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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유 Jul 01. 2024

시카고 때문에 공부를 못한다는 게 말이 돼?

뮤지컬 시카고 때문에 시험을 망치는지, 시험을 잘 보게 될지 궁금하다

엄마?

응, 학교 가는 길이야?

응, 할머니는 좀 어때?

그냥 그래.

할무니?

응.

할무니 밥 먹었어?

응.

뭐 먹었어?

…(엄마는 멀뚱멀뚱 대답없음)

할머니 곰탕 먹었어.

엄마, 나 낼모레 시험이야.

공부 많이 했어?

아니, 시카고 때문에 공부를 못했어.

? 뮤지컬 시카고?? 시카고가 왜애???

(공부를 못했다고 놀란 거 아님. 어떻게 나의 최애 뮤지컬 시카고를 아는지 신기해서 놀란 것)

공부하려고 앉으면 자꾸 시카고 노래랑 춤이 자꾸 떠올라.

엥? 왜 갑자기???

엄마 몰라? 요즘 시카고가 떡상했어. 인스타에 떠서 나도 자꾸 보게 돼.


떡상이라는 말뜻은 잘 모르지만, 맥락상 급상승한다는 말인 거 같다.


아, 그래?

하도 많이 보다보니 나도 다 외웠어. 록시송 들어봐.


모두가 알게 될 이름, 그래 바로 롹시.

행운이 따르는 이름, 맞아 바로 롹시.

멍청한 정비공의 아내는 누구? 안녕, 롹시:

살인도 예술이라네.


속으로, 공부를 그렇게 하지 이 눔아,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말로 내뱉지는 않았다. 역시 너나 나나 시험 앞두고 엉뚱한 짓을 하는 건 똑같네. 내 딸 맞네.


엄마, 최재림 알아? 대학시절 묵지빠로 유학 갔다 온?

응, 뮤지컬 배우. 근데 묵지빠로 유학 갔다는 게 뭐야?

아, 그건 나중에 엄마가 인터넷에 찾아봐. 엄마도 세상 돌아가는 건 좀 알아야지. 할머니 간병하면서 머리도 식힐 겸 유튜브 같은 것도 좀 보고 그래.

아무튼 최재림이 복화술을 정말 잘하거든. 원래 우리말이 복화술이 정말 어렵대. 근데 최재림이 정말 잘해. 요즘 학교에서 최재림 복화술이 유행이야. 쉬는 시간에 애들이 막 따라 하고. 어떤 남자 애는 인형 가져와서 무릎에 앉혀놓고 흉내 내. 나도 연습하고 있어.

아, 그래?

엄마는 시카고 본 적 있어?

응, 많이 봤지. 엄마가 좋아하는 뮤지컬이야.

많이? 어디에서?

런던 이스트엔드에서도 보고 뉴욕 브로드웨이에서도 보고, 물론 싼 티켓이라서 잘 안 보였지만. 한국에서도 봤어. 엄마가 좋아한다고 아빠가 생일선물로 보여줬는데. 재작년인가 지수 엄마가 초대 티켓 선물 받아 같이 본 적도 있고.

오, 아빠랑도 봤다고? 아빤 그런 얘기 안 하던데…

너 배 속에 있을 때였던 거 같은데… 오래돼서 기억이 잘 안 나네. 오늘 저녁에 아빠한테 물어봐. 엄마는 영화 시카고도 좋아. 10번쯤 봤을 걸. 엄마가 캐서린 제타 존스랑 르네 젤위거라는 배우 좋아하거든. 둘이 벨마랑 록시로 나와. 시험 끝나고 영화부터 봐봐.

나도 뮤지컬 보고 싶어.

나중에 보면 되지.

나 이제 만 15세라서 볼 수 있어. 지금 하고 있어.

아, 그래? 그래서 바이럴해서 떡상했나 보네. 그럼 시험 끝나고 보면 되겠네.


떡상, 이란 말을 방금 배워서 써먹고 딸이 뭐라고 할까봐 조마조마했다. 신조어를 이해 못하면 그거대로 뭐라고 하고, 그걸 따라하면 또 뭐라 한다. 미묘하게 뉘앙스가 다르기도 하고, 내 나이에 신조어 쓰면 젊어보이려고 애쓰는 것 같다나?


티켓이 엄청 비싸다던데?

최근에 뮤지컬 안 봐서 얼만지 모르겠네. 얼마 하려나? 가격도 가격이지만 몇몇 유명 배우들 티켓팅은 어렵기도 하고. 근데 싼 것도 있긴 있을 걸. 잘 안 보이는 자리여서 그렇지.

엄미 나 한번 보고 싶어.

시험 잘 보면 시카고 보여줄게.

오, 진짜?


딸에게 보상 정책 처음으로 해본다. 보상을 준다고 해서 공부를 잘할 것 같지도 않고, 보상을 위해서 공부를 한다는 얘기는 보상이 사라지면 공부를 안 한다는 얘긴데, 내가 보상을 많이 해줄 수 있는 재력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보상 정책을 써본 적이 없다. 그런데 최근에 공부가 너무 하기 싫다면서, 딸이 자기도 다른 애들처럼 보상 정책이 필요한 거 같다면서 그런 것 좀 해보라고 제안한 적이 있는데, 나는 그 보상 때문에 공부할 거면 안 해도 괜찮아, 멋있는 척하면서 거절했었다. 그런데 낼모레가 시험이라고 걱정을 하는 놈이 시카고 타령만 하길래 처음으로 보상 카드를 꺼내 봤다. 그게 효과가 있을지, 그거 보려고 시험 잘 볼지, 아니면 진짜 시카고 때문에 공부 못해서 시험 망칠지 어떨지는 모르겠다. 근데 지금 마음으로는 시험을 못 봐도, 오히려 시험을 못 보면 위로 차원에서 보여주고 싶다. 엄마 간병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같이 있어주지 못하니까 돈을 써서라도 내 마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에 생기고 그런다. 그나저나 딸이 어느새 커서 뮤지컬 시카고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새삼 신기하고 감개무량하다. 언제 이렇게 컸지? 엄마가 집에 없어도 아무 아쉬움도 없어 보일 정도로 컸다. 많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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