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지만 힘들지 않은 이유
엄마, 나 지금 채식주의자 읽고 있는데 좀 힘드네.
자려고 누웠는데 딸에게 전화가 왔다. (우리는 지금 떨어져 살고 있다) 그럴 거라 생각했다. ‘소년이 온다’를 읽고도 전화로 눈물바다를 보내온 딸이다. 아이가 ‘채식주의자’를 어떻게 읽을 지 궁금하면서도 그 책을 읽기엔 아직 너무 어린가 싶기도 했다. 솔직히 노벨문학상이 아니었다면 읽어보라고 추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 자신이 힘들게 읽었다. 하지만 이미 노벨문학상으로 떠들썩해지면서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딸에게 한강 작가가 찾아왔고, '소년이 온다'를 먼저 읽고 한강의 다음 책으로 '채식주의자'를 집어든 상태였다. 읽지 말라면 더 읽고 싶은 게 사람의 심리고, 엄마가 읽지 말라면 숨어서 읽을 것이다. 그러기보다는 이왕 내가 켜둔 따뜻한 조명 아래서 읽게 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아이의 힘을 믿고 읽게 내버려두었다. 읽기 전에 최소한의 보호막이 될까 싶어 이렇게 말했다.
신화라고 생각하고 읽으면 좋겠어. 아이를 가장 힘들게 만든 사람은 영혜의 남편이었다. 고기를 억지로 먹이는 아버지가 아닌 게 신기했다. 영혜를 보는 시선, 영혜와 결혼 이유 등 첫장부터가 마음에 안 든다고 했다. 아버지의 가시적이고 물리적인 폭력보다도 남편의 은밀한 시선과 생각의 폭력이 더 역겹고 힘들다고 했다. 아버지가 고기를 억지로 먹이는 장면도 충격적이지만 그에 협력하는 가족 공동체의 폭력성에서 구토가 나올 것 같다고 했다. 언니 인혜만이 저항의 노력이라는 것을 하는데 저항이 무기력해지는 부분에서 힘이 빠졌다고 했다. 고기를 억지로 먹이는 장인의 모습을 보고 영혜의 남편이 부성애를 느꼈다는 부분에서는 특별하 쌍욕을 했다. 나는 이럴 때 튀어나오는 쌍욕을 그냥 두는 편이다. 욕을 장려하는 게 아니라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간 태운다고 그걸 못하게 하고 좋은 말, 예쁜 말로 교정하기보다는 아이와의 자유로운 소통을 선택한 셈이다. 남들 앞에서 안 하고 언젠가는 하지 않게 되리라는 믿음도 있고.
폭력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육식문화, 여전히 견고한 가부장제, 사랑한다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공동체의 폭력성, 폭력의 일상적인 얼굴, 하나하나가 너무 힘들다고 했다. 특히 영혜가 가족들의 폭력에 저항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해치는 장면을 인혜의 아이들이 목격한 장면은 폭력에 저항하기 위해 또 다른 폭력을 낳게 된 점이 너무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딸은 자기는 운이 좋아서 가부장제의 폭력에 노출되지 않았지만 여전히 만연한 인간 사회의 폭력성이 자기를 힘들게 한다고 했다.
평소 우울감을 가진 친구들에게는 차마 읽어보라고 권하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우리가 이렇게 고통스러운 현실을 직면하는 용기가 필요한 건 더 잘 살기 위해서라고 했다. 작가도 쓰지 않으면 더 힘들 것 같아서 쓰면서 힘든 쪽을 선택했을 거라고 말했다. 속으로는 아직 어린 딸에게 괜히 읽게 했나,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건 또 하나의 아동폭력인가 마음이 약해졌는데 1시간 30분 간의 통화가 끝날 무렵 딸이 한 말을 듣고 안도했다.
엄마랑 얘기하다 보니까 힘들었던 게 사라졌어. 오늘은 그만 읽고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