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원 치료를 한 주 받은 날, 총무과장이 하숙방으로 와서 인사 명령을 알려 주었다. 사고 후 7주째 되는 날이었다. 입사 후 10년 만에 영남지역본부를 떠나 영덕지사로 가게 되었다. 인사권자인 본부장에게 신고를 한 후, 근무할 곳으로 가는 것이 그동안의 관례였다.
총무과장은 강 대리에게 아직도 몸이 완쾌되지 않았으니, 신고식에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고 배려하듯이 말했다. 본부장이 대면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점심시간에 기획부장이 다녀갔다. 기획실에서 송별회 자리를 마련했으니 참석해 달라고 했다. 몸 상태를 핑계로 사양했다. 부장은 약속한 것은 지켜 달라고 못을 박은 후 돌아갔다. 그냥 자리를 모면하려고 했던 말이 이제는 무슨 대단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쐐기를 박았다.
강선오 부 지사장은 강구항 인근에 있는 영덕지사에 도착하여 낡은 관사에 짐을 풀었다. 홀로 빈 방에 누워 생각해 봤다. 회장 맞춤형 보고서를 작성하는 방법이 나오는 그런 책이 있을 리 만무했다. 골똘히 궁리해 보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때 한 말은 그냥 해 본 허언이었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러면 그것을 또 약점 삼아 더 난처한 요구를 해 올 것이 뻔했다
더 이상 엮이지 않을 깔끔한 한 방이 있어야 한다. 밤잠을 못 이루고 뒤척거리다가 늦게 일어났다. 마침 일요일이어서 아름다운 해안가를 산책했다. 철조망이 설치된 해변 곳곳에 초소가 있었다. 경계 근무를 하는 군인들을 보니 그 시절 생각이 났다. 그때 에피소드(episode) 하나가 번뜩 떠올랐다. 쾌재를 불렀다.
35개월 병사 의무 복무 기간을 한 달 앞두고였다. 단기 교육을 받고 갓 임관된 소위가 부대 정훈장교로 왔다. 깔끔한 외모와는 다르게 형뻘이나 또래인 병사들에게 습관처럼 욕설과 구타를 일삼았다.
더구나 당직사관이라도 되는 날에는 정신교육을 한답시고 병사들을 야간에 모아 놓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를 하면서 잠잘 시간을 빼앗았다. 당시 병영에서 그런 일은 흔했고 문젯거리도 아니었다.
하루는 취침 시간을 30분이나 지나서 교육을 마치면서 질문이나 건의할 것이 있으면 손들고 하라고 여유를 부렸다. 병사들의 불만이 무척 많았지만, 후환이 두려워 아무도 손을 들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모든 눈길이 전역을 코앞에 둔 말년 병장인 선오를 향하고 있었다
.
소위가 질문하지 말라는 의미로 한 말인 줄은 알았지만, 그만 손을 번쩍 들고 말았다. 고달픈 병사들로부터 모이는 눈길을 선임이 차마 외면할 수가 없어서 총대를 메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