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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정 Jun 30. 2021

8.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의 유래

본 글은 2021년 10월 20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창작지원금과 텀블벅 펀딩의 후원금으로 (도)아이필드에서 <표류사회: 한국의 여성 인식사>라는 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책에는 더욱 흥미로운 내용이 가득합니다.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동양의 원조 요녀, 달기 이야기  |

 여성과 정치에 대해 말할 때 자주 쓰는 말로 경국지색이란 말이 있다. 경국지색이란 나라를 기울게 할 정도의 미모라는 뜻이다. 약속이나 한 듯 나라의 멸망사에는 꼭 경국지색이 등장한다. 상나라의 달기, 주나라의 포사, 오나라의 서시, 당나라의 양귀비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우리나라에도  연산군의 장녹수, 광해군의 김개시, 숙종의 장희빈 등이있다. 이 여인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똑똑하고 아름다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상 ‘아름답고 똑똑한 여자’는 위험하다고 치부되어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에는 ‘원조’가 있다. 바로 상나라의 달기 이야기이다.     


상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왕은 30대의 젊은 나이에 왕 위에 올랐다. 젊었지만 대단한 인재였다. 그래서 금세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의 야망은 곧 그 이상을 넘어다보았다. 주왕은 부왕의 꿈을 이어 정복 전쟁에 온 힘을 쏟았다. 상나라는 노예가 최고의 생산력이자 재산이었기에 정복 전쟁은 곧 최고의 생산 활동이었다. 하지만 상나라의 동북쪽에는 훨씬 더 오래되고 강성한 동이 국가인 고조선이 있었고, 동쪽에도 강력한 아홉 개의 동이족 국가가 있었다. 마치 고구려, 신라, 백제가 같은 민족이면서도 오랜 시간 팽팽히 힘을 겨루었고, 현재는 남한과 북한이 서로를 대적하듯 상나라도 그런 상황이었다. 그리고 주왕은 선왕들이 넘보지 못하던 일을 시도했다. 동쪽 산둥반도의 강성한 동이 국가들과 빈번하게 전쟁을 일으켰다. 덕분에 주왕의 시대에 상나라의 영토는 최대로 커졌으니, 그는 상나라의 광개토대왕 같은 영웅이었다. 



그런 주왕에게 정복당한 제후 중 유소씨라는 이가 항복의 뜻으로 주왕에게 금지옥엽 딸 달기를 바쳤다. 달기는 아름다웠을 뿐만 아니라 매우 총명해서 정치에도 많이 참여했다고 한다. 하지만 후대의 기록에는 그녀의 행적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음란하고 매우 엽기적으로 묘사됐다. 

달기는 연못에 술을 채우고 [주지: 酒池], 나뭇가지마다 고기 안주를 걸어 숲처럼 쌓아 [육림: 肉林], 벌거벗은 남녀들이 서로 쫓고 쫓기는 사랑놀음을 만들었다. 일명 주지육림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포락(炮烙)이란 형벌도 만들었다. 구덩이에 숯불을 채우고 기름칠을 한 구리기둥을 얹어 죄인을 기둥 위로 걷게 했다. 기둥 끝까지 무사히 가면 죄를 사해 준다며 자비를 가장했지만 기둥에 기름칠을 한 탓에 모두 숯불 위로 떨어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주왕을 꼬드겨 7년간 10만의 인부를 동원해 녹대(祿臺)라는 보물창고도 지었다. 이곳에 각국 제후의 진상품과 진귀한 보물을 쌓았는데 그 높이가 자그마치 1,000척이나 됐다고 한다. 1,000척은 303미터에 해당하니 부산 해운대의 80층짜리 건물보다 2미터나 더 높은 셈이다. 


달기에게 푹 빠진 주왕은 조회에도 나오지 않고 폭정만 일삼아 결국 나라가 피폐해지고 점점 인간쓰레기로 변해 갔다고 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서쪽 변방에서 일어난 주나라 무왕에 의해 상나라는 하루아침에 멸망하고 주왕의 왕후였던 달기는 처형당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주왕은 상나라가 멸망시킨 하나라의 마지막 왕인 걸왕과 함께 폭군의 대명사로 3천 년이나 회자되었다. 역사상 수많은 붓 끝에서 ‘걸주(桀紂) 같다’는 표현은 최고의 욕이었다. 또한 오늘날까지도 달기는 소설·영화·만화·게임·드라마 등을 통해 아름답고 치명적인 요녀의 대명사로 묘사되고 있다.             


| 나라를 일으키려면 똑똑한 여자를 없애야  |

그런데 사실 달기의 죽음에는 많은 상징과 비밀이 녹아 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다. 주왕과 달기 역시 새로운 역사를 쓰기 위한 희생양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몰락은 단지 한 왕조가 문을 닫는 데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패러다임과 문화의 시작을 가져왔다. 주왕의 몰락은 오랜 모계 중심 사회의 몰락이었고, 달기의 참수는 여성의 대외 활동에 대한 참수였다. 그리고 주왕과 달기를 처단한 주나라의 시작은 곧 남성 중심, 부계 중심의 서열 사회인 동아시아 가부장 문화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이런 비의(秘義)는 곧 시답잖은 야사로 묻혀 사람들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끝만 보도록 몰아갔다. 야사에서 달기는 매우 아름답지만 결국 인간보다 못한 요괴로 그려졌다. 구미호의 둔갑이었던 달기는 참수를 하려는 젊은 망나니들까지 번번이 홀려서 사형 집행은 계속 실패했다. 그래서 끝내 늙은 고자와 노파까지 동원해서야 겨우 목을 벨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달기의 잘린 목은 오래도록 길가에 내걸려 ‘아름답고 똑똑한 여성이 정치에 참여한 최후’를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그 상징은 3천 년이 지난 현대인의 뇌리에서도 여전히 작동한다. 아름답고 똑똑한 여성이 큰일을 하거나, 대담한 말을 할 때마다 여기저기서 내뱉는 혼잣말들을 듣게 된다.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더니. 역시 여자가 문제야. 예쁜 여자는 위험해. 주변 놈들이 동의하는 건 미인계에 홀려서일 거야.”      

    

| 동아시아 가부장 문화의 시작 : 주나라 |

모든 문제의 탓을 여성에게 돌리는 ‘암탉’이란 만능키는 상나라의 마지막 왕후인 달기의 몰락사에서 비롯되었다. 어머니를 중심으로 모여 생활하던 상나라는 남녀 간 직분의 차이 외에 별다른 남녀 차별은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여성이 대외 활동을 하거나 남녀가 함께 일하는 것이 문제 될 게 없었고, 왕후들은 왕과 함께 전쟁에 나가고 정사를 행하며 나라의 중요한 일들을 처리했다. 상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왕과 왕후 달기 역시 상나라의 전통적인 모습대로 열심히 살다 간 사람들이었다. 

실제로 이렇게 오랫동안 역사에 최고의 악명을 높인 달기와 주왕의 악행 기록은 상나라 멸망 이후 약 천 년쯤이나 지나서야 등장하기 시작한다. 동시대 기록인 갑골문에는 악행이 발견되지 않는다. 최근의 갑골학 연구에 의하면, 오히려 갑골문에 묘사된 주왕은 대단한 명군이었다고 한다. 이 시기 상나라는 최고로 넓은 영토를 자랑했고, 경제적으로도 중흥기를 맞이해 백성들의 추앙도 대단했다고 한다. 또 후대 기록과는 달리 제사 기록도 압도적으로 많았고, 기존에 행해 왔던 인신공양(사람을 제물로 삼는 것)을 폐지한 것도 주왕이었다고 한다.

달기 또한 마찬가지다. 그녀에 관해 가장 자세히 기술된 명나라의 장편소설 『봉신연의』는 달기가 본래 선하고 인자한 성품이었다고 말한다. 또한 아름답고 춤과 노래를 잘하며 말재주와 기교가 뛰어난, 매우 총명한 여성이었다고 묘사한다.    

2020년도에 개봉한 영화 봉신방. 달기를 구미호로 묘사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 가부장 국가, 주나라의 시작  |

그런 달기가 요녀의 원조가 된 과정을 이해하려면 상(은)나라와 상을 멸망시킨 주(周)나라의 관계를 이해해야 한다. 주나라는 중국 화하족이 자신들의 뿌리라 일컫는 나라이다. 본래 주나라는 상나라의 서북에 위치한 부족국가였다. 그곳은 매우 척박했기에 주나라는 항상 비옥한 땅을 확보하려는 욕망이 있었다. 하지만 상나라를 넘보기에 주나라는 너무 작고 약했다. 그래서 주나라 왕들은 대대로 상나라에 충성을 바치며 서북방의 강한 적들을 막아내는 신하 역할에 안주했다. 상나라 역시 주나라의 방어선 역할이 중요해지자 상나라의 왕녀들을 시집보내 관계를 굳건히 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상나라와 주나라는 오늘날의 한국과 중국처럼 너무나도 다른 문화를 가졌기에 끝내 물과 기름처럼 진정으로 합해질 수는 없었다. 

           

|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의 유래  |

그러던 어느날 주나라  무왕은 서남방의 제후들을 연합해 대규모 군사를 일으켰다. 상나라 수도로 향한 무왕은 왕성 앞 목야라는 곳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끌고 온 40만 군사들에게 (중국사에서 중요한 의미로 해석되는) ‘목야의 맹세’를 힘껏 외쳤다.      


“내가 맹세하리라! 옛사람이 ‘암탉은 새벽에 울지 않아야 하니, 암탉이 새벽에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했다. 

이제 상나라 임금 주(紂)가 오직 부인의 말만 따르고, 어리석게도 지내야 할 제사를 버려두고 신께 보답하지 않았다. 

어리석게도 숙부들을 버려두고 등용하지 않았다. (…) 

이제 나는 하늘이 상나라에게 내리시는 벌을 공경히 집행하노라. 

힘쓰라! 그대들이여! 너희가 힘쓰지 않으면 너희 몸에 죽임이 있을 것이다!”


신하였던 무왕은 하늘을 대신해 주왕을 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첫째, 바로 주왕이 오직 부인인 달기의 말만 듣고 정사를 행했다는 것이다. 상나라는 어머니를 중심으로 모여 경제생활을 하던 씨족연합체 부족들이 수평적으로 통합된 나라였다. 그리고 당시는 모계의 성(姓)을 사용하던 모계 중심 문화가 많이 남아 있던 시대였다. 게다가 지배층과 백성, 정복민과 정복된 노예 정도의 차이 외에는 사람 사이에 큰 서열이 없었다. 이런 문화 속에서 당시 여성과 남성의 지위는 큰 차별 없이 엇비슷했다. 그래서 여자도 관직을 맡는 등 대외 활동을 했고, 가족문화도 외가·친가·처가·시가 등을 수직적으로 구분하는 주나라와 달리 매우 수평적이었다. 따라서 유능한 왕후인 달기와 그녀의 인척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상나라에선 큰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주나라는 모든 권력이 남성에게 집중되는 남성 중심적 부권 사회였기에 여자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더욱이 부계 친족들을 버려두고 외가나 처가의 인척들을 등용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둘째는, ‘지내야 할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상나라에선 역대 왕과 왕의 어머니[王母]들이 사후 조상신이 되어 하늘신 상제(上帝)와 함께 인간사를 주관한다고 믿었다. 때문에 제사의 대상은 주로 역대 왕과 왕모들, 그리고 훌륭한 인물[先公]들이었다. 게다가 왕의 할머니를 위한 특별 제사까지 있었다. 하지만 주나라는 오로지 ‘부계 질서’에만 맞춰 제사했다. 그래서 신분 서열이 엄격했고, 왕실의 부계 쪽 남자 조상만이 제사 대상이었다.

셋째, 숙부들을 요직에 등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상나라는 씨족사회를 기반으로 한 부족국들의 연맹체였기에 모계 중심 문화와 수평적 인간 관념이 많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주나라는 남성 중심의 부계 질서와 지배·종속의 서열 관계, 그리고 신분의 차별을 중시하는 ‘종법 사상’의 창조국이었다. 

예를 들면, 주나라는 천자와의 부계 혈연 촌수를 따져서 신분과 지위가 결정됐다. 천자의 큰아들이 천자 지위를 세습하고, 나머지 아들들은 제후가 되어 주변국들을 다스렸다. 제후의 큰아들은 제후를 세습하고, 나머지 아들들은 경·대부가 되어 정사를 보았다. 이런 식으로 천자와의 혈연이 얼마나 가까우냐에 따라 신분과 지위가 결정됐다. 따지고 보면 지배층들은 모두 주나라의 천자와 혈연이든 지연이든 모종의 관계가 있는 자들이었다. 아무 관계도 없는 자들은 평민이었고 등 돌린 자들은 노예였다. 즉 주나라에서 신분과 지위를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금수저 핏줄’이지 능력이 아니었다. 때문에 왕실의 부계 혈연인 숙부들을 요직에 등용하지 않았던 상나라 왕실의 처사는 이해할 수 없는 패륜이었다. 마치 우리나라 1970~90년대에 회장님의 남동생들을 제치고 처남들이 부회장이나 사장이 되었을 때 사람들이 보였을 반응과 비슷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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