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째 마후문
나를 사람으로 만드는 이는 누구인가?
나는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나의 의지요,
나의 노력이요,
나만의 힘이라고 느꼈다.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철부지 사춘기의 마음을 그대로 품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혼자서 큰 것 같은 철없는 10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두려움 없는 마음.
내가 하는 행위가 곧 정의라고 믿고
세상을 향해 마음껏 내지르던 자신감.
그 철부지의
거친 마음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줄었고,
두려운 마음은 더욱 커졌다.
나의 인생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나에게 인생을 물었다.
人生
사람(인) : 人
사람을 뜻하는 "人"의 의미에 관한 설은
몇 가지가 있으나, 가장 일반적으로는
사람은 혼자서는 설 수 없는,
서로 기대어 의지하고 살아가야 하는
존재를 뜻하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면서 쓰러지지 않도록...
그리고 나에게 다시 물었다.
과연 나를 사람으로 만든 것은 누구인가?
그것은 세상이었다.
철없는 마음으로 마음껏 달릴 수 있었던 세상,
아름다운 세상,
칠흑 같은 어두움을 느끼게 해 주었던 세상,
가슴 아픈 세상,
그 세상이 나에게 말한다.
내가 진정한 사람인지 아닌지 몰라서
방황하는 지금의 나에게...
지금 서있는 너는
누군가의 의지와 용기와 희생과 사랑으로
서 있는 것이니,
혼자 가려하지 말라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함께 나아가라고 말한다.
人間.
즉, 인간으로 살아가라고 말한다.
아프리카에는 오랫동안 내려오던 세계관이 있다.
우분투는 딱 하나의 단어로 정의를 내릴 수는 없다.
가장 근접한 개념이 바로
"사람은 다른 사람을 통해 사람이 된다."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 P. 132)
"나는 우리로 인해 존재하고,
우리가 있어서 내가 존재한다."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 P. 138)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이치이다.
각자의 존재 자체는 개인의 의지가 아니었다.
개인과 개인이 만나 우리가 되어서
"무"에서 "유"로 생명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리고 작은 우리가 모여,
더 큰 우리가 된 것이 세상이다.
이렇듯 나를 사람으로 만든 이는
나고 자라면서는 부모였고,
커서는 세상이 나를 사람으로 만들었다.
즉, 스스로가 무에서 유가 된 존재가 아니므로,
혼자서 세상에 존재할 수 없고,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끝과 전부를 알 수 없는 이 큰 세상에서,
나를 사람으로 만든 이는 나였다는 철부지의
이기적인 마음으로 혼자서 가려한다면,
오롯하게 서 있을 수 없을 것이다.
함께 가려 할 때 보다,
더 많이 넘어질 것이고,
더 혹독하고 외롭게 가야 할 것이다.
즉,
인생(人生)이란 /
인간(人間)이란 /
서로서로 의지하며,
함께 성장하면서 살아가야
그 삶과 존재가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 사람이 된다."
아프리카 우분투 사상
위의 우분투 글은
마이클 슈어의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을 읽고,
몇 달 전에 쓴 글이다.
그리고 오늘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를 완독 하며
이런 질문을 해보았다.
"만약 한스 기벤트라가
억압된 감정에서 벗어나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고,
그것을 나눌 수 있는 제대로 된 관계의 친구나
사랑하는 이가 있었다면,
그는 자신을 잃어버렸을까?
마음이 깊이 연결되어
정서적으로 지지해 주는 이가 함께하며
내적 갈등을 극복할 수 있었다면,
그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을까?
온전히 한스의 곁을 지켜주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그래서 그가 절망의 감정에 고립되지 않고
자아를 회복하여 더 나은 길을 선택했다면,
그는 결국 아름다은 사람으로 살아갔을까?"
올 해의 마지막 가을을 보내며,
다가올 겨울은 외롭지 않기를 바라며,
서하가 그대에게 보내는 편지.
"사람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 사람이 된다."
당신 곁에 당신을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는 이가
단 한 명이라도 함께 하기를 바라본다.
그러니 부디 이 글을 읽는 그대도
결이 맞는 이와 함께,
마음 맞는 이와 함께,
힘이 되는 이와 함께 세상을 마주하며,
운명의 수레바퀴를 뛰어넘는 의지를 가지고
나아가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