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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나라 말의 숲'을 걷는 두 사람

by 제스혜영

아빠는 받침 있는 단어도 제법 괜찮게 말할 정도로 눈에 띄게 회복되었다. 혼자서 걷고 먹고 화장실 다녀오는 것쯤은 문제가 되질 않았지만 아직도 엄마의 그림자에선 벗어날 수 없었다. 뭔가 새로운 쉼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 아빠와 엄마를 중국으로 초대했다. 내가 살고 있는 연길은 한글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조선 족분도 쉽게 접할 수 있어서 부모님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비행기 공항에서부터 택시 타고 집까지 오늘 길에 보이는 도로 안내판과 간판에 한글이 많다 보니 아빠 눈이 휘둥그레졌다.

"비행기를 타고 또 한국으로 온 것 같네."

아빠가 실룩실룩 웃으며 말했다. 그때는 몰랐다. 너무나도 한국 같은 이웃나라에서 아빠가 대성통곡하게 하게 될 줄을.


아빠는 한 달 정도 우리 집에 머물렀다. 어느 날 우리 집 딸아이와 또래 친구를 둔 리키 가족을 초대한 적이 있었다. 리키는 연길 국제 학교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이었고 일본인이다. 남편은 미국인이고 두 딸과 함께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살고 있었다. 리키 가족을 처음 초대했다. 다행히 한국음식을 좋아한다고 해서 아침부터 분주하게 잡채와 불고기를 준비했다. 리키식구와의 점심 식사는 마치 국제회의를 방불케 했다. 일본어, 영어 그리고 한국어가 식탁 위로 탁구공처럼 '팅탁 팅탁' 오가는 게 환상적인 팀이라고 생각했다. 반박자 느리게 통역이 되더라도 우리는 눈물이 찔금 나올 만큼 실컷 웃고 떠들었다. 식사 후 아이들은 딸 방에서 놀고 어른들은 거실에 앉아 차를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가 이어졌다. 창 밖으로 노란 해가 스멀스멀 창틈으로 기어 들어왔다. 따스한 기운은 건물로 빽빽한 연길 도시를 벗어나 고요한 바닷가를 떠오르게 했다. 마치 바닷가를 산책 나온 사람들처럼 그저 온몸으로 평온함을 만끽하는 중이었다. 바람 한 점 없이 차분한 공기를 갑자기 망치로 박살 낸 사람이 있었으니, 아빠였다.

“일본 놈들 때문에 조선 사람들이 비참하게 죽었었지. 우리나라는 왜 그렇게 힘이 없었을까? 힘만 없었나? 내께 지꺼고 니꺼도 지꺼고 우리께 어딨었어?"

그토록 평화롭던 바닷가에 찌지직 금이 갔다.

“너네 할아버지도 죽을 고생 하고. 할머니도..”

차분했던 공기는 금세 차갑게 변해 버렸다. 싸늘한 공기가 아빠 피부에도 닿았을까. 아빠가 부르르 입술을 떨며 한 마디 덧붙였다.

“일본 사람이 다 그렇다는 건 아니고 당연히 좋은 사람들이 많지.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하는 거니까…”

나보고 빨리 통역하라고 허벅지를 툭툭 쳤다. 허벅지의 진동이 가슴팍까지 턱턱 치고 올라와 숨이 가빴다. 솔직히 내가 어떻게 통역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식음땀이 나서 손바닥으로 바지를 몇 번이고 닦고 닦았던 기억이 난다. 경고 없이 훅 들어온 아빠의 공격에도 리키는 침착했다. 그리고 갑자기 눈물을 뚝뚝 떨구며 대답했다.

“내가 일본인으로 용서를 구합니다. 미안합니다!”

별안간 용서라니. 상상치 못했던 말이 들려서 당황했다. 오히려 내가 리키를 궁지로 몰린 것 같아 미안하기도 했다. 그것도 잠시 아빠가 리키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고는 펑펑 울었다. 눈물, 콧물에 숨이 꺽꺽 넘어갈 만큼 흐느꼈다. 아빠는 슬픔을 한꺼번에 삼켜버린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일본어가 예전에 내차 버렸던 이웃나라 말 한글
지우려 해도 결코 지워 없애지 못한 한글
용서하십시오 유루시테 쿠다사이
땀 뚝뚝 흘리며 이번에는 이쪽이 배울 차례이지요

한국을 사랑한 일본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가 젊은 시인 윤동주를 동경하며 쓴 <이웃나라 말의 숲>의 일부분이다. 결코 내차 버리려 해도 없애지 못했던 한글. 마치 증명이라도 하듯 생명과도 같았던 한글은 이웃나라 연길에서도 숱한 박해를 견디며 버젓이 살아 있었다. 골목마다 거리마다 간판마다. 한글만큼이나 역사가 남겨준 상처와 아픔 또한 지워지지 않고 사람 마음속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1945년 광복이 돼서야 일본 탄광에서 죽도록 노동만 했던 할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일 년 후 1946년, 아빠가 태어났다. 어른들은 그를 해방둥이라고 불렀다. 나는 아주 뜻밖의 장소에서 이웃나라 말의 숲 속을 걷는 두 사람을 마주했다. 숨 가쁘게 보릿고개 시절을 견뎌왔던 해방둥이와 눈물 뚝뚝 흘리며 용서를 들고 온 화해둥이. 조금이나마 가까이 다가가려는 그들이 아름다워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어떠한 나라의 언어에도 끝내 굴복하지 않았던
굳센 알타이어족 하나의 정수에
조금이나마 가까이 가고 싶어 모든 노력을 기울여
그 아름다운 언어의 숲으로 들어가고 있지요


*이바라기 노리코 <이웃나라 말의 숲> [촌지],198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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