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 온종일 노르웨이 하이킹 하기
노르웨이의 작은 마을 오다에 온 두번째 날, 이번 여행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일정으로 생각했던 트롤퉁가에 가는 날이 되었다. 결전의 날을 위해, 전날 저녁 마트를 방문해 트레킹을 하며 먹을 간식을 충분히 준비했다. 출발하는 날 조식을 먹으면서 밀폐 용기에 점심 식사용 음식을 충분히 담아 준비했다.
사실 아침 조식 공간에서 점심 도시락을 챙기는 것은 굉장히 기분이 묘하다. 다들 눈치껏 샌드위치 하나 정도 만들어서 냅킨으로 싸는 것 정도는 묵인해 준다는 암묵적 합의가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부모님과 함께 락앤락통을 하나씩 담고 영양소를 고려하여 음식을 전투적으로 담고 있으니 돈을 내고 허락을 맡았음에도 에도 뭔가 시선이 신경 쓰인다. 그나마 조식 공간에 사람이 많지는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침 일찍 출발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일찍 일어나 트롤퉁가 입구까지 가는 버스를 탄다. 맨 뒷자석에 일렬로 부모님과 앉아 있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버스를 사람들이 채워서, 시내 버스 만한 크기의 버스가 만석이 된다. 우리 가족 말고 다른 한국인도 있는 것 같고, 앞앞자리 영어 억양을 몰래 따라하며 친구에게 짖궂은 장난을 치는 외국인도 있다. 시간이 된 버스는 사람을 가득 태우고 트롤퉁가 입구의 주차장까지 간다.
트롤퉁가에 가기 위해서는 오다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트롤퉁가 주차장까지 간 다음, 그곳에서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비수기에는 버스가 없어서 택시를 타고 가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성수기에 간 나는 부모님과 함께 무리 없이 버스를 타고 주차장까지 갈 수 있었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은 트롤퉁가 주차장에서 시작되는 비탈길을 따라 걸어가기 시작한다. 우리도 저기 가야 하는것 아니냐는 부모님의 말에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잠깐 기다리면서 주위 둘러 보시라고 말한 뒤, 앞쪽 산악용품점에서 바람막이를 하나 빌린다. 아침의 짧은 추위지만, 조심해서 나쁠건 없을테니까.
이전 영상이나 기록들을 보면 원래 트롤퉁가 주차장에서 본격적인 트레킹 코스가 시작되는 산 위쪽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비탈길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최근 이곳에 도로가 새로 생겼는데, 이 도로를 오가는 버스가 생겼다. 나는 이 버스를 알게 되어 예약을 했고, 시간이 되어 작은 봉고차를 타고 부모님과 함께 비탈길을 올라간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을 앞지른 봉고차는 순식간에 언덕 위쪽에 승객들을 내려놓는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도로를 내려다보니, 예약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버스회사 사장은 순식간에 부자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버스에서 내려서 바로 앞쪽 길을 따라서 걸어가기 시작한다. 구름 한점 없는 맑은 날씨에 주위 구경을 하면서 천천히 걷는다. 비탈길을 넘어서고 나면 트롤퉁가 코스 초입부는 아주 완만한 수준의 오르막길이라 평지를 걷는 수준이다. 넓은 평지에 바위와 풀, 나무들이 물웅덩이와 함께 흩어져 있고 군데군데 나무집이 있다. 멀리 있는 산맥들 위에는 한여름인데도 눈이 남아 있다.
평지가 끝나고 나면 약간은 가파른 돌 언덕길이 나온다. 만약 비탈길을 걸어서 올라 왔다면 두 번째 고비가 될 것이다. 꽤 가파른 언덕길을 끝까지 계속 걸어 올라가야 하는데, 주위에 나무도 없는 거대한 돌언덕을 올라가야 하기에 꽤 힘들게 느껴진다. 하지만 등산을 좋아하는 한국인이라면 크게 힘들지 않고 꾸준히 올라가면 문제 없는 수준이다. 돌 언덕을 다 올라가고 나면 큰 호수와 함께 돌로 이루어진 평지가 나온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돌바닥 중 괜찮은 곳을 골라서 부모님과 함께 간식을 먹으며 쉬었다.
중간중간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지 트롤퉁가에 갈 수 있는지 알려주는 표지판이 있다. 표지판을 지나쳐 조금 가면, 골짜기 너머의 높은 산에 조금씩 가까워져간다. 중간중간 깨끗한 물이 흐르기 때문에 물이 필요하다면 흐르는 물을 받아서 먹을 수도 있다. 돌 비탈길을 오르고 나면 이전처럼 높은 비탈길을 올라야 할 필요는 없다. 완만한 언덕길을 종종 올라야 하는 경우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힘들지 않다.
계속해서 걸어가다 보면 골짜기 아래쪽에 있는 호수가 드러나서 보이기 시작하는데, 여기까지 오면 중반을 넘어갔다고 보면 된다.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장소가 명소인지 이 근처에서 캠핑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텐트에서 조금만 더 내려가면 깎아지른 절벽인데 용감하다 생각도 들지만, 텐트 속에서 이 절경을 구경하는 것도 잊지못할 추억이겠다 싶다.
다른 짧은 하이킹 코스들 같은 경우는 중간에 화장실을 안 갈 수도 있지만, 트롤퉁가 같은 경우는 시간이 못해도 12시간이 걸리고 중간에 물을 마실 수 밖에 없기에 화장실을 가는 일이 생긴다. 보통 중간 트레킹 코스에서 거리가 있는 절벽 사람들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자체적으로 처리하는 편이다. 근처에 휴지가 많이 쌓여 있어서 알 수 있다. 자연을 위해서 화장실이라도 만들어 놓으면 어떨까 싶은 아쉬움이 남았다.
가다 보면 시멘트 구조물까지 있는 큰 호수가 나오는데, 여기까지 오면 거의 다 왔다고 보면 된다. 얼음 녹은 물이 모였다고 보기에는 꽤 큰 호수가 있는데 이곳에서 수영을 하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다. 물은 정말 차갑고 맑아서, 꽤 멀리 있는 호수 바닥까지 선명하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조금만 더 가면, 드디어 트롤퉁가에 도착한다! 표지판에는 절벽 2미터 이내로 가지 말고 구조물 끝에 걸터앉지 말라고 되어 있고, 그 어떤 안전장치도 없이 절벽이 그대로 있기 때문에 매우 조심해야 한다. 인터넷에서 한번쯤은 봤을지 모르는, 절벽 위로 바위 구조물이 마치 트롤의 혀 마냥 튀어나온 이 장소가 바로 트롤퉁가 이다. 성수기에는 사람들이 많이 몰리기 때문에 상징적인 사진을 찍고 싶다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멀리서 보면 바위가 아주 작아 보이는데, 가까이 가 보면 생각보다 바위가 커서 보는 것만큼 위험하지는 않다. 그래도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이기에 정말 조심해야 한다. 트롤퉁가 바위 뒤쪽으로도 절벽이 있는데 비슷하게 작게 튀어나온 바위가 있다. 미니 트롤퉁가라고 부른다나. 근처에서 사진 찍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부모님과 점심을 먹었다.
하고 싶은 구경을 모두 마치고 내려온다. 이상하게 길가에 피어 있는 들꽃과 풀들에 더 시선이 간다. 어디에서 어디로 잇는지 모를, 나무로 된 엄청 오래 된 전봇대도 다시 보인다. 묘하게 올라올 때와 내려올 때의 풍경이 다른 것 같지만, 둘 다 아름다운 것은 똑같다. 내려오는 도중에 공무원인듯 보이는 젊은 사람이 빠른 속도로 트롤퉁가 방향을 향해 걸어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너무 멀어서 물어보지 못했지만, 아마 해 지기 전에 도착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라고 말하기 위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드디어 초입부의 비탈길까지 도착했다. 내려오는 버스는 예약하지 못했기에, 내려가는 길은 그냥 비탈길을 돌아 걸어서 내려온다. 사실 길이 힘든 것은 아니지만 낮은 비탈길을 좌우로 반복하며 똑같은 광경을 보고 그저 내려오기만 하기에, 상대적으로 엄청나게 지치는 느낌이 든다. 트레킹 마지막 일정까지 다 와서 체력을 모두 소진해서 그런가. 내려가는 것도 이렇게 지치는데 올라오는 것은 얼마나 힘들었을지. 다시 한번 버스를 예약한 것이 천만 다행이다.
그렇게 트레킹을 마치고, 부모님과 함께 다시 버스를 타고 오다로 돌아온다. 해가 저무는 오다의 산 너머의 빛이 호수에 내리쬔다. 부모님과 함께 그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하면서, 천천히 어두워져 가는 하늘을 바라본다. 피자는 맛있었고, 스테이크는 굽기가 두번 다 틀렸지만, 만족스러운 저녁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