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남불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엄마, 학교 끝났어.
그럼 집에 가?
아니, 너무 더워서 도서관 가서 쉬었다 가려고.
그래, 좋은 생각이네. 오늘 학교에서는 별일 없었고?
음, 별일은 없었는데, 좀 피곤했어.
왜?
쉬는 시간에 다른 반 애들이 우리 반에 많이 놀러 왔단 말이야. 그랬더니 몇몇 친구들이 시끄럽다고 뒤에서 욕하는 거야.
뭐, 그럴 수 있지. 남의 반에 와서 시끄럽게 하면.
물론 그럴 수 있지. 그러면 자기들도 다른 반에 가서 떠들고 노는 걸 자제해야 되는 거잖아. 그건 생각 안 하고 다른 애들이 하는 것만 싫어하니까. 내로남불하면 나는 동조하기가 어렵더라고. 오늘 유난히 그런 일이 많아서 피곤했어.
그럴 땐 동조할 필요없이 넌 그렇구나, 그러고 가만히 있으면 되지 않아?
물론 그렇게 하지. 그런데 그런 게 너무 많으니까.욕하는 거 듣기도 싫고 동조하기도 그렇고, 그러니까 자리를 피하게 되더라고.
엄마도 찔리네.
엄마는 왜?
엄마도 내로남불인 거 같아. 예를 들어 엄마는 TV에서 조용한 여행 프로그램이나 야구를 주로 보고, 할아버지는 뉴스를 주로 보거든. 근데 할아버지가 TV볼 때는 내가 그 채널을 싫어하니까 시끄럽다고, 소리 줄이라고 뭐라 한단 말이야. 근데 할아버지도 엄마가 보는 프로그램을 안 좋아할 수도 있는 건데, 그 생각은 안 하고. 엄마가 보는 건 괜찮은 프로그램이라는 생각도 있고, 할아버지가 보는 것들은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고 이상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고.
맞네. 내로남불. 엄마는 왜 내로남불을 하는 거 같아?
음, 엄마가 TV를 볼 때는 할머니 간병하다가 휴식하면서 보니까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 할아버지가 그걸 좋아하는지는 고려하지 않고 내가 처한 상황만 보는 거지. 근데 할아버지가 TV를 볼 때는 할아버지가 보는 프로그램 자체가 마음에 안 드니까 그 소리가 싫은 거고. 왜 저런 프로그램을 보나 싶고.
음, 사람은 이기적인 존재니까 내로남불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을 거 같아. 그래도 엄마는 반성하고 있으니까 괜찮아.
너도 내로남불 아니야?
내가 왜?
친구들이 그러는 건 거슬리고, 엄마가 그러는 건 괜찮다고 하고.
큭, 그런가? 역시 내로남불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