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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정 Jun 29. 2021

2. 여성문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본마음

* 참고 : 본 브러치의 글들은 <표류사회 : 한국의 가족문화와 여성 인식의 변화사>(가제) 라는 이름으로 2021년 9월 말 경에 출간되기로 하였습니다. 


| 지금은 과연 여초 시대인가?


여성은 오래전부터 사회적인 약자로 규정되어 왔다.

그래서 여성을 위한 우대정책도 지속적으로 등장했다. 여성 할당제, 생리휴가, 여성 전용 휴게실, 안심귀가 서비스, 버스와 지하철의 여성 전용칸이나 임산부 전용 좌석, 여성 전용 주차장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의 여권은 많이 높아졌고 오히려 여성이 우대받는 여성 천국 같아 보인다.  

그뿐인가?

연말연초, 취직과 이직 철이 되면 ‘여초 시대’란 키워드가 유독 자주 보인다.

과거에는 공무원, 대기업, 전문 직종 등 양질의 일자리는 거의 남성의 일이었다.

그래서 높은 연봉을 받는 고위직, 전문 직종과 고급 외제차는 오랫동안 남성적인 이미지로 굳어졌다.

반면 시간제 계약직, 비정규직, 저임금 일자리는 여성의 일이라는 암묵적인 편견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여러 분야에서 비율이 거의 비슷해지고 있다. 

대학 진학률도 취업률도 공시나 전문 직종 자격시험의 합격률도 남성과 여성의 비율이 거의 엇비슷해지고 있다. 초등 교사나 사회복지사, 9급 공무원 등 특정 분야에서는 여성이 남성을 앞지르는 모습마저 보인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뉴스에선 어김없이 ‘여초 현상’이라는 단어로 사람들을 자극한다.

하지만 남성 중심 사회였을 때는 남성이 과반수를 차지했어도 ‘남초 현상’을 운운했던 적이 없다.

사실을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오랜 남초 시대의 끝’이나 ‘남녀 비율이 비슷해지고 있다’라고 해야 옳은 것 아닐까?



 | 양성평등기 문화적 과도기가 낳은 길 잃은 분노


말은 생각을 정의한다. 그리고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이 우리말이다.

같은 현상이라도 관심을 끌기 위해 사용하는 어떤 표현은 쓸데없는 불안감과 경쟁심을 조성하는 감정 소모식 자극이 된다.  실제로 이런 말들이 가뜩이나 경쟁이 심하고 여러모로 어려운 젊은 세대를 자극한다.

남성이기에 안정적으로 보장될 수 있었던 자리가 여성의 진출로 더는 보장받지 못하게 된 불안함, 아버지 세대는 당연히 누리던 가부장으로서의 혜택과 권리를 자신은 누릴 수 없다는 불만감, 사회에 만연한 성 고정관념을 무심코 따라할 때 쏟아지는 비난과 갑작스러운 데미지에 대한 당혹감, 의식은 아직 양성평등에 익숙지 못한데 제도와 정책은 급속히 변하는 데서 느껴지는 역차별감, 가부장적 성 역할, 고정관념이 만들어낸 남성성에 대한 기대와 과도한 책무로 인한 불합리함, 기존에는 별 문제의식 없이 해오던 당연한 행동들에 문제가 제기되는 것에 대한 불편감.

가부장적 문화에서 양성평등문화로 향하며 나타나는 과도기적 불완전함들은

남성과 여성 모두를 불편하고 불안하게 만든다.

특히 남녀 문화에 대한 차이가 더욱 컸던 기성세대와 신세대와의 가치 차이도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그런 긴장감 속에서 분노의 불똥은 엉뚱한 곳으로 튄다.

여혐이나 남혐 같은 특정 대상을 향한 혐오문화로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남성과 여성'이 아니라, ‘사람을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드는 관념과 제도’이다. 즉,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은 사회구조를 만드는 관념과 제도이다. 하지만 달을 보지 못하고 손가락만 보다가 엉뚱하게도 여혐, 남혐 같은 피해자들끼리의 물고 뜯기로 끝나고 만다. 더 심하게 나가면 여성이라는 이유로 ‘묻지마 살인’을 저지르거나, 자신의 아버지를 보고 ‘한남충’이라며 모욕하기도 한다.  


| 여성을 바라보는 우리의 진짜 속마음은?


1967년 하버드대 스탠리 밀그램(1933~84)이라는 심리학자에 의해 행해진 ‘좁은 세상 실험’이라는 것이 있다. 그는 네브래스카 거주자 160명을 무작위로 뽑아 소포를 전달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소포의 주인은 보스턴에 거주하는 부동산 중개인이라는 사실과 이름만 알려준 채 말이다. 소포가 뿌려진 네브래스카에서 보스턴은 자동차로 온종일 가야 하는 2,525km나 떨어진 곳이다. 게다가 1967년은 지금보다 사람들 이동도 적고 교통편도 느렸던 시절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무려 42개의 소포가 보스턴의 중개인에게 무사히 도착했다. 밀그램은 소포가 몇 단계의 손을 거쳐 도착했는지를 알아보았다. 그랬더니 평균 5.5명의 손을 거쳐 중개인에게 도착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한 연구에 의하면, 인터넷 등으로 지구촌이 촘촘히 연결된 현재는 4단계만 거치면 지구촌 인류가 모두 연결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평균 3.6명 정도만 거치면 모두가 연결된다고 한다. 

이처럼 세상은 좁고, 나와 상관없어 보이는 사람조차 4명 정도의 인맥만 거치면 모두 연결된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더 큰 세상을 보게 된다.

여초 현상, 알파걸의 약진, 여권 신장 시대라는 화려한 겉모습 뒤에서 사회경제적인 성 불평등과 불안에 고민하는 여성들은 나와 동떨어진 남이 아니다. 불평등의 그늘 속에 빠진 그녀들은 바로 우리의 딸, 여동생, 누나이자 어머니이다. 우리 사회와 가정의 절반을 이루고 있는 ‘우리의 반쪽’들이다. 오늘도 딸을 둔 여느 부모들은, 자매를 둔 여느 가족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바랄 것이다. 딸이, 여동생이, 누나가, 어머니가 사회에 나가 차별받지 않고 능력과 노력한 만큼 활짝 피어나길 말이다.

그것이 우리 모두의 깊숙한 곳에 자리한 진정한 본마음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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