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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정 Jun 29. 2021

5. 전통규범과 예절은 무엇을 위함인가?

본 글은 2021년 10월 20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창작지원금과 텀블벅 펀딩의 후원금으로 (도)아이필드에서 <표류사회: 한국의 여성 인식사>라는 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책에는 더욱 흥미로운 내용이 가득합니다.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가부장 질서의 핵심 원리 |


가부장 사회에서 가정은 오직 부계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그런 가부장 질서의 핵심은 ‘구별’과 ‘서열화’이다. 즉 가장과의 혈연적 거리와 성별로 서열이 정해지고 그에 따라 역할이 달라진다. 이때 집안에서 가장 낮은 서열이 바로 ‘며느리’이다. 따라서 가부장적 가족문화는 ‘남성 가장’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가정의 평화를 위해 모든 걸 참아야 하는 건 며느리가 된다. 남편과 자식을 위한 삶, 집안일과 육아 도맡기, 시댁에서의 상하 관계와 암묵적인 봉양의 강요, 심지어는 남편의 외도 문제마저 ‘가정을 위해 여자가 참으라’는 조언이 등장하곤 한다. 한 사람만 참고 포기하고 헌신하면 일단 가정은 유지된다. 따라서 가정의 평화를 위해 ‘참을 인(忍)’ 자 백 번을 새기라는 말은 ‘아내 = 며느리 = 엄마’가 될 딸에게 전하는 안쓰러운 미담이 된다.      

사실 가정폭력, 가정과 사회의 성차별, 서열화 문화 등 여러 악폐가 가부장적 사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가부장적 가족문화로 인해 상처받고 힘들어하던 사람들에게 ‘변화는 요원하다’라는 절망감은 미래를 함께 할 의지마저 지워 버린다. 여기에 성격 차이나 폭력 등 다른 복합적인 요인이 가세하면 그 흐름은 더 빨라진다. 명절을 통해 그런 절망을 확인하고 반복하다 결국 ‘매년 명절 후 이혼율 증가’라는 사회적 기현상을 만들어낸다.          

 


 | 예법의 본래 정신 : 예는 시속에 맞게 고쳐가는 것 |


그렇다면 그렇게 불편하고 힘든 명절 풍속도를 우리는 왜 반복하는 것일까?

그것은 기성세대에게 자리 잡은 전통에 대한 잘못된 믿음 때문이다. 본래 전통이란 대대손손 지켜 갈 가치가 있는 아름다운 ‘정신’을 말한다. 하지만 예법의 형식만을 전통이라 믿은 많은 어른들 덕분에 시대와 맞지 않는 여러 전통 예법의 껍데기가 전통이란 이름으로 이유도 모른 채 반성 없이 반복되고 있다. 예법이 만들어진 본래의 이유와 지속해 온 까닭을 모르기에 막상 무엇이 잘못됐다고 느끼더라도 무엇을 어떻게 바꿔 가야 할지 난감한 것이다. 그렇다면 기성세대가 그토록 지키고자 하는 명절 풍속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현재 사용하는 대부분의 명절 풍속은 대개 유교식 예법을 따른다. 본래 유교의 예학이란 유교 사상의 꽃이자 열매였다. 오랫동안 유교의 예학은 우리 문화와 전통을 만들어 왔다. 지금도 혼례, 상례, 제례, 명절 문화 등에 유교 의례를 사용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유교 하면 무조건 고리타분하고 나쁜 것이라고만 생각한다. 하지만 유교의 본질은 본래 그런 것이 아니었다. 보통 ‘예법’이라고 하면 허례허식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예법이야말로 사람 간의 원만한 일생생활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예(禮)란 사람들이 때와 장소에 맞게 인정(人情)을 올바로 표현하도록 도와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슬픔이 가득한 초상집에 가면 어떻게 처신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운 적이 한 번쯤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 고민할 필요 없도록 상황에 적절한 행동과 도리에 알맞은 표현을 딱 정해 놓은 것이 바로 예법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정해진 예법에 따라 행동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더불어 예법을 따르며 적절한 마음 표현법을 배워 간다. 그것이 바로 예법의 존재 이유이다. 

그리고 그런 유교 예법의 핵심은 바로 ‘시의적절성’(時宜適切性)이다. 즉, 시대의 정신과 사람들의 인정과 풍속에 맞추어 ‘올바른 마음을 올바르게 표현하게 하는 것’이 예의 핵심이다. 그런데 시대정신과 인정은 시간이 흐를수록 변하는 것이다. 이에 ‘융통성 있는 변화[權道]’는 예법의 생명이 된다. 따라서 시대와 인정에 맞게 변하지 못하는 예는 죽은 예법이 된다. 즉 형식만을 고수하는 예법은 잘못된 예법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유교와 예학의 좋은 점은 다 잃어버리고 껍데기인 형식만 붙잡고 있는 것이 현재 우리의 모습이다. 의미도 모른 채 겉모습만 고수해가다 보니, 예의 본질인 시의적절성과 변화는 이미 사라져 버린 지 오래다. 이것은 옳은 예가 아니다. 이것은 유교도 아니고 전통도 아닌 그저 무지가 만들어낸 고집과 아상에 불과하다. 

사상이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밑그림이자 추동력이다. 하지만 때에 맞지 않는 사상은 사람의 정신을 병들게 한다. 집집마다, 가족들 모두가 함께 웃고 행복하려면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시대의 사상을 고쳐가야 할 것이다. 가족들을 서로 아프게 만드는 잘못된 형식은 벗어 버리고, 진정으로 지켜야 할 본질적인 가치를 찾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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