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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누누 Oct 20. 2022

디지몬, 그래 그리 쉽지는 않겠지

여전히 어려운

여전히 어려운


친구에게 생일 선물로 디지몬 다마고치를 받았다. 디지몬 다마고치 출시 20주년 기념판이었다. 표정을 좀 숨겼어야 했는데 나도 모르게 함박웃음을 지었는지 친구는 좋아할줄 알았다며 이걸 사길 잘했다는 말을 했다. 사실 살까 말까 망설이던 굿즈였다. 새로운 물건이 생기는 것도 그렇게 반가운 일이 아닐뿐더러 사면 또 얼마나 할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고심 끝에 사지 않기로 했었는데 그걸 선물로 받으니 기분이 좋을 수 밖에 없었고 그걸 숨길 수도 없었다. 


하루내내 뜯지도 않고 가방 안에 넣고 있다가 다음날이 되어서야 포장을 뜯었다. 

배터리에 붙은 종이를 떼어내자 삐 소리가 나며 흑백픽셀로 된 디지몬알이 나왔다. 처음 디지몬 다마고치를 사던 그 날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때는 두 손으로 만지던 걸 이제는 한 손으로도 여유있게 만진다. 화면이 이렇게나 작았구나. 이 작은 장난감 속 아주 작은 픽셀 생명체가 죽은 걸로 나는 그렇게 많이도 울었던 거구나. 


알이 흔들리고 깨졌다. 깜몬이었다. 호출음이 나와서 일단 밥을 먹였다. 깜몬은 자기보다 큰 고기를 세 입에 걸쳐 우적우적 잘도 먹었다. 깜몬은 작은 몸으로 디지털 세상을 누비더니 이내 코로몬으로 진화했다. 


코로몬은 깜몬보다 더 잘 먹고 똥도 잘 쌌다. 이런 말하기 좀 그렇지만 정말, 정말 많이 쌌다. 잠깐 한눈 팔면 똥을 쌌다. 똥을 싸면 포만감 수치가 줄어들어 또 밥을 줬다. 밥을 먹으면 몸무게가 늘어서 훈련을 시켰다. 그러고 있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똥을 쌌다. 물을 내려주면서 나도 코로몬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코로몬은 밥을 먹을 때마다, 훈련에 성공했을 때마다, 내가 물을 내려줄 때마다 온 몸으로 기뻐했다. 나와 이야기도 나눌 수 없고 소리라고는 삑삑거리는 전자음이 전부인 흑백 픽셀이지만 나는 분명히 코로몬을 키우고 있었다. 


어른이 되어 디지몬을 다시 키우니 어릴 적보다는 훨씬 수월했다. 어릴 때는 학교에 디지몬을 가져가면 선생님에게 압수 당하기 일쑤였다. 눈물을 머금고 집에 디지몬을 두고 등교를 하고나면 수업시간 내내 수업 내용은 들어오지도 않고 ‘똥 치워줘야 하는데, 똥을 치워주지 않으면 똥몬으로 진화할 텐데’ 같은 걱정만 들었다. 수업을 마치고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가면 아니나다를까 디지몬은 시름시름 앓고 있거나 이미 똥몬이 되었거나 최악의 경우 죽어있었다. 똥을 제때 치워주지 않아 똥독이 올랐거나 밥을 제때 주지 않아 굶어 죽었거나 둘 중 하나였다. 게다가 인터넷도 잘 발달하지 않은 시절이라 어떻게 키워야 더 좋은 디지몬으로 진화하는지도 알 수 없어서 그냥 무작정 주먹구구 식으로 키웠어야 했다. 그런 사정이다 보니 진화는커녕 죽지만 않으면 다행이었고 진화를 해도 똥몬만 아니면 감지덕지였다. 완전체? 그건 나의 노력과 적절한 하교 시간과 선생님의 관대함 이 삼박자가 딱 맞아 떨어져야만 도달할 수 있는 어떤 경지에 가까웠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른이 되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일을 하다가도 중간중간 디지몬을 봐줄 수 있고 밥을 먹이거나 똥을 치워줄 수 있었다. 여유가 되면 한번씩 훈련도 시킬 수 있었다. 죽을 일도 똥몬이 될 일도 없었다. 사실 똥몬이 되어도 상관 없었다. 똥몬도 내가 키우는 디지몬이니까. 


다음날 아침, 코로몬은 아구몬이 되어 있었다. 또 다음날 아구몬은 그레이몬으로 진화했다. 그러고 며칠이 지난 어느날 여느 때처럼 점심식사를 마친 다음 낮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그레이몬이 죽어 있었다. 대체 왜지? 분명히 낮잠 자기 전에 밥도 주고 똥도 치워줬는데 왜 죽은 거지? 알 수 없었다. 디지몬이 죽었을 때 A버튼과 B버튼을 동시에 누르며 디지몬은 다시 디지몬알로 돌아가고 디지몬알을 고르면 다시 디지몬알에서 태어난 디지몬을 키울 수 있다. 디지몬알을 고르다가 잠시 망설였다. 앞으로 계속해서 이렇게 디지몬이 태어나고 밥을 주고 똥을 치워주고 훈련을 시키다가 디지몬은 죽겠구나. 나는 이 작은 흑백 픽셀의 죽음을 계속해서 봐야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른이 되어도 디지몬을 키우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다. 이제는 디지몬을 압수하는 선생님도 없는데  인터넷이 발달해서 공략도 다 찾아볼 수 있는데 말이다. 똥몬이 되어도 괜찮은데 죽는 건 여전히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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