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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 Nov 13. 2024

중학생이 읽은 채식주의자2

왜 읽고 이야기해야 하는가?

자려고 누웠는데 딸에게 전화가 왔다. '채식주의자' 2 '몽고반점' 읽고 있다고 했다. 중학생인 딸이 '채식주의자'  읽어낼  있을까, 읽게 두어도 될까, 잠시 망설였을  망설임의 원인은 '몽고반점' 때문이었다. 청소년 금서로 지정되게  배경도 바로 형부와 처제의 관계때문이었다. 궁금했다. 자칭 유교걸인 딸이  부분을 어떻게 을지 기다렸고…그날이 왔다.


의외였다. 걱정과 달리 1 채식주의자에 비해 2 몽고반점은 그렇게 힘들거나 불편하지 않았다고 했다. 채식주의자에서 드러낸 가부장제의 폭력성은 오히려 굉장히 현실적으로 느껴져 끔찍했지만몽고반점은 채식주의자에서 느꼈던 충격과 긴장불편함이 덜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몽고반점이 판타지적이고 신화적인 분위기가 있어서라는 결론을 내렸다.  


채식주의자의 대강의 줄거리, 특히 논란이 되었던 형부와 처제와의 관계에 대해 미리 알고 책을 읽기 시작한 딸은 형부에 대해서 처제를 욕망하는 변태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읽을수록 기분이 이상해졌다고 한다. 이 프레임이 흔들린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변태라고만 생각했던 형부가 유일하게 영혜의 처지를 이해하고 영혜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형부는 영혜 남편이 영혜를 도구로 생각한다는 것을 눈치채고 못마땅해하며 처음부터 영혜의 식물성을 알아보는 사람이다. 현실에서는 그저 변태일 뿐인 형부를 옹호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 소설 속에서는 형부의 감정에 이입되고 있는 자신이 혼란스러웠다고 했다. 정상과 비정상, 선과 악이 이분법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혼란스러운 것으로 이해했다.


영혜의 몽고반점을 상상만 해도 성적으로 흥분하던 형부가 처음 영혜의 알몸을 보고도 아무런 감정이 안 들었다는 것이 이상하다고 했다. 그게 도대체 어떤 감정일까? 나는 딸에게 해설을 해주어야 한다는 오만함을 버리지 못하고 내 나름대로 해설하려고 애를 썼다. 누드는 벗은 게 아니라 입지 않음이다. 오히려 옷에 가려져 있던 영혜의 식물성이 온전하게 드러나면서, 오히려 동물적 욕망이 사라진 게 아닐까. 음음...내 이야기를 듣긴 해도 정확히 자기가 느낀 감정에 대한 해설은 아니라고 느꼈는지, 조용히 호응하며 듣기만 하다가 문득 뭔가 떠올랐는지 딸이 말했다.


엄마, 생각났어. 형부는 영혜라는 존재에 압도된 것 같았어.


나는 딸의 표현에 압도되었다. 식물이라는 태초로 회귀한 존재, 식물성, 원시성, 야생성이 있는 새로운 존재에 대한 압도된 것. 물론 딸이 아직 끝까지  읽은  같은데 형부가 시도했던 본질에 대한 이해는 어떤 면에서는 실패한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엄마는  번이나 읽었는데 그런 생각 못했던  같은데.


딸의 독서력이 어느 정도 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작품을 이 정도로 껴안을 수 있는 힘이 있는지 몰랐다. 문학작품을 현실세계와 전혀 혼동하지 않고, 소설이 내포한 매우 현실적인 메시지를 외면하지 않으면서 문학작품 속에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그것이 작가가 의도한 것이던 아니던 자신만의 관점으로 어내고 자기가 느낀 것을 언어로 표현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던 건 아니고 엄마랑 얘기하다 보니 문득 깨달은 거야.


읽을 때는 아이러니하다, 이상하고 묘하다는 생각만 들었지 어떤 언어로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고 한다. 하지만 함께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언어화할 수 있었다고 한다.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왜 중요한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청소년이 채식주의자를 읽을 때는 더더욱 어른과의 대화가 필요하다. 전화를 끊었을 때 통화시간은 무려 2시간 15분이 찍혀 있었다. 그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도 모를 만큼 놀랍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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