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단상
엠파스에서 재직 중이던 2005년 11월에 결혼을 했다. 결혼식에 참석한 지인 중 70% 안팎이 엠파스에서 함께 근무하던 이들일 정도로 그들과 좋은 교류를 맺었다.
2003년의 제휴비즈니스팀은 참 독특했다. 금융, 교육, 생활, 엔터테인먼트 부문의 부가 콘텐츠 서비스를 담당하는 파트, 오픈마켓 파트, CS 파트, 검색 콘텐츠 파트 등 타사에서는 팀 규모로 운영되던 전문 서비스를 1~2명의 인원이 모두 담당했는데 그만큼 좋은 맨파워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당시 함께 했던 분들 대부분은 네이터, 카카오, 배달의 민족, SK C&C 등에서 리더로서 아직 활약하고 있다.
우리 각자는 자신에 일에 프로페셔널하면서도 매우 뚜렷한 개성을 같고 있었다. 같은 팀이지만 실제로 업무를 공유하거나 협업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비교적 주니어 그룹에 속하는 이들에게 조차도 몇 달간의 업무 교육과 인수인계를 한 후에는 각자 맡은 일을 각자의 경험과 역량에 맞게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운영했다. 보통 이런 팀은 조직력이 약하거나 팀장의 리더십이 매우 강력한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완전히 그 반대였다.
각자의 개성이 너무도 뚜렷했고, 업무에 대한 모든 책임과 권한은 각 개인에게 있다는 생각이 또렷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맨파워가 괜찮았다. 이런 개성 강하고 좋은 맨파워로 구성된 팀을 묶어주는 것은 한 사람의 리더십보다는 각자의 믿음과 신뢰라는 파트너십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1) 회식 같은 금요일 업무 회의
당시만 해도 주 5.5일 근무였는데, 엠파스는 평일 8.5시간 근무를 하는 대신 5일 근무를 했다. 우리는 매주 금요일 오후 2시부터 주간업무 보고 회의를 했는데 말이 회의지 짧은 업무 공유 후 각자 싸 온 음식을 나누며 이런저런 사담을 나누다가 6시가 되면 모두 바람처럼 흩어졌다.
모두가 음식을 준비해 온 것은 아니고 한 두 분이 매우 열성적으로 준비해 주셨다. 언젠가는 백숙을 해 오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말이 되나 싶은데, 회의실 한 켠에서 부르스터를 켜놓고 데워서 이쁜 그룻에 담아줬다. 백숙의 향기가 회의실 문틈을 넘어갔기에 점심 식사 후에 출출함을 느끼던 많은 분들이 코를 벌름거리며 회의실 앞을 기웃거리던 모습이 눈에 선명하다.
이런 모습들이 2003년 제휴비즈니스팀의 팀워크를 대변하는 장면일 것이다.
2)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었던 것
우리는 입사한 날, 입사한 사람이.
입사한 사람이 첫 번째 월급을 받으면.
그리고, 그 사람이 입사한 지 3개월이 되어 (수습기간이 지나 정직원으로써) 월급을 받으면.
인재 소개를 통해 거의 입사가 확정된 상태에서 면접을 본 사람은.
내가 보통 이런 얘기를 하면 안 믿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당시에 우리 팀 문화가 그랬다. 그리고, 그 일은 나와 팀장이 주도했다. 입사한 첫날은 보통 팀장이나 선배들이 축하주를 쏘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보통의, 보편적인 관례를 깨 보기로 했다. 입사하자마자 갑자기 당하면 충격이 있을 수 있으니 면접 시에 은연중에 그런 얘길 해줬던 것 같다. 참 다행이었던 것은... 누구도 그런 문화에 대해서 의견,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어쨌든. 이런 이상하리만치 독창적인 문화가 있었기에 우리는 정기 회식 외에도 함께 어울리는 시간들이 많았고, 나와 팀장은 제휴사 대표님들과의 만찬이나 회사 다른 팀과의 교류에도 꼬박꼬박 함께하는 경우가 많아서 한 주의 대부분을 함께 하곤 했다.
3) 회식은 호텔에서
2003년에서 2006년 사이었음에도 엠파스의 회의 식비는 1인당 7만 원(월) 정도로 적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5성급 호텔의 저녁 뷔페가 10만 원 안팎이었기에 가끔씩은 호텔 뷔페에서 회식을 했다. 가장 자주 갔던 곳이 메리어트 호텔과 임페리얼 팰리스 호텔이었다. 어떤 때는 한강에 떠 있는 선상 레스토랑을 간 적도 있었다.
4) 여자친구 동반 모임
모든 사람이 그랬던 건 아니고, 나와한 친구가 주로 당시 사귀었던(그리고 각자 결혼까지 이러진) 여자친구들 데려와 함께 어울렸는데 팀 회식뿐만 아니라 여러 회사 모임에 나는 지금의 내 와이프를 동석시켰다. 나와 개인적으로 친분을 나누던 많은 모임에 늘 함께 가곤 해서 어떤 모임에도 여자친구의 존재는 이질감이 없었다. 무엇보다 아름답고 매력적인 미인은 어떤 모임에도 환경을 받을 수밖에 없다.
5) 제휴사 직원 동반 모임
60여 개의 제휴사 대표님들 혹은 담당자들과 업무 협업은 우리에게 일상이었다. 그리고, 그런 일상을 유연하게 하는 것은 회사 대 회사의 계약관계를 넘은 인간관계다. 특히, 나는 젊고 열정이 있었기에 그런 인간관계를 통해서 회사에 바라는 이익의 분배 관계를 넘어서 각자에게 네트워크가 되기를 희망했다. 그런 결과로 제휴사 직원 중 몇몇은 나의 동료가 되었다. 지금 SK C&C에서 그리고, 배달의 민족에서 협업으로 활약하는 분들이다.
그들을 회사로 데려오기(채용이나 소개가 아니라 정확히 데려온다는 표현이 맞는다.) 위해 한 번은 팀장과 크게 싸운 일도 있었다. 어쨌든 나는 그들에게 네트워크가 되어 줬고, 그들은 나를 기회로 하여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었다. (사실이 그렇다.) 이런 네트워크를 공식화하여 더 많은 인간관계가 각자의 상황과 목적에 맞게 발전하기를 바랐다. 하여, 레귤러 하진 않았지만 모임을 만들어 많은 분들을 초대했고 함께 어우러져 각자가 목적하고 생각하는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줬다. 그중에는 결혼에 골인한 분들도 있는데 나중에 소소한 보답을 받기도 했다.
찬란했던 젊음의 한 시절을 공유했던 엠파스에서 만난 이들.
각자의 시간으로 나뉜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는 그래도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만나기도 하고, 가끔 번개를 하거나 더 친분이 있었던 친구들과는 시시때때로 콜콜하게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함께 했던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고, 나뉜 시간과 공간은 우리의 새로운 공감대를 끌어올만한 이야깃거리를 더 이상 만들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나뉨은 단순이 피아의 관계뿐 아니라 우리 인생이 젊음과 청춘의 시간에서 중년이라는 너무나 두텁고도 이질적이며 함께 나누지 못한 시간으로 스며들면서 서서히 서로에게 잊힌 것이리라.
그럼에도, 우리가 각자의 시간에서 청춘과 젊음의 시간을 상기할 때,
오래된 달력의 동그라미 쳐진 어떤 날의 기록과 같이 생각만 해도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는 우리의 빛나는 날이었다.
지금도 전화 한 통이면 아마도 우리는 다음 주에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단톡방으로 만들어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면 우리의 인연을 다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필요 그 자체나 과거의 어떤 목적을 가진 네트워크가 아니라. 회상하고 소회 하는 우리의 과거를 현재로 끌어 들어올 각자의 끌림과 용기일 것이다.
용기를 내어볼까?
- 까칠한 펜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