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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누누 Oct 12. 2022

디지몬, 그래 그리 쉽지는 않겠지

마일도가 할 수 있는 것

마일도가 할 수 있는 것 


친구 J의 부탁을 받아 트위터 스페이스를 통해 디지몬 설명회를 진행했다. 마일도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진행된 설명회였다. 마일도는 디지몬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인 <파워디지몬>(원제: 디지몬 어드벤처 02)의 중후반부부터 등장하는 인물이다. 디지몬 설명회를 선택받은 아이들이 아닌 마일도를 중심으로 진행한 건 J의 최애 배우가 디지몬을 좋아해서 J가 디지몬에 대해 알고 싶어져 설명회를 열었고 그 최애 배우가 본인을 마일도에 비유한 까닭이었다. 스페이스에서 이런 질문들을 주고 받았다. 마일도는 안색이 왜 이렇게 안 좋아보이나요? 저 코트 벨트를 보세요. 잔뜩 조이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그런 것으로 판단 됩니다. 마일도는 뭐하는 사람인가요? 디지털월드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입니다. 본인을 마일도에 비유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마일도는 자신이 선택받은 아이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된 사람일 것 같습니다. 마일도는 슬픈 사람입니다.


마일도는 디지털월드를 동경하는 어른이다. 그는 디지털월드로 가서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주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지만 디지털월드는 오직 아이들만 갈 수 있는 세계였기 때문에 일생을 다 바침에도 불구하고 결국 디지털월드에 닿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는 디지털월드에 가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써보지만 그가 택한 방법들은 모두 그를 디지털월드에 데려가지 못한다. 그를 돕겠다 말한 존재는 사실 부활을 꾀하는 묘티스몬이었고 디지털월드를 향하는 차원의 문을 열 때 마지막 카드로 쉬라몬을 고르지 않고 아구몬을 골라 전혀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식이다. 여름방학 캠프에만 가도 디지털월드로 가게 되고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와도 마치 디지털월가 그를 부르는 것처럼 차원의 문이 열리는 태일과 너무 대조된다. 태일과 마일도의 차이는 태일은 선택받은 아이이지만 마일도는 선택받은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 그것 하나 뿐이다. 


둘리를 보던 어린이들이 고길동에 더 공감하는 순간 어른이 되는 것처럼, 짱구보다 짱구 아빠의 심경에 더 공감이 갈때 어른이 되는 것처럼 디지몬을 좋아하는 사람은 어른이 되면서 한가지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내가 선택받은 아이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어린 시절에도 디지몬은 실제로 없는 허구의 것이며 선택받은 아이들 역시 사실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어린이는 그렇게까지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다. 다만 결국 내가 선택받은 아이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 어릴 때 이미 산타 할아버지는 없다는 걸 알지만 진짜 산타가 없다는 걸 온 몸으로 느끼려면 성탄절날 내가 산타 역할을 해야할 때가 와야하는 것처럼 말이다. 선택받은 아이들은 어린이이며 무궁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여야 하는데 그저 그런 어른이 되는 순간 선택받은 아이가 될 여지는 완전히 사라진다. 


그럼 비로소 온 몸으로 내가 선택받은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는 거다. 나는 태일이보다 마일도에 가까운 사람이었구나. 그런 상실감을 안고 살아가게 되는 거다. 우리는 어둠의 사천왕과 싸우기 위해 다시 디지털월드로 향하는 아이들을 보며 자신도 데려가 달라고 무력하게 외치는 마일도처럼 우리가 마일도에 가까운 사람이라는 걸 온몸으로 느끼는 그만큼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우리만 아는 슬픔들을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다. 마일도에게 디지털월드는 꿈과 희망으로 가득찬 환상의 세계였지만 선택받은 아이들에게 디지털월드는 끝나지 않는 싸움과 아이들만 아는 슬픔으로 가득찬 세계인 것처럼 말이다. 


묘티스몬에게 모든 생명력을 빼앗겨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마일도는 자신의 남은 생명을 모두 바쳐 망가진 디지털월드를 회복시킨다. 그리고 어린이들의 희망에 힘입어 황제드라몬이 묘티스네오몬(원판 이름은 베리얼 묘티스몬)을 소멸시킨다. 묘티스네오몬이 완전히 소멸된 다음에야 비로소 마일도의 앞에도 파트너 디지몬인 통통몬이 나타나지만 그는 통통몬과 얼마 이야기하지도 못하고 사망에 이른다. 마일도는 결국 마지막까지 디지털월드에 닿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는 평생을 디지털월드에 가는 일에 힘썼음에도 디지털월드에 가지 못하고 망가진 디지털월드를 회복시키기 위해 남은 힘을 다 바친다. 그에게 디지털월드는 여전히 꿈과 희망으로 가득찬 환상의 세계이다. 슬픔 같은 건 상상할 수도 없는 그런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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