국과 일본에게 지배당해 온 뿌리 없는 민족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우리 역사책의 제일 앞장은 고조선사 한두 쪽 정도로 끝나 버리고 만다. 그렇게 우리가 고조선사를 스스로 신화나 미지의 역사로 치부하는 사이, 중국은 기록에만 등장하는 전설 속 역사를 치밀하게 연구하며 중화민족의 우수성과 유구함을 포장하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동북공정으로 위기에 처한 한국의 원형 문화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큰 문제가 생겼다. 중국은 일찍이 세계 4대 문명으로 알려진 황하문명을 자신들의 기원이라 주장해 왔다. 그런데 1900년대, 대대로 오랑캐의 땅으로 치부했던 만주와 만리장성 북쪽 요서 지방에서 당혹스러운 유물이 연이어 출토되었다. 나아가 연대 고증 결과는 당혹감만으로 끝낼 수 없는 의문을 세상에 던졌다. 유물들은 황하문명보다 천 년 이상이나 앞섰음에도 더 뛰어난 선진 문명이었던 것이다. ‘홍산문화’ 등으로 불리는 대륙 동북쪽의 유적들은 황하문명 기원설을 뒤집으며 동북 지역을 고대사의 성토장으로 만들어 갔다.

이후 중국에서는 이 유적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할지, 다양한 주장들이 난립했다. 마침내 중국 정부는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이라는 설을 전면에 내세웠다.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이란, 현재 중국 영토 안에 있는 모든 민족과 국가의 흥망사는 모두 중국의 역사라는 주장이다. 그리고 고대사 문제를 더욱 명확히 줄긋기 위해 붓과 칼을 빼어 들고 수십 년간 대공정에 착수했다.

1996~2000년까지 중국은 ‘하·상·주 단대공정’이라는 국가급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200여 명에 달하는 학자들, 그리고 30여 개의 연구기관들이 동원되어 옛 기록 속에만 존재하던 하나라, 상나라, 주나라를 공식 역사로 만들어냈다. 그리하여 기존에 동양 최초의 문명으로 언급되던 황하문명의 최초 시작 연대보다 무려 1,229년이나 끌어올려 확정지었다.

2001년부터는 하·상·주 단대공정보다 더 앞선 시대인 ‘삼황오제’라는 신화 속 시대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이름하여 ‘중화문명 탐원공정(探源工程)’으로, 중화문명의 근원을 탐구한다는 명목으로 시작됐다. 황화문명보다 최소 1천 년 이상 앞선다는 요하문명을 중화민족의 기원이자 세계 최고(最古)의 문명으로 자리매김하려는 프로젝트다. 하지만 요하문명은 고조선의 강역과 겹쳐 있고, 동이족의 유물이 대거 출토되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 그러자 중국은 ‘동이족은 현재의 중국 대륙에 살았던 민족이므로 곧 중화민족의 시조다’라는 논리를 펼쳤다. 그리하여 동이족을 자신들의 조상으로 만들고 상고사 시작 연대를 장장 1만 년 전으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고조선, 발해, 고구려가 있었던 동북쪽 3개 성(요령성, 길림성, 흑룡강성)의 역사를 중국 역사로 끌어들이려는 작업이 바로 2002년부터 시작된 동북공정(東北工程)이다. 동북공정으로 인해 고조선사, 발해사, 고구려사는 중국사로 편입될 위기에 처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요하문명이 고조선 및 삼국의 유물과 비슷하다는 점을 들어 고조선의 유적이라는 주장도 분분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 고조선사는 단군신화로 여겨지기 일쑤라 잊을 만하면 단군상의 목이 잘리고, 중국의 ‘단대공정-탐원공정-동북공정’에 대응하는 우리 학계의 연구 또한 더디기 그지없다. 덕분에 오늘도 중국은 동북공정과 함께 만리장성을 동쪽으로 연장해 가며 발해, 부여, 고조선, 고구려사마저 중국의 역사로 바꿔 가고 있다.           


| 우리 문화의 원형을 애써 찾아야 할 이유

역사를 보는 여러 관점 중에 ‘나선형 순환 사관’이라는 것이 있다. 역사는 돌고 돌며 진보한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 시원문화의 원형과 변화 과정을 올바로 안다면 앞으로의 발전 방향 또한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과 중국은 엄연히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이기에 다른 전통과 가치관을 갖고 있다. 같은 동아시아권에서 유교·불교·도교의 역사를 공유하고 오랫동안 다양한 교류를 통해 섞여 왔다. 하지만 그래도 한국인과 중국인은 근본적인 가치관이 다르다. 다른 가치관은 다른 신념을 만들고, 다른 신념은 다른 문화를 만들며, 다른 문화는 다른 제도를 만들어 결국 다른 ‘인간’을 만든다. 그것이 바로 민족성이라는 것이다.

중국의 가부장문화는 우리가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홍익인간의 평등문화와는 완전히 달랐다. 현재 한국의 가부장제도는 유교와 성리학의 가치관에 일본의 이에[家] 문화까지 덧붙여져 우리 역사의 굴곡과 함께 목적과 방향을 잃은 문화가 되었다. 다양한 것이 혼란스럽게 뒤섞여 좋은 향은 다 날아가고 형식만 남은 껍데기, 그것이 바로 현재의 ‘한국식 가부장제도’이다. 우리가 가부장문화의 전성기라 여기는 조선 시대도 차라리 현대보다는 양성평등적이었다. 그리고 더 이전인 고려 시대, 삼국시대는 그보다 더 평등했다. 바로 우리 한민족의 정신적 원형이 홍익인간이라는 ‘평등’의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이 5·4운동 등을 통해 유교식 가부장제를 도려내고 남녀평등문화를 만들고자 노력하는 동안, 우리는 오히려 평등문화를 도외시하며 한국식 가부장문화를 숙성시켜 갔다. 그 결과 오늘날까지도 명절이면 남의 전통을 우리 전통이라 믿으며 지키려는 세대와, 그것에 이질감을 느끼며 변하려는 세대 간에 갈등이 불붙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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