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두 번째 마후문
자아로부터 해탈을 꿈꾸었던 싯다르타.
그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속세를 등지고 사문이 되어 수행의 길을 나섰고,
그 길이 자신의 갈증을 해소해 주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런 자아와의 투쟁의 시간이
헛수고였음을 느끼며 말한다.
그리하여 다시 새로운 자신을 만나기 위해
세상 속으로,
자연스러운 인간의 삶으로 들어갔으나,
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속세를 등지며 나아갔던 그 길도,
또 세상을 향했던 그 길도,
윤회의 수레바퀴로 돌아가지 않기 위한
그의 깨달음의 길에서는 무의미하였다.
그런 그가 강을 만났고, 새롭게 태어났다.
찾고자 하는 것을 위해
기꺼이 아름다운 방황을 하고 있는 서하입니다.
아니, 무엇을 찾아야 할지 몰라서
헤맨다는 표현이 더 맞겠습니다.
저는 배우는 것을 좋아합니다.
관심 있는 분야도 너무나 많고요.
하지만,
그 수많은 관심거리도,
그것에 대한 배움도,
늘 짧게 끝이 났기에,
저는 한없이 깊이가 얕은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이 목적 없는 여행에서 저를 멈추게 할
그 무엇도 만나지를 못하였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문장을 만나며,
강을 찾자. 경청하자. 다짐을 했습니다.
"그는 강으로부터 무엇보다도 경청하는 법,
그러니까 고요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영혼, 활짝 열린 영혼으로,
격정도, 소원도, 판단도, 견해도 없이
귀 기울여 듣는 것을 배웠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
저의 여름은 열정적이었으며,
저의 가을은 그리움이었습니다.
저의 겨울은 경청의 나날입니다.
너무 많은 관심거리,
너무 많은 행위들을 내려놓고
강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마도 저의 강은 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책을 통해서 제가 걸어가야 할 길을 기다리며
소원의 마음도 내려놓고,
함부로 단정하고 판단하지 말며
집중해 보자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목적이 다른 삶의 여행길에
저마다의 "아름다운 경청의 시간"을
만나 시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