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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정 Jun 30. 2021

여자는 모든 화의 근원

여화론(女禍論)의 유래

* 참고 : 본 브러치의 글들은 <표류사회 : 한국의 가족문화와 여성 인식의 변화사>(가제) 라는 이름으로 2021년 9월 말 경에 출간되기로 하였습니다. 


| 상나라의 멸망과 주나라의 시작 |

주나라의 40만 대군을 상대하기 위해 나온 상나라의 군사는 70만에 달했다. 거기에 이름만 들어도 위협적인 강태공이 100인의 결사대를 이끌고 선두에서 길을 뚫었다. 하지만 상나라의 주력 부대는 마침 정벌지에 나가 있었기에 주왕은 노예를 모아 70만 군사를 급조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주왕의 군사들 중 일부는 오히려 무기를 거꾸로 향하여 자기들을 잡아 온 아군을 공격했다. 덕분에 주나라보다 훨씬 큰 규모를 자랑하던 상나라 대군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이때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 무거운 절굿공이가 흐르는 피에 둥둥 떠다녔을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아침에 시작된 궁궐 침입은 시시하게도 하루 만에 끝나 버렸다. 

상황이 쉽지 않음을 느낀 주왕은 보옥으로 장식된 용포를 걸치고 왕궁에 불을 질렀다. 그리고 가장 높은 녹대 위에 올라가 주나라의 군사들을 내려다보며 뛰어내렸다. 왕으로서 죽을지언정 주나라에게 무릎 꿇을 수는 없다는 의미였다.

상나라를 쓰러뜨리긴 했지만 무왕은 내심 머리가 더 아팠다. 소국이자 신하국으로서 왕이 있는 대국을 치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게다가 아직 상나라를 따르는 제후도 많았다. 그뿐인가? 백성들은 상나라 왕이 죽으면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 신이 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기습이 성공해서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빨리 명분을 세우지 않으면 조만간 주변 다른 제후들이 달려올 것이 뻔했다. 

그래서 무왕은 제일 먼저 상나라 왕실의 종묘로 허겁지겁 뛰어갔다. 상나라 신들을 모신 곳에 수많은 이들을 모아 놓고, 주왕의 잘못과 자신의 대의를 미주알고주알 고하고 나서야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상나라는 작은 주나라가 장악하기엔 너무 큰 나라였고 문화마저도 강국이었다. 그래서 무왕이 세운 주나라는 후대까지도 상나라의 종묘와 주나라의 종묘를 함께 모셔야만 했다. 민심은 상나라를 쉽게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 나라와 집안을 망하게 한 책임은 여자에게 |

주나라는 상나라를 치며 제일 큰 명분으로 ‘여성인 달기의 정치 참여’를 문제 삼았다. 그리고 상나라 멸망의 모든 책임을 달기에게 전가했다. 달기는 여성들을 집안에 가두기 위한 좋은 구실이 되었다. 이후 그녀는 ‘화를 부르는 요녀’의 원조이자 ‘암탉’의 원조가 되어 동양 삼국의 역사에 각인되었다. 이처럼 여자가 모든 화의 근원이라는 논리를 어려운 말로 ‘여화론’(女禍論)이라 한다. 주나라 무왕이 상나라를 치며 제후들 앞에서 늘어놓은 명분은 이후 왕조가 바뀔 때마다 비슷하게 이용되었다. 

어느 왕조든 제때 쇄신을 못하면 부패의 늪에 빠져 망국의 길로 치닫게 마련이다. 하지만 나라가 망하는 원인이 왕과 정사를 홀린 여자 때문이라는 정론은 시간이 갈수록 고금의 진리가 되어 갔다. ‘오월동주’라는 고사성어로 잘 알려진 오나라는 월나라가 보낸 미인 서시(西施) 때문에 오나라가 망했다고 믿었다. 당시 오나라의 대신은 왕에게 이렇게 간언하기도 했다.       


아름다운 여자는 국가의 화근입니다. 

하나라는 말희 때문에 망했고

은나라는 달기 때문에 망했으며

주나라는 포사 때문에 망했습니다. _『오월춘추』     


하지만 과연 상나라, 주나라, 오나라가 경국지색인 달기, 포사, 서시 때문에 망한 걸까?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란 말이 있다. 승자의 입장에서 쓰여 승리의 정당성을 세워야만 하기에 패자는 당연히 망해야 할 쓰레기로 그려진다. 그 많은 나라가 어떻게 여자 하나 때문에 망했겠는가! 망할 조건이 갖춰졌으니 망한 것이다. 여자는 그저 약점을 감추기 위한 근사한 명분이었을 뿐.       

   

  

| 서양은 마녀사냥, 동양은 미인사냥  |

이렇게 만들어진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은 3천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훗날 가부장제가 자리 잡으면서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로도 발전했다. 하지만 어느 시대, 어느 곳에나 진실을 보는 눈은 있는 법, 당나라 말 나은(羅隱, 833~909)이란 시인은 이런 시를 지어 풍자하였다.      


국가의 흥망은 스스로 때가 있거늘

오나라 사람들은 어찌하여 서시만 원망하는가?

만약 오나라를 망하게 한 게 서시라면

월나라를 망하게 한 건 또 누구인가?     


송나라를 개혁시키고자 변법을 주장한 왕안석(王安石, 1021~1086)도 〈재상 백비[宰嚭]〉라는 시를 지어 여자를 망국의 원인으로 핑계 삼는 것을 꼬집었다.       


본래 모사꾼 신하에게 나라의 안위가 매여 있는 거지요.

천첩을 어찌 화의 근원이라 하시나요?

부디 군왕께서는 재상 백비를 베십시오.

궁궐에 서시가 있다는 걱정일랑 마시고요.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에 가보지 않은 다음에야 달기가 진짜 어떤 여인이었는지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 사람들은 언제나 희생양을 찾는다는 것이다. 희생양에게 모든 잘못을 돌려야 남은 자들이 평안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나치게 말 잘하고 똑똑했던 달기는 상나라를 망하게 한 이유가 되었다. 그리고 상나라의 ‘모계와 여성 존중’ 문화를 끝맺는 일벌백계의 상징이 되었다. 이후 달기의 목은 주나라의 길가에 오래도록 내걸려 정치에 나서는 여성의 말로가 어떻게 되는지 많은 이에게 각인시켰다. 그리고 그 이름은 수많은 유학자의 손을 거쳐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부인은 집안에서 음식을 주관하는 자이니 오직 술, 밥, 의복의 예만을 일삼을 뿐이다. 나라에서는 정치에 간여시키지 말아야 하며, 집안에서는 집일을 주장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만일 총명하고 재주와 지혜가 있으며, 지식이 고금에 통달한 부인이라도 마땅히 남편을 보좌하여 부족한 점을 보충하는 정도만 권유할 뿐이다. 절대로 암탉이 새벽에 울어 화를 초래하게 해서는 안 된다.” 

 (중국 남북조시대 유명한 학자인 안지추가 지은 안씨가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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