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가는 다리 놓아주기
읽히려는 자와 읽지 않으려는 자가 있다. 읽히려는 자는 엄마인 나고, 읽지 않으려는 자는 딸이다. 딸에게 주로 읽히고 싶은 것은 널리 알려진 고전이나 그냥 내가 좋아하는 책.
왜 안 읽으려고 할까? 정확한 이유를 따져 묻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은밀하게 관찰하고 내린 결론은 책이 너무 두껍거나(레미제라블) 아이 입장에서 제목이 딱딱하거나(오만과 편견), 표지에서부터 음산한 기운이 느껴지거나(몬스터콜스), 책 디자인이 매력적이지 않을 때(박사를 사랑한 수식) 거부했다. 그런 걸 떠나서 읽히고 싶어 하는 부모의 강한 의도와 열망이 느껴질 때 그게 부담스러워서 아이는 본능적으로 거부하거나 뒷걸음치기도 한다(데미안).
그럴 때는 푸시하지 않고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난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랄까. 계속 들이대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 그야말로 밀땅의 기술이 필요하다.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에 내가 거는 수작은 영화라는 다리를 놓아주는 것이다. 책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는 많다. 특히 고전은 그렇다. 다행히 지금은 영화를 보고 싶을 때 TV만 켜면 된다. 우연히 발견한 것처럼, 어, 이거 영화로도 있었네, 일단 몰랐던 척을 하고, 우리 이거 같이 볼래? 무심한 척 물어보면 대개는 본다고 한다. 영화를 안 본다고 한 적은 없다. 그렇게 영화를 보고 나면 책에 대한 진입장벽이 낮아진다. 특히 서양 고전을 아이들이 읽기 어려운 이유가 이름부터 문화적 배경까지 낯설어서 그런 경우도 많은데 영화를 보면 익숙해져서 책을 읽기가 한결 쉬워진다. 그렇게 영화를 보고 책도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책과 영화를 비교할 수 있게 된다. 신기한 것은 책과 영화 둘 다 보고 난 소감은 열이면 열, 책이 훨씬 재미있다고 말한다. 자연스럽게 책은 재미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각인된다. 결과적으로 영화도 재미있게 보고, 책도 재미있게 본 셈이다. 반대로 책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대개 영화에 실망을 한다. 원래 나는 책과 영화에서 책을 먼저 읽은 다음에 영화 보기를 선호하는 편이었는데, 딸의 이야기를 듣고 영화를 보고 책을 보는 게 둘 다 재미있게 보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과 영화를 비교한 이동진 평론가의 말이 기억이 난다. 그는 영화는 술 같은 거고, 책은 물 같은 거라고 표현했다. 책은 좋은 의미에서 우리를 차갑게 만들어주고, 영화는 좋은 의미에서 우리를 뜨겁게 만들어준다고. 이성은 기본적으로 차가운 것이어서 교양에 관한 한 영화를 따라갈 수 없다고. 차가운 곳으로 직행하기 어렵다면 영화라는 다리를 건너 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