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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정 Jun 29. 2021

4. 서양의 페미니즘은 동양에서도 유효할까?

서양과 동양의 여성을 바라보던 시각 차이

본 글은 2021년 10월 20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창작지원금과 텀블벅 펀딩의 후원금으로 (도)아이필드에서 <표류사회: 한국의 여성 인식사>라는 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여성을 바라보는 서양의 관점  

서양과 동양의 사회철학은 사상적 뿌리가 다르다. 즉, 드러난 모습은 똑같은 가부장적 모순이지만 그 이면에 작동하는 사상과 시스템에는 차이가 있다. 때문에 서양의 페미니즘을 우리 사회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같은 현상을 보고 비슷하게 논한다 해도 내면에서 작동하고 있는 가치와 인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 잠시 서양과 동양의 남녀를 바라보는 관점의 뿌리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서양 문명은 그리스 문명과 성경을 빼면 올바로 논할 수 없다.

우선 그리스 문명과 그들의 여성관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그리스는 아테네와 스파르타라는 양대 도시국가가 있었는데 많은 면에서 달랐다. 아테네는 민주정이 발달했지만 스파르타는 주변 지역을 정복하고 지배하는 강력한 군사 사회였다.

아테네의 여성들은 반(反) 남성적인 존재로서 미성년자와 같은 취급을 받았다. 여성은 집 안에서 필요한 물품을 만들고 시민 남성을 출산하는 존재들일 뿐이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며 가내수공업에 매진했고, 집에서도 남성들과 분리되어 생활했다. 대개 집안에서 불편하거나 창 없이 어둡고 비위생적인 곳이 여성들의 거주지가 되었다. 여성들은 아버지, 남편, 아들 등 남성 후견인을 통해서만 무언가를 할 수 있었고 투표권은 물론 재산조차 독자적으로 소유할 수 없었다. 여성의 불임이나 외도는 이혼 사유가 되었으나, 남성들은 얼마든지 첩을 둘 수 있었고 이혼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남성만의 권리였다.



반면 스파르타의 여성은 군사력의 기반이자 전사를 낳는 중요한 존재였다. 수준 높은 교육뿐 아니라 어느 정도의 경제력과 사회권을 인정받았다. 군사 활동과 신체 훈련에 참여하며 사냥을 즐기기도 했다. 독자적으로 토지나 재산을 소유·관리할 수 있었고 자유로운 연애도 가능했다.

오늘날 서양 문명의 근간이 된 것은 대체적으로 아테네의 문화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인류에게 재앙을 선사한 것이 여성이었듯, 그리스인들에게 여성은 딱 그런 존재였다. 남성들만의 완벽한 이상 세계를 질투한 신에 의해 뒤늦게 만들어진, 선천적으로 우매하며 질투가 많아 늘상 재앙을 만드는 존재, 그리하여 늘 남성의 관리하에 있어야만 하는 존재, 그것이 바로 여성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성경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담의 갈빗대로 만들어진 종속적 존재이자, 뱀의 꼬임에 빠져 아담을 타락시키고 인간을 에덴동산에서 고통의 세계로 끌어내린 원죄자가 바로 아담의 여인 하와였다. 이처럼 서양 문명 속의 여성은 그 기원에서부터 남성의 종속물이자 재앙과 화의 근원으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여성은 필연적으로 남성의 관리와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그리고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서양의 가부장제는 펼쳐져 나갔다.


| 여성을 바라보는 동양의 관점


한편 동양의 사상은 어머니를 중심으로 하는 모계 씨족집단으로부터 출발했다. 고대로부터 여성은 음(陰)이자 땅인 생명의 근원으로 여겨져 신성시됐다. ‘성씨’의 성(姓)이란 글자는 여자[女]를 품고 있다. 고대 동양에서는 어머니를 중심으로 부족을 형성했고 부족원들은 어머니의 성을 공유했다. 그리고 초기에 성은 모계로 전해졌다. 그래서 강(姜)씨, 희(姬)씨 등 동양의 오래된 성씨들은 글자에 여자[女]라는 글자를 붙여 썼다. 이처럼 동양에서의 여성은 곧 생명의 근원이었다.

나아가 세상 모든 것을 상대성이 있는 구조로 파악했는데, 예를 들면 ‘세상은하늘과 땅’, ‘인간은 남자와 여자’, ‘온도는 뜨거움과 차가움’, ‘방향은 앞과 뒤’ 등 서로 상반된 양면으로 나뉘어 있다는 식이다. 이렇게 상반된 성질을 더 근원적으로 살펴보면, 뜨거워서 확장하는 성질인 ‘양(陽)’과 차가워서 응축하는 성질인 ‘음(陰)’으로 나눠 볼 수 있다고 이해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이처럼 상반된 음양의 성질을 한 몸에 다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음양(陰陽) 중에서 음을 모든 것의 근원이자 돌아가야 할 기원으로 보아, 음을 항상 양 앞에 두고 음적인 것을 귀하게 여겼다.

음과 양은 서로를 추구하며 계속 돌고 돌며 변화하는데 이것이 생명의 근본 원리가 된다. 순환하지 않는 것은 변하지 않고, 변화하지 않는 것은 유지하지 못한다. 즉, 계속 생명이 이어지려면 음과 양은 끝없이 서로를 향해 돌고 돌며 순환하고 조화를 이뤄가야 한다. 마치 남녀가 조화를 이루어야 새 생명이 태어나고 인체 안의 따뜻하고 찬 기운이 잘 순환해야 건강이 유지되는 것과 같다.  


 도교에서도 ‘여성성’을 연단(煉丹, 鍊丹)의 기본 원리로 삼았다. 신선이 되려면 남녀불문 여성(어머니)의 몸처럼 되어 단(丹)을 낳고 기르는 수련을 해야 했다. 유교에서도 음의 방위인 북방과 음의 덕목인 지(智: 지식, 지혜)를 근본으로 보아 사람이 죽으면 머리를 북쪽으로 두고, 사람을 기를 땐 앎[智]을 우선으로 두었다.


이렇듯 동양에서 보는 남녀란 곧 음양으로서 상반된 성질을 가지면서도 동일한 존재이다. 즉 동양은 여성을 신성시하는 데서 출발했고, 남녀는 동등하며 서로를 보완하고 이뤄주는 조화의 관계로 본 것이 특징이다.


동양 가부장제의 밑바탕에 깔린 남녀관은 이처럼 시작부터 서양과는 다르다. 그리고 그것은 사상이란 이름으로 문화와 관념의 깊숙한 곳에 내재되어 그 가치에 맞는 규범과 제도를 만들어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규범과 제도를 논할 때, 오랫동안 내재된 정신적인 것들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문제의 근원을 살펴야 올바른 해결책을 제시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나무의 뿌리 상태를 알아야 줄기의 방향을 바꿀 수 있고, 강의 수원지로 거슬러 올라가 봐야 오염원을 찾아낼 수 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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