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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 Jan 08. 2025

주문하신 눈물들을 가지고 왔습니다.

다섯 번째 편지

오늘은 도서관으로 고고씽 한 날.

이 책 저 책 살펴보다가 단번에 눈에 들어온 책,


눈물 상자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소개되어 있다.

그렇다.

이 책은 어른을 위한 동화이다.


나는 왜 이 책에 손이 갔을까? 


며칠 전이던가?

추운 날, 밖에 앉아서 하늘을 보았다.

나무도 보았다.

지나가는 차도 보았다.


눈물이 내린다.

왜?

왜 눈물이 나는 걸까?

알 수 없는 이유의 눈물이었다.


하지만 알 수 없어서 

답답한 마음이 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냥, 눈물이 내리네. 흐르네.

그럼 울어야지, 뭘.


그렇게 울었다.


나에게 눈물은 무엇일까?

왜, 이유 없이 눈물이 내릴까?


세상에 이유 없는 것이 있을까?

행위이든 감정이든.


하지만, 나의 눈물은 그러했다.

참으로 희한한 눈물이었다.


그래서였다.

'눈물 상자'가 나의 눈에, 마음에 들어온 이유.


책은 비교적 얇기에 단숨에 읽을 수 있었다.



여기, 순수한 눈물을 찾고 있는 이가 있다.

검은 옷을 입고, 검은 모자를 쓰고, 검은색 가방을 

들고, 순수한 눈물을 찾아 삶을 여행하는 이 남자.



그는 검은 아저씨, 

눈물을 모으고 눈물을 파는 사람이었다.

그의 검은 가방에는 검은 비단으로 싼 검은 상자가 들어있었다.

비단을 풀어헤친 곳에는 수많은 눈물 결정들이 있었다.


그가 20여 년을 떠돌며 모은 눈물들이었다.


그는 무엇을 위해 눈물을 염원하는가?


그리고 여기, 한 소녀가 있다.

'눈물단지', '울보'라 놀림받는 아이.


아이는 특별하였다.

햇빛에 반짝이는 잎사귀, 

거미줄에 날개가 감긴 잠자리,

어디선가 조용히 흘러드는 피리 소리, 

길고 가냘픈 그림자,

키우던 개가 출산하는 모습을 지켜본 뒤부터는

개들을 볼 때도 아이는 울었다.


상처와 슬픔에도 눈물을 흘렸지만, 

바람이 이마를 스쳐도,

이웃집 할머니의 쓰다듬음에도 맑은 눈물을 흘렸다.


이유 없는 눈물이었으며,

아이는 그런 눈물이 부끄러웠다.


그런 아이 앞에 검은 아저씨가 나타났다.


"특별한 눈물을 가진 아이가 이 마을에 

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검은 아저씨는 자신의 유일한 길동무,

 '푸른 휘파람새'와 함께 아이를 찾아왔다.


푸른 휘파람새는 그가 눈물을 판 대가로 받은 선물이었다. 

하지만, 휘파람을 불지는 않았다. 

왜 울기를 그만두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정들었던 첫 주인이 팔아버린 뒤부터 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푸른 휘파람새의 첫 번째 주인은 새를  '파란 새벽의 새'라고 불렀다.


검은 남자는 아이의 눈물이 순수한 눈물일 거라 생각했고, 아이와 함께 그 눈물의 순간을 기다렸다.


하지만, 

언제나 눈물을 흐르게 했던 광경을 보아도,

설탕 같은 별들이 무더기로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도

아이는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못했다.


검은 아저씨는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눈물을 사기 위해 자신을 기다리는 외딴 마을로 떠나려 하였고,


아이 역시 이별의 인사를 하였으나,,,


파란 새벽의 새의 알 수 없는 이상한 영혼의 속삭임에 이끌려 함께 그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아이는 그 눈물을 위한 여정을 위해, 

잠깐의 작별을 고하기 위해 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집 앞 창가에 서서  집 안을 바라보았다.

와르르 웃음을 터뜨리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을.


언제나 눈물이 고여 있는, 

눈물 자국이 뺨에서 마르지 않는 아이가 없으니,

환하게 빛나고 있는 가족들의 얼굴을 보았던 것이다.


그렇게 눈물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검은 아저씨. 파란 새벽의 새, 눈물단지는 밤새도록 

산을 넘어 걸었다.

산자락의 끝에서 밤을 보내며, 

아이는 검은 아저씨에게 물었다.


"순수한 눈물에 대해서 더 얘기해 주세요."



"눈물을 사면 아저씨는 답례로 뭘 주나요?"

눈물단지가 물었다.


"선물을 주지"



"아저씨, 아저씨가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만났던 사람들 얘기해 주세요."


그는 밤새도록 눈물을 팔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해가 뜨고 하루를 꼬박 걷고 난 늦은 오후,

마침내 목적했던 마을에 도착했다.



눈물을 주문한 이는 눈물 상자의 검은 아저씨보다도 더 어둡고 슬퍼 보이는 백발의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가 물었다.


"그런데, 이 아이는 누구요?"


아이의 특별한 눈물을 알게 된 할아버지가 말한다.

"너는 운이 좋은 아이구나."


아이는 놀랐다.

넘치는 눈물 때문에 언제나 놀림과 걱정, 핀잔의 말만 들었지,

부러움을 산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아기 때부터 평생 눈물을 흘려본 적 없는 사람.

아무리 슬픈 일이 있어도, 

가슴이 아프고 숨쉬기가 어려울 뿐 

눈물만은 나오지 않는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전 재산을 주고 검은 아저씨가 가지고 온 눈물 상자에서 거의 절반의 눈물을 샀다.


"그렇게까지 눈물을 흘리고 싶은 이유가 뭐예요?" 

아이가 물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못했다.

모두 나를 냉정한 아들이라 손가락질했지.


나는 아내를 사랑했지만, 

아내는 눈물을 흘릴 줄 모르는 내가 무섭다며 떠나버렸어.


가슴이 무너지고, 찢어지고, 

눈앞이 캄캄해지고, 

슬픔 때문에 더는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순간들이 지나가도 나는 울지 못한다.

······

나는 늙었고, 살아갈 날이 많이 남지 않았어,

이제는 ······ 알고 싶구나."


할아버지는 골라놓은 눈물들을 한 방울씩 입안에 넣기 시작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할아버지의 주름진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었다.


"아버지······ 아버지."

"가지 말아, 당신이 어떻게 나에게······"


사십여 년 전 아버지를 여의였을 때,

이십 년 전 아내가 떠났을 때,

그보다 오래전의 어린 시절 아끼던 개를 잃었을 때,

흘리지 못했던 눈물들이 지금 이 순간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것이었다.


얼마나 더 울었을까?


할아버지는 마침내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계속해서 울다 웃다 했다.


그리고 말을 이어갔다.


사실, 할아버지는 그림자 눈물샘이 얼어붙은 채, 

울지 못하고 살아갔다.

할아버지가 두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부터 그러한 것이었다.


언제나 떠나고 싶었으나, 가슴에 쌓인 슬픔에 짓눌려 떠날 힘을 낼 수 없었던 할아버지는

마침내 슬픔의 감정을 모두 씻어내고 발 닿는 곳으로 세상을 향해 떠났다.

그가 원하던 삶을 위해서.



할아버지가 떠난 후 아침이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검은 아저씨, 파란 새벽의 새, 눈물단지 아이였다.


눈물단지 아이는 할아버지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 눈물은 검은 아저씨가 찾던 순수의 눈물은 아니었다.

어떤 빛깔로도 단정 지을 수 없는 그저 사랑이 가득한 눈물이었다.



검은 아저씨는 아무리 슬퍼도 울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다만, 할아버지가 그림자 눈물샘이 얼어붙어서 울지 못하였다면, 


검은 아저씨는 그림자 눈물샘이 언제나 가득 올라 차 있어도, 그래서 눈시울이 뜨거워져도, 눈앞이 아른아른해져도, 결국에는 눈물이 말라버려서 울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울음을 터뜨릴 그 날을 위하여 

생의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20여 년이 넘도록.

그 순간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면서,

울음을 찾아서. 

마침내 울날을 고대하며.


이제, 이별의 시간.

아이는 검은 아저씨와의 눈물을 위한 여정을 통해

눈물을 참는 것이 어떤 것인지 마침내 깨달았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왔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 나는 알았다.

나의 눈물의 의미를.


오늘, 이 밤.

거기, 당신.


울음을 참고 있지는 않나요?

혹시, 눈물 흘리고 있나요?

당신의 그림자는 어떠한가요?


Hey beautiful,

Cry as hard as you want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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