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세 번째 마후문
도선생님이 오셨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는 평범한 하루였다.
잠깐 외출을 하고 해가 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왔다.
늘 평상시와 다름없는 우리 집.
내가 외출하기 전과 똑같은 우리 집.
나는 몰랐다.
옷을 갈아입고 집안 정리를 하였다.
내편이 귀가했다.
우리는 하루 일과를 이야기하며
평범한 저녁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기 전,
내편이 내일 가져갈 것이 있다며
무언가를 찾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나의 이름을 부른다.
"왜?"
라고 답하는 나에게 그가 놀란 눈으로 와서 말한다.
"너, 몰랐어?"
나는 말했다.
"뭘?"
그리고 나는 내편에게 다시 물었다.
"왜?"
그렇다.
그날은 도선생님이 다녀가신 날이었다.
도선생님은 다녀간 흔적 하나 남기지 않았기에
나는 몰랐던 것이다.
그날 이후로 내편은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갑자기 안 들리던 층간 소음이 그를 괴롭혔다.
그러고는 도저히 이 집에서 살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게 우리는 그 집을 떠나서,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갔다.
새로 이사 간 집은 아파트 가장 위층이었다.
층간 소음을 피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한동안 우리는 평온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고는 한두 달이 지났을까?
내편이 이상했다.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한다.
한 달, 두 달이 지나도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누우면 숨을 쉴 수가 없다며,
내편은 잠들지 못했다.
그런 날들이 계속 이어졌다.
그 잠들지 못한 밤들이
수없이 이어지던 어느 날 밤,
그날의 그 밤이 우리의 "그때"였다.
잠든 듯하였으나, 잠들지 못했던 내편,
눈은 떠 있으나
아무런 감각이 없는 듯 느껴지던 그였다.
숨을 쉴 수가 없고,
잠을 잘 수가 없어서 너무 힘들다는 말을 하며
힘없이 소파에 기대어 있던 그에게 내가 말했다.
새벽 2~3시를 넘긴 시간이었다.
"오빠, 가자."
나는 그를 일으켜 세웠다.
"이 새벽에 어디를 가?"
묻는 그에게 나는 말하였다.
"오빠가 숨 쉴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가자!"
그렇게 우리는 새벽 도로를 달렸다.
목적지 없이 말이다.
집을 나와 차에 탄 그는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았고,
나는 정처 없이 그 밤을 달렸다.
달리다 보니 어느덧 고속도로의 휴게소였다.
그곳에서 차를 세우고,
우리는 차에서 밤을 지새웠다.
더없이 시원하고 맑은 새벽 공기에
그는 편안하게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아침이 밝아오자,
그에게 말했다.
"오빠, 우리 고속도로 탄 김에 오빠네 갈까?"
나는 몇 시간을 더 달려서
그를 그의 엄마에게 안전하게 인도하였고,
내편은 그의 고향 집에서 아주아주 편하게
잠이 들었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목적지 없이 집을 나섰던
그날은
우리의 "그때"입니다.
아니, 그의 "그때"입니다.
도선생님은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고,
모든 귀금속을 다 가져갔습니다.
저는 사실, 뭐 괜찮았습니다.
만약에, 그 시간에 내가 집에 있었더라면???
으악!! 상상도 하기 싫네요.
저는 하늘이 도운 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지가 않았나 봅니다.
세상에 하나뿐인 결혼 예물이 다 사라졌다는
사실이 꽤나 충격이었나 봅니다.
사실, 저는 결혼 예물보다는 제가 일하면서 받았던
순금으로 된 황금 열쇠 2개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이
더 속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는 제가 일을 그만둔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라,
그 황금열쇠가 나의 사회적 활동에 대한
일종의 증표였기 때문입니다.
나의 열정 가득했던 그 시절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증표.
이사 한 집은 새 아파트였습니다.
내 편은 감각이 예민한 사람입니다.
그의 잠 못 이룬 이유는 바로 새집증후군!
게다가 저희가 살았던 탑층의 지붕 위에는
온갖 통신사의 중계기가 다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를 느낀 것이죠.
결국, 반년을 조금 넘게 살다가 그 집을 나왔고,
마침내 새로운 곳에서 그는 평안을 얻었지요.ㅎㅎ
화기애애했던 우리의 관계도
시간이 흐르면서 "화기애매"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나. 오빠 싫어. 다 싫어.
그러니 그만하자!"
내편이 말합니다.
"그때 기억나?
그날 새벽 말이야.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어.
"오빠가 숨 쉴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가자!"
그때 네가 했던 말,
그 시간,
그 새벽의 청량한 공기.
나를 일으켜 세웠던 너의 그 손.
지금 생각해도
나는 잊을 수가 없어, 그때를,,
그런데 내가 어떻게 너랑 헤어져."
이후로도 우리 관계가 화기애매해질 때마다
나의 편은
“그때 기억나?"를 수십 번은 말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저는
"그때."라는 말만 나오면,,
"왜?, 뭐?, 몰라 말하지 마!"
대답하곤 한답니다.
그랬습니다.
그때, 우리는 그랬습니다.
그에게는 아마 그 순간이
영원히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저요?
저는 별로, 그다지.
다만,
저도 저만의 그때가 있지요.
또 모르죠.
제가 그를 붙잡아야 할 어느 날,
저의 그때를 떠올리며,
"오빠, 그때 기억나?"
물을지도.
누구나 살다 보면,
더 이상 화기애애가 아닌
"화기애매한 시간"이 찾아옵니다.
그때,
여러분도,,
여러분의 그 혹은 그녀에게,
말해보세요.
"그때 기억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