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산책을 나왔다. 그제가 절기상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인데도 눈 아닌 비가 내려 숲 속 오솔길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길섶에 겹겹이 쌓인 낙엽을 헤치고 나온 꽃 한 포기가 눈에 띄었다. 초록색 잎과 줄기, 하얀 털이 송송한 꽃봉오리와 아기 똥색 같은 샛노란 꽃이 해맑게 방글거렸다. 생각지도 아니한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뻤다.
또래 생각
소년 때 꼴망태 메고 쇠꼴 베러 다니면서 많이 본 낯익은 꽃이었다. 오뉴월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 허기를 면하려고 떼 지어 다니면서 감자 서리나 밀 서리할 때, 밭둑에서 마냥 지켜만 보던 꽃이기도 했다. 서리해 온 것 구워 먹다가 입가에 숯검정 묻었던 또래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꽃 이름
어느 시인은 서른다섯 될 때까지 이 꽃 이름을 몰라서 부끄럽다고 고백하였지만, 나는 그 배가 지나서야 꽃이름이‘애기똥풀’이란 걸 알았다. 줄기나 잎을 꺾었을 때 나오는 노란 유액이 아기 똥색과 닮아서 그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눈을 뜨지 못하는 아가 제비를 어미 제비가 그 유액으로 정성껏 씻어 주어 눈을 뜨게 했다는 그리스 신화도 있다. 꽃말은‘엄마의 사랑과 정성’ 또는‘몰래 주는 사랑’이다.
한파
온통 흑갈색 낙엽으로 뒤덮인 쓸쓸한 숲 속에서 외따로 피어 있는 가냘픈 모습이 예쁘기도 하지만 가련하다. 어디선가 갑자기 찬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꽃대가 끊어질 듯 심하게 흔들거린다. 아마도 이맘때 부는 손돌바람이지 싶었다. 홀로 핀 풀꽃이 곧 닥쳐올 한파를 어떻게 넘길지 생각만 해도 안타깝다.
사랑받고 싶어서
제철인 봄에 무리를 지어 다른 꽃들과 한꺼번에 피었더라면, 누가 관심이나 가지고 눈길이나 한 번 제대로 주었을까 싶었다. 관종(關種)까지는 아니더라도, 저 풀꽃도 한 번쯤은 잡초가 아닌 꽃으로서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싶어서 고난을 무릅쓰고 지금 피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영원히 시들지 않은 꽃은 없겠지만, 이왕에 핀 것, 좀 더 오래 보았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