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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정 Jun 29. 2021

3. 여성에게 결혼이란?

본 글은 2021년 10월 20일 (도)아이필드에서 <표류사회: 한국의 여성 인식사>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책에는 더욱 흥미로운 내용이 가득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여성에게 결혼이란?|


자기 성장을 즐기는 연주와 자유로운 생활을 좋아하는 주헌은 부푼 꿈을 안고 결혼을 했다. 그렇게 다른 두 사람은 서로의 다른 점에 이끌렸고, 더욱 오랜 시간 함께 있고 싶어 결혼을 했다. 그리고 결혼을 축하하는 양가 가족의 미소가 더욱 환해지리라 믿으며 결혼식장을 들어섰다. 


새댁이 되어 일상으로 복귀한 연주에게 주변의 결혼 선배들은 경쟁이나 하듯 결혼 소감들을 쏟아냈다.


‘아! 결혼이란 건 말이야. 연애할 때 상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것 같아.’

‘사랑하는 사람과 더 많이 함께하고자 결혼했는데, 왜 더 멀어지는 느낌일까?’

‘그 사람과 결혼한 게 아니라 그의 집안과 결혼한 것 같아.’

‘여자에겐 왜 이렇게 불합리한 관습과 제약들이 많을까?’

‘결혼하니 왠지 더 초라하고 무능력해진 것 같아.’     


결혼한 선배들이 푸념을 쏟아낼 때마다 연주는 그저 딴 세상 이야기로만 들었다. 다 사람 사는 곳인데, 마음을 열고 열심히 살다 보면 모든 관계는 당연히 잘 유지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저 남의 일인 듯 멀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연주는 모두가 향하는 거대한 흐름을 거스름 없이 따라갔다. 남편과 시어른들의 사랑과 기대에 부응하고자 누구보다 열심히 ‘관습’이란 정해진 길을 성실하게 따라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이상한 일이 생겼다. 명절, 제사 등 시댁과 함께할 때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합리함에 왜인지 모를 답답함이 쌓여 갔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을 곱씹어 보려 하면 마음 한편에서 이유 없는 죄책감과 원인 모를 불편함이 밀려들었다. 다들 그렇게 잘 살아가는데 마치 자신만 투덜이 스머프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연주는 불만과 답답함이 솟아오를 때마다 애써 자신의 감정을 외면했다.           



| 결혼 후 바뀐 것들 |

퇴근 후 집에 가는 것은 마치 집안일을 하러 새롭게 출근하는 느낌이었다. 서둘러 저녁을 차려 먹고 나면 청소, 빨래, 다림질, 쓰레기 버리기 등 집안일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 하지만 남편은 설거지만 해 주고는 내내 소파와 한 몸이 되었다가 은근슬쩍 방으로 가 버렸다. 미혼일 때는 멋진 요리를 자랑하던 남편이 이제는 설거지에도 생색을 냈다. 마치 부엌일은 처음부터 연주의 일이었다는 듯. 

서운한 것은 남편으로 끝나지 않았다. 시어른들도 주헌의 생일 전날엔 ‘아들이 무슨 음식을 좋아하니 꼭 해 주라’며 챙기셨지만, 연주의 생일에는 축하인사로 시작하다 결국은 남편 잘 챙기라는 말씀으로 끝이 났다. 

명절이나 중요한 날에는 은연중에 친정보다 시댁이 우선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시댁에만 가면 자연히 앞치마가 유니폼이 되었다. 양가를 모두 가야 하는 명절이 되면 차라리 회사에 있는 것이 더 편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더 바빠졌다. 서둘러 시댁에 도착하면 온종일 주방을 지키다가 시누이 내외가 도착하고 나서야 그들의 밥상을 차려 주고 겨우 친정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특히 힘든 것은 제사였다. 

제사가 다가오면 시어머니는 아들 주헌이 아닌 며느리 연주에게 전화해서 일정을 상의했다. 결국 연주는 늘 반차를 내고 주헌보다 먼저 시댁으로 출발해야 했다. 

그중 유난히 서운했던 건 부모님의 생신 문제였다. 연주는 전날부터 시댁에 가 손수 정성 가득한 생신상을 차렸지만, 친정엄마 생신날에는 당일에 모여 간단한 외식으로 끝이 났다. ‘전날 가겠다’는 연주의 말에 친정엄마는 ‘사위 힘들 텐데 뭘 일찍 오니?’라며 단호히 거절하기 일쑤였다. 그러고는 오히려 사위가 좋아하는 반찬과 과일들을 미리 준비해 두었다가 돌아가는 길에 바리바리 실어 주셨다. 사위는 백년손님, 며느리는 백년일꾼이라는 말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아이 문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빨리 아이를 낳고 싶었던 부부는 산전 검사를 하다가 주헌에게 약간의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주변 사람들은 모두 연주에게만 건강한 음식을 먹고 몸을 따듯하게 하라는 둥, 어디 한의원이 좋다는 등의 이야기를 해댔다. 다들 아이가 안 생기는 원인은 당연히 여자인 연주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 워킹맘이 된다는 것  |

짧은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할 때만 해도 연주는 남편과 같은 회사에 다닌다는 사실이 정말 든든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연주의 기대는 점차 무너져 갔다. 어린이집 종료시간에 맞춰 아이를 찾아오려면 칼퇴근을 해야 했고, 조금이라도 늦는 날엔 어린이집 선생님께 죄인이 된 듯 미안해졌다. 어린 식구가 하나 늘었을 뿐인데 퇴근 후 해야 할 일은 몇 배로 많아졌다. 어른과 달리 아이와 관련된 일은 넘치고 넘쳤다. 분유 타기, 기저귀 갈기, 트림시키기, 재우기, 놀아주고 달래주기, 그리고 넘쳐나는 빨래들…. 

그 와중에 신기한 것은 아기에게 반응하는 ‘몸’이었다. 아이가 울면 엄마는 멀리 있더라도 자동으로 몸이 움직였다. 하지만 아빠는 잘 듣지도 못할뿐더러 느릿느릿 일어나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한 가지 주문을 외워대기 일쑤였다. 

“여보! 애 울어, 어떻게 해?” 

마치 육아는 처음부터 연주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능력이라는 듯이.  

갑작스럽게 아이가 아프거나 어린이집에 행사가 있으면 연주는 아껴둔 연차를 썼다. 하지만 한창 회사일이 바쁠 때 어린이집 방학이나 휴원 등이 생기면 연주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갔다. 아이 맡길 곳을 찾으러 종종대는 것은 대부분 연주의 몫이었다. 결국 주헌에게 휴가를 쓰라고 닦달해 보지만 주헌은 회사에 눈치 보인다며 슬며시 연주에게 미룰 뿐이었다.


어느 날 연주는 회사 화장실에서 우연히 미혼 후배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연주 선배 정말 양심 없지 않냐? 그렇게 매일 칼퇴근하면서도 하필 제일 바쁠 때 연차를 써 버리냐? 저번 주에 피크였는데 선배가 안 와서 나 혼자 정말 힘들었어.”

“그런데 오늘 선배 독감 걸린 거 같지 않니? 얼굴도 열나듯이 벌겋고 계속 기침하던데?”

“독감 유행이라던데…. 옮기면 어쩌려고 이럴 땐 연차를 안 내? 독감 검사라도 하러 가야 하는 거 아냐?”

“병원에 갈 반차도 안 남았을 걸?” 

“정말 아줌마 되면 다 그렇게 되는 걸까? 난 결혼하면 그런 민폐녀는 되지 말아야지.”     


결국 연주는 얼마 후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회사일도 가사도 육아도 모두 엇박자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지쳐 버리고 말았다. 선배들의 딴 세상 얘기 같던 결혼 생활 푸념들이 이제 자신의 이야기가 된 것을 느끼며 연주는 고개를 흔들었다. 세상은 빨리 변해 가는데 가족문화는 왜 이렇게 느리게 변하는지, 맞벌이가 대세인 시대에 여성이 마음 편하게 일하기는 왜 이렇게 버거운지 야속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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