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덕목 13. 관계(4) - 평가에 신경 끄기

당신이 그렇게 판단하셨다면, 제가 어쩔 도리가 있나요.

by chalna

선생님도 뭔가 방법을 제시해주고 싶은데 말이야 K.

그게 답이 없는 거더라.




어른의 덕목 13. 관계(4) - 평가에 신경 끄기



열심히 가르쳐 올려 보낸 제자가

울상으로 옛 담임의 교실을 찾을 때는 뭔가 심각하다는 뜻이다.



"저는 친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걔네가 저 빼고 톡방에서 제 욕했더라고요."

아이고.


"처음에는 저보고 학원 숙제 다 해오는 사람 너뿐이라고 해서 제가 걔들 거 다 도와줬거든요.

근데 그랬더니 공부 좀 한다고 잘난 척하는 거냐고 하는 거예요.

막 발표 많이 할 때부터 재수 없었다면서, 너 그렇게 하면 남들이 욕한다면서."


훌쩍거리면서 전하는 내용이 너무 뻔해 짜증 나면서도

그 일이 K에게 얼마나 큰 일일지 느껴져 속이 상했다.

나도 그랬으니까.

하이고, 인간이란 나이가 적으나 많으나 어찌 이리 비슷한지.




살아가며 남들이 내리는 나에 대한 평가를 완전히 무시하기란 쉽지 않다.

왜냐면, 잘 지내고 싶으니까!

같이 어울리고 소속감을 느끼고, 지지와 연대를 나누고 싶으니까!

난 이 부분이 인간의 본능과 맞닿아 있다고 본다.



또래관계가 중요한 10대 시절엔 타인의 평가에 특히 예민하다.


난 초등학교 고학년 내내 '잘난척한다'라는 친구들의 평가(라고 쓰고 험담이라 하자)에 시달렸는데

내가 당최 무엇을 잘난척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잔뜩 수그러들어 '미안해'를 반복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진짜 잘난척쟁이였어도, 그렇게 남들에게 미안할 일인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 혹독한 장기간의 평가에 시달렸던 나는

중고등학교에 진학해선 어떤 주제든 입을 꾹 다무는 전략을 취했는데

그랬더니 자기 공부만 하는 이기적인 애-라는 소문이 들려왔다. 젠장.



성인이 되고 달라지지 않았냐고? 전혀.

대학시절 한 남자선배가 넌 너무 드세서 다가가기 어렵다는 말을 했었다.

내가 드세다고? 당최 이해가 안 됐지만 어쨌든 나는 행동양식을 조금이라도 바꾸려 노력했다

많이 웃고, 말투도 좀 부드럽게 해보려 하고.

그랬더니 (속된 말로) 남자들에게 꼬리 치려 한다는 말이 들려왔다. ( 적고 나니 되게 웃기다. 내가? )



취업 후엔 이런 일도 있었다.

간단한 일을 왜 다른 선생님들께 물어서 하냐, 일을 미루는 거냐, 하는 소리를 듣고

꽤 큰 일을 오랜 시간에 걸쳐 혼자 처리했더니

왜 의견도 묻지 않고 독단적으로 하냐, 네가 관리자냐, 그런 식으로 하면 너 욕먹는다 하는 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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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잘못되었다. 본질보단 겉을 보고 남을 평가하는 사람들 전부!

하지만 이 모든 과정에서 제일 잘못한 건 바로 나다.



이런 평가를 들을 때마다 나는 크게든 적게든 나를 변화시켜 남들의 평가에 맞추려 했다.

왜냐면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으니까! 소외당할까 봐 무서우니까!

나에 대해 나쁜 소문이 도는 것도 무섭고, 이상한 사람으로 찍힐까 봐도 무섭고.

그런데 내가 타인의 평가를 따라다녔을 때, 그들이 나를 인정해 주었을까?

아니.

또 다른 평가가 계속 이어졌다.


눈치란 눈치는 전부 보다가 진짜 내가 누군지 모르겠는 지점까지 가고서야 나는 깨달았다

아이고, 제일 잘못한 건 나구나.

나는 남들의 입맛대로 나를 바꾸는 것에 동의했던 거다.


남들의 의견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 하며

아무 권한 없는 남들이 나에게 손대는 것을 내버려 뒀구나.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절대 조절할 수 없다는, 기본적인 진리를 무시했구나.



그러니까 사실, 타인의 근거없는 평가는 어느 정도 무시했어야 했던 거다.



저는 이런 사람이고요

제가 생각했을 때는 이게 올바른 방식이고

제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태도였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이 저를 나쁘게 평가하신다면,

나를 이해해 보려는 노력이 손톱만큼도 없으시다면

아이고. 어쩔 수 없죠.

당신이 저를 바꿀 수 없는 것처럼

저도 당신의 마음은 바꿀 수 없는데요. 해야 했던 거다.



타인의 근거없는 평가에 신경 끄기, 그것 참 어렵다.

그래도 이제는 누가 ' 누가 너 안 좋게 평가한대' ' 그렇게 하면 너 욕먹어' 하는 소리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게 조언이었는지, 평가였는지, 아님 그냥 질 나쁜 욕이었는지 알 수가 없거든.

입맛대로 바꾸기 쉬운 애라고 생각했는지도

아니면 진지한 평가가 아니라 그냥 가십이었는지도

어쩌면 그냥 이유 없이 내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도



나라는 사람의 오리지널리티는 타인의 의견과는 무관하고

오히려 내가 나를 평가하는 방식이 제일 중요한 거라는 간단한 사실을

나는 긴 시간의 상처와 맞바꾸어 깨달았다.



그래서 이제 누가 내 욕을 한다고 해도 관심 없다.

그렇구나, 욕하고 싶은 네 마음을 내가 어쩌겠어.

네가 날 싫어한다면 네가 떠나는 게 내가 나를 바꾸는 것보다 쉽지 않겠어?

어차피 남을 사람은 다 남더라.






나도 긴긴 세월을 통해 체득한 것을 어리고 여린 제자가 바로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없다.

선생님 그걸 어떻게 무시해요, 그 무리에서 저만 소외되는 것 같아요,

걔네랑 못지내면 반에 놀 친구가 없어요, 맞춰줘야 될 것 같아요 하는 말들이 이어졌다.



한 방에 효과적이면서 시원한 다른 방법을 알려줄 수 없어서 나도 속상했다.

널 진짜 소중히 여기는 친구라면 너를 평가하려 들지 않을 거라는

남들의 말에 너를 맞춰 변신시키지 말라는 힘없는 말들만 반복했다.


그래도 힘들면 또 말하러 와 - 말에 끄덕이는 걸 보니 좀 후련하기는 한가 보다.

너도 언젠가 이 간단한 사실을 깨닫는 날이 오기를

의연하게 나는 나야! 하게 되는 날이 빨리 오기를 응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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