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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에이전시 전성시대, 첫눈에 반한 그녀 - 2

강남 소갈빗살과 쌀국수

by 까칠한 펜촉

웹 에이전시 전성시대 2


국세청 홈택스 서비스: www.hometax.go.kr

국세청 홈페이지: www.nts.go.kr


연말 정산이나 세금 신고를 위해 많은 분들이 방문하고 사용해 보셨을 국세청 홈택스(Hometax) 사이트와 국세청(NTS) 홈페이지는 내게 특별한 인연이 있다. 최초 홈택스 사이트와 국세청 홈페이지 1차 리뉴얼 UI 기획자가 바로 본인이라는 말씀.




남자 셋이 모이니 접시도 깨지고, 돈도 깨지고...


입사 후 첫 파견이 끝나면서 본사로 복귀했다.

복귀 후 cjmall 지원도 나가고 몇몇 제안 프로젝트에 참여하다 드디어 두 번째 프로젝트인 '혼다 모터사이클 코리아 홈페이지 구축'을 맡게 됐다.


본사 내근 업무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울림이 많아졌다. 주로 술자리였고 술자리를 주도하는 이는 내 사수였던 과장님(L과장)과 나보다 2살 많은 남자 디자이너 선배(R선배)였다. 그렇게 많은 술자리를 하면서도 직급 외의 호칭이나 반말은 서로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는 늘상 붙어 다녔다. 담배 피울 때도 밥 먹을 때도 누굴 뒷담화 할 때도 술 마실 때도 늘 함께 다녔다.

점심식사는 주로 역삼초등학교 앞에 볶음밥집에 갔다. 십 수년이 지나 그 자리에 가보니 이미 다른 식당이 들어서 있었다. 그 볶음밥집은 굉장히 특이했는데 점심 메뉴는 (미리 만들어 놓은) 김치볶음밥과 카레볶음밥 두 가지이고 미역과 소고기다시다만 들어간 미역국 이게 전부였다. 김치볶음밥보다는 카레볶음밥이 압도적으로 맛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밤이면 밤마다 술자리를 가졌다. 이들과 아침에 함께 출근한 일도 셀 수 없이 많았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남이 보면 죽고 못 사는 사이처럼 보였겠지만 실은 매우 드라이하면서도 선은 넘지 않는, 함께 놀면 재미있는 파트너 사이 정도가 아니었다 싶다.


내 첫눈녀(첫눈에 반한 녀)가 R선배와 많이 친했는데, L사수가 없을 때는 R선배와 첫눈녀 등 몇몇 동료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있었다. L사수는 여자 동료들과 어울리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몇몇 분들과는 트러블도 있었고.


혼다모터사이클 코리아 프로젝트는 정말 재밌었다.

웹 사이트에 모터사이클 제품 정보와 엔진 배기음 등의 음원 컨텐츠를 넣었는데, 이 컨텐츠에 얼마나 공을 들였냐면 사무실에서 일하다가도 창밖에 모터사이클 배기음이 들리면 그 종류를 다 맞출 정도였다.


"오! Fire Blade, CB1000, CBR1300"




성숙기로 진입한 웹 에이전시 산업


혼다모터사이클 코리아 프로젝트가 끝날 무렵은 웹 에이전시 시장이 최전성기에서 한 발짝 내려올 때였다. 돈 되는 사업이다 보니 에이전시 경력자들이 속속 몇몇 클라이언트를 등에 업어 자신만의 디자인 하우스를 창업하였고 이는 자연스럽게 공급량 증가로 이어졌다. 공급이 늘고 기술이 평준화되면 그다음은 가격 경쟁이다. 가격 경쟁이 심화되니 일부 초기 창업 에이전시는 구축 비용은 받지 않고 유지보수와 운영으로만 비즈니스를 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생겼다.


프로젝트가 타이트하게 운영되면서 1,2 에이전시 사업본부가 통폐합되었다.

나는 익숙하지 않은 분들과 일하게 됐고, 통합된 사업부에 합류한 지 1주일 만에 파견을 가게 됐다.

본사 직원은 나 혼자였고, 프리랜서 4명(디자이너 2, 개발자 2)을 데리고.


이 프로젝트가 바로 서두에 언급한 홈택스(Hometax) 구축 프로젝트이다.

삼성 SDS가 주관사였고 우리는 UI 기획과 디자인을 담당하는 컨소시엄이었다. 파견 지는 양천구청에 있는 국세청 전산실이었는데 지금 영등포 세무서가 있는 자리다. 양천구청과 지금 영등포 세무서 자리에는 살짝 괴리가 있는데 자리는 확실한데 그 구청이 양천구청인지는 불확실하다. 다만 확실한 건 국세청 전산실이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다.


본사 직원 없이 프리랜서들로만 이뤄진 팀을 맡아하려니 어려움이 종종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근태였다. 술을 좋아하는 여자 디자이너가 있었는데 술만 마시면 늦게 출근을 하거나 아예 연락이 안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때만 해도 출근할 때 전산실 입구에 비치된 노트에 소속과 출근 일시를 직접 수기 작성을 했다. (이게 믿기는가?) 이렇다 보니 지각자가 생기면 삼성 SDS PM에게 사실이 전달되고 삼성 SDS PM은 나를 호출하여 소릴 질러가며 호통을 쳤다. 그러던 어느 날, 부슬부슬 부슬비가 흩날리던 어느 날, 또 그렇게 심하게 깨져 풀이 죽어있던 내 어깨를 툭치며 삼성 SDS 차장님께서 "우리 곰탕 한 그릇 합시다."라며 그 인근에서는 유명하다는 '양평옥'으로 이끌어주셨다. 그러면서, 회사는 다르지만 참 괜찮은 젊은이 같다며 이런저런 얘기로 용기를 북돋아 주셨다. 지금 생각해도 내 인생에 어떤 선배라도 이런 얘기를 해 준 이가 있었나 싶기도 하다.


그런 일이 있은 며칠 후 R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OO 씨, 얘기 들었어요? 나도 거기 파견가요. K와 C도 가요. 가서 만나요~", 이 대화에 등장하는 C가 바로 내 첫눈녀였다.




구렁텅이가 낙원으로


세상 사 모든 일은 그렇게 극적인 반전이란 게 있는 거다.

'때려치울까? 본사 지원은 없고, 프리랜서는 마음에 안 들고, 외롭고 지치고,...'이맘때 위내시경을 처음 했는데 스트레스와 과로로 인한 소화 불량과 급성 위염이 문제였다.


딱, 이렇게 힘들다는 얘기가 절로 나올 때 그들이 합류했다. 술친구 R선배와 디자이너 K 그리고, C.

물론, 그들이 몸만 온 건 아니었다. NTS 국세청 홈페이지 기획 업무도 가져왔다. 그래서 홈택스 PM과 NTS CP역할을 동시에 수행했다. 회사 입장에서는 혜자고 나는 업무가 두 배로 늘어났지만, 그까짓 일 쯤이야 몸을 갈아 넣으면 되는 거고. 마음만 천국이면 그만이지. ^^


양천구청에는 구내식당과 매점이 있었고 그 뒤에 제법 넓은 공터가 있었는데, 우리는 종종 시시때때로 거기 모여서 음료도 마시고 잡담도 했다. 자주 그러다 보니 C와도 개인적으로 편해지고 가끔은 둘 만 나와서 얘기할 때도 있었다. 그녀는 남자 친구가 있었다. (물론,... 나도 있었지만) 결혼도 약속한 사이라고 했고 남자 쪽 집안이 상당한 재력가라고 했던 것 같다. 뭐 내가 사귀자고 좋아한 건 아니니까 그런 상황이 딱히 안타깝거나 아쉬웠던 건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히려 C의 태도였다. C의 본심은 아니었겠지만 본의 아니게 어장관리를 한 셈이 되었으니.


함께 어울려 있을 때는 내게 특별한 여지를 전혀 주지 않는다. 그런데, 각자 헤어져 귀가를 하고는 내게 전화를 한다. 그러고는 남자 친구와의 이슈와 문제를 얘기하면서 운다. 펑펑 운다. 전화 너머로 C의 눈물이 내 볼에 흘러내리고 있다고 느껴질 지경이다. 그리고, 다음 날에 만나면 또 아무 일 없다는 눈치다.


그런 시간이 두 어달쯤 지나고, 홈택스와 NTS가 마무리되어 본사로 복귀하면서 나, R선배, C는 동시에 회사를 그만뒀다. 한 날, 한 시에


나는 '야후에서도 못 찾으면 엠파스'라는 그 엠파스로 이직하였고, R선배와 C는 어디로 갔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이렇게 나의 웹 에이전시 시절은 막을 내렸고, C와는 아무것도 아닌 사이로, 아무 일도 없이 끝났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흘러 나는 이직한 회사에서 적응을 마치고 이런저런 일로 바쁘게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C에게 전화가 왔다. 한 번 보고 싶다고. 청첩장 주는 거냐고 물었더니. 그건 아니고 한 번 보잔다.


오후 이른 시간에 와서 한 시간 정도 같이 있다가 퇴근까지 기다리겠다고 해서 그러라 했다. 근데, 이상한 건 퇴근 시간 후에 만나긴 했는데 만나서 뭘 했었는지는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 봐도 생각나지 않는다. 식사를 했는지, 술을 마셨는지 무슨 얘기를 했었는지 아무런 기억이 없다. (홀린 것처럼, 혹은 강제로 기억이 삭제된 것처럼 신기하게 아무런 기억이 없다...)


여하튼, 그날을 마지막으로 서로 본 일이 없었던 것 같다. 결혼을 한다고 했으니 했을 테고.

이후에 내 결혼 전에 D스톰의 몇몇 분을 만나 저녁 식사 대접을 하고 청첩장을 드리기도 했는데 그때 L과장님, K 그리고, 다른 L이 오긴 했지만 R선배나 C는 없었다.


사실, 여기 등장하는 K가 가장 최근에 본 사람인데, 7년 전인가? 판교에 미팅을 갔다가 불현듯 생각나서 거의 십몇 년 만에 만났는데 정말 세월이 사람을 많이 변화시킨다는 생각을 했다. D여대를 나온 친군데, 괴기 발랄하다 할 정도로 여자들은 잘 안 하는 얘기를 거침없이 하고, 술 좋아하고, 담배도 참 맛있게 잘 피던 어린 친구였는데, 애 둘의 엄마가 되고 얼굴에 간간히 세월도 보이더라. 만나서 C 안부를 물어봤는데 C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고.


웹 에이전시는 내가 겪은 수많은 사회 경험 중에 1/20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매일매일 하루하루가 시트콤 같이 특별하고 특이한 경험의 나날이었고 가슴 뛰는 만남도 있었으며 무엇보다 당시 IT 사업을 이끌어 가던 최전선에서 적지 않은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웹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전문가로서 빠르게 안착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는 면에서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직하는 시점이 내 20대 마지막을 20일 남겨둔 시점이어서 젊음의 단상을 추억이라는 사진으로 한 장 한 장에 고스란히 내 가슴에 저장하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모든 분들이 지금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지내기를 기원해 본다.



- 까칠한 펜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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