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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원 Jun 30. 2023

나도샤프란

꽃이름

 꽃 한 송이


 꽃 한 송이가 나타났다. 거실 한구석에 감자를 심어 놓은 작은 화분에서다. 한 뼘 반 정도 되는 연둣빛 여린 꽃대에 아기 주먹만 한 꽃이 해맑은 미소를 지으면서 반긴다. 누가 심었거나 가꾸지도 아니했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왔을까?  


 밤에는 보이지 않다가 낮이 되니 보였다. 밝아지면 꽃잎을 벌렸다가 어두워지면 오므리는 모양새다. 남의 화분에서 더부살이하느라 폐가 되지 않으려고 그럴 것 같다. 주인 몰래 꽃을 피우려고 저 혼자서 얼마나 애를 태웠을까. 미리 알고 따로 화분 하나 마련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상사화


 잎도 없이 꽃만 남았다. 생전에 잎과 꽃이 서로 만날 수 없어 ‘이룰 수 없는 사랑’이란 꽃말을 가진 상사화(相思花)의 한 갈래인 것 같다. 봄에 나온 잎은 꽃대가 나올 때 즈음 소임을 다한 후 스스로 사라졌을 것이다. 잎이 헌신하여 나비와 벌에게 꽃을 돋보이게 하려는 자연의 조화(造化)가 신비롭다. 여섯 개로 갈라져 나온 꽃잎은 연분홍 그러데이션(gradation)이다.

  수술은 저마다 꽃잎 하나씩을 망토처럼 걸치고 끼를 한껏 부리고 있다. 황금가루가 가득 묻은 깃발로 암술을 향하여 애타게 프러포즈를 한다. 암술은 상아처럼 매끈한 살결과 늘씬한 몸매로 갖은 유혹 하면서 수술의 애간장을 녹인다.


꽃 이름


  꽃 이름이 궁금하다. 스마트폰꽃에 갔다 대었다. 이름이 ‘나도사프란’이다. ‘사프란아재비’ ‘기생란’ ‘실란’이란 다른 이름도 있다. 하필이면 왜 다른 꽃 이름에다 ‘나도’ ‘아재비’를 덧붙였을까. 꽃 모양이 사프란과 비슷해서 그렇게 지었다는 설명이 있다. 


 나도사프란은 수선화과에 속하고 멕시코가 원산지이다. 붓꽃과이고 원산지가 유럽인 사프란과는 조상과 고향부터 아예 다르다. 내 눈에는 꽃 모양도 그렇게 비슷해 보이지도 않는다.


  사프란은 암술대를 말려 향신료로 사용한다. 가격이 황금값이다. 비싸다고 부러워하거나 닮고 싶어 하지도 아니한 꽃을 두고, 황금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제멋대로 이름 지은 것 같아 못마땅하다. 걸맞은 이름으로 다시 지었으면 좋겠다.


  지나간 행복


  꽃말은 ‘지나간 행복’이다. 미래의 시점에서 보면 바로 ‘지금의 행복’이다. 은퇴한 후, 아직도 지나긴 행복이나 되새김하는 줄 알고 지금의 행복을 보여주려 여기까지 왔을 것이다. 나도사프란은 지금도 많은 것을 누리면서도 그것이 행복인 줄조차 모르는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려고 찾아온 귀한 손님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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