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번째 마후문
10년도 더 전의 어느 봄날,
호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모든 것이 싫었다.
그래서 떠나고 싶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고,
왜 그래야만 하는지도 수긍할 수 없었다.
이기적인 마음이어서일까?
나와는 달라서였을까?
부딪히기도 싫었다.
나를 둘러싼 것으로부터,
그를 둘러싼 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그것만이 관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여겼다.
그렇게 나는 따스한 봄의 시작 무렵,
나의 겨울을 잊고자, 호주로 떠났다.
호주에는 동생네 부부가 살고 있었다.
동생을 보러 간다는 명분이었지만,
실은 나와 그 사이에 얽혀있는 관계로부터
벗어나려는 일탈이었다.
바꿀 수 없는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일탈.
그래서 가능한 멀리
아주 멀리 떠나고 싶었고,
내가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그곳,
물리적으로 쉽게 닿을 수 없는 그곳으로 향했다.
호주에서 주변을 둘러보며 그 시간을 즐겼다.
보름이 지났을까?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돌아갈 자신이 없었지만, 가야만 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온 것은 아니었기에...
있어야 할 곳으로 잘 돌아가기 위한 이유가 필요했다.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내가 그로부터 떠나왔던 그날을 생각했다.
미지의 신비로운 바다를 보며,
열대의 정글에서 깊고 깊게 자란 나무를 보며,
또 다른 세상의 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인간의 눈으로 이해할 수 없는 자연을 느끼며,
내가 그에게 한 말을,
그가 나에게 한 말을 떠올렸다.
나는 말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그냥 다 싫어. 이해하기조차 싫어."
그는 말했다.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그냥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면 안 돼?"
이해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 달라는 말,
그 말이
나의 발걸음을
나의 마음을
다시 그를 향하도록 돌렸다.
열두 번째 마후문
"認定에 人情을 더해서 인정하고 사랑하라."
서하
이해
“남의 사정을 잘 헤아려 너그러이 받아들임”
"사리를 분별하여 해석함"
잘 헤아리고 너그러이 받아들이며,
사리를 분별하기 위해서는
인지적 과정이 필요하다.
즉, 이해는
단순히 정보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아니라
분석하고 해석하며 연결하는
인지적 차원의 관점인 것이다.
관계에서 이해라 함은
그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각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어떻게 다른지, 다시 한번 더 분석하고 생각하며
나의 앎과 마음을 다른 이의 그것과 연결하려는
노력의 과정이다.
그렇기에 이해의 과정은 깊고, 복잡하고,
번민이 따르기도 하며, 이유를 찾기도 한다.
그래서 타인을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인정
認定 "확실히 그렇다고 여김"
人情 "사람이 본래 가지고 있는 감정이나 심정"
"남을 동정하는 따뜻한 마음"
認定에 人情을 더해서 인정하자.
인정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긍정의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인정을 하는 데에는 별도의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타고난 감정인
동정의 마음에 따뜻한 시선을 더해서,
있는 그대로는 받아들이는 수용하는 마음이
내가 생각하는 인정이다.
물론,
인정할 수 없는 관계는 끊어내면 그만이다.
하지만 끊어낼 수 없는 연은 어찌할 것인가?
부모 자식의 연,
부부의 연은 쉬이 끊어 낼 수 있는 연이 아니다.
그렇기에 인정이 필요하다.
물론 일방적인 인정은 힘이 든다.
힘이 듦에도 차마 끊어 낼 수 없는 관계에서
인정이 필요하다.
서로가 서로를 향한 "인정" 말이다.
이해와 감당이 아닌, 수용하는 인정의 마음.
끊어낼 수 없는 세상의 모든 관계에서 필요한
단 하나의 단어.
인정
認定에 人情을 더해서 인정하고 사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