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현실 사이
엄마?
이제 학교 끝났어?
응, 오늘 좀 빨리 끝났어.
학교에서 별일 없었어?
응, 별일은 없었어. 근데 이런 일 있었어. 오늘 사회 시간에 선생님이 학습지를 나눠 주셨는데 거기에 우리 시 로고가 들어가 있었단 말이야. 근데 그 로고가 시장 바뀌면서 다른 걸로 바뀌었거든.
그래? 몰랐네. 예전 로고 귀엽고 괜찮았었는데…
그러니까 내 말이. 시장 바뀌었다고 로고는 왜 바꾸는지 아쉬웠던 말이야. 어쨌든 그래서 선생님한테 말씀드렸거든. 로고 바뀌었다고. 그랬더니 선생님이 에이, 그럴 리가, 하시는 거야.
뭐, 선생님도 모르실 수 있지.
내가 맞다고, 인터넷에 찾아보시라고 해도 선생님이 그럴 리가 없다면서 믿지 않으시더라고. 그런데 조재은, 조재은 알지?
과학고 준비한다는 친구?
응, 조재은이 선생님 로고 바뀐 거 맞아요, 하니까. 그제서야 선생님이 그래? 하시면서 인터넷에 찾아보시고, 어, 맞네, 진짜 바뀌었네, 하시는 거 있지?
에이, 선생님 너무 하셨네. 공부 잘하는 애가 말하니까 믿으신 건가?
내가 억울해하면서 선생님한테 그랬지. 왜 내가 말할 때는 안 믿고 재은이가 말하니까 믿으시냐, 서운하다고.
그랬더니 선생님이 뭐라셨어?
선생님이 혼자 말할 때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둘이 그러니까,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나한테 미안하다고 하시더라고.
그래서 안세영이 금메달 따고 자기 목소리 낸 건 가봐. 역시 억울하면 공부를 잘해야 되는 건가?
엄마, 왜 그렇게 말해? 결론이 이상하잖아. 공부를 잘하는 사람 말만 들을 게 아니라 어느 누구가 말하더라도 귀담아 듣고 존중해야 한다고 말해야지. 그런 세상이 되어야지.
그… 그런가? 그으래, 그런 세상이 되어야지.
가끔 딸 홍시와 대화를 하다 보면 맞는 말이긴 한데 너무 이상적이어서 앞으로 세상 참 살기 힘들겠다, 앞으로 많이 실망하고 상처받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방주사 차원에서 현실 사회의 불평등, 불공정, 부조리, 불합리함을 미리 귀띔이라도 해줘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어차피 딸이 살 세상이고, 어차피 살면서 경험하게 될 테고, 그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스스로 배워가겠지, 딸이 사는 세상이 나와 같을 리도 없고, 같은 것을 경험하더라도 생각이 다르니까, 괜히 강의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딸 이야기나 들어주기로 했다. 오늘 아이유 티피케팅해야한단다. 벌써 세 번째 도전이다. 이번에는 꼭 성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