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엄격한 컨디션 관리
엄마 간병으로 떨어져 지내고 있는 딸이 방학하고 두 번째 나를 방문하여 4박 5일을 같이 보내고 오늘 간다고 한다.
내일 개학인가?
아니 내일모레.
그럼, 하루 더 있다가 내일 가면 안 돼?
(단호하게) 응, 안돼! 내일 가면 너무 피곤해.
내일 아침 일찍 가서 반나절 쉬고 모레 학교 가면 되잖아.
(또 단호하게) 안 돼! 오늘 가서 집에서 자고, 내일 하루 정도는 집에서 푹 쉬고 학교 갈 준비도 해야지.
개학이라고 뭐 특별히 준비할 거 있나? 그냥 교복 입고 학교 가면 되는 거 아닌가?
그래도 개학인데 마음의 준비가 필요해.
엄마는 너랑 더 같이 있고 싶은데…
나도 엄마랑 같이 있고 싶어. 하지만 오늘은 집에 가야 돼. 다음에 또 올게.
딸과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 좋고 재미있어서 더 같이 있어 싶어 졸라 봤지만 소용없었다. 딸은 어려서부터 자신의 컨디션 관리를 위해서 체력 안배, 시간 안배를 잘하는 편이었다. 하루 밖에서 놀았으면 하루는 집에서 쉬었다. 하루 친구를 만났으면 하루는 혼자서 뒹굴거려야 한다는 철칙이 있어서 누가 놀자고 꼬셔도 거절했다. 여행 갔다 오면 하루이틀은 집에서 여독을 풀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시간을 가졌다. 그래서 오늘 집에 가서 내일 방학의 마지막날을 보내고 학교에 가겠다는 것이다. 나는 일하거나 놀 때도 체력 안배, 컨디션 조절을 하지 않고(못 하고) 질릴 때까지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한번 놀고 나면 한동안은 놀고 싶지 않았고 일할 때는 번아웃이 자주 왔다. 그렇게 선제적 휴식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강제적 휴식을 갖곤 했다.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야 체력적 한계로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해 체력 안배를 하기 시작했다.
나와 달리 딸은 어려서부터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다. 자신이 가진 신체적, 정신적 에너지를 이해하고, 자기 몸에 맞춰 스스로 컨디션을 관리하는 딸이 기특하기도 하고, 엄마에게서 심리적으로 독립한 것 같아 다행이고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나의 간절한 부탁을 거절하고 매정하게 떠나는 딸에게 좀 아쉽고 서운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네. 이래서 품 안의 자식인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