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을 보류해야 하는 이유
어땠어?
딸 홍시가 책을 다 읽고 나면 항상 묻는다. 그때마다 아이는 뭐, 재미있었어, 라든가 뭐, 그냥 그랬어,라고 말하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좀 더 구체적인 감상이 듣고 싶어서 뭐가 재미있었어?라고 다시 물었는데 그때마다 홍시는 귀찮아하고 딴전을 피우기도 했다. 물을 때마다 시큰둥한 반응이 반복되면서 더 묻지 않았다. 싫어하는데 자꾸 캐물으면 책 읽는 것조차 싫어하게 될까 봐 그냥 두기로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홍시가 톰소여의 모험을 읽고 자연스럽게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게 되었을 때 나에게 책 첫 장을 펼쳐서 보여주었다.
이 이야기에서 주제를 찾으려고 하는 사람은 고소 당할 것이며, 교훈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은 추방당할 것이고, 줄거리를 찾으려고 하는 사람은 총살당하리라.
와, 총살될 뻔했다. 대놓고 독후감이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홍시는 내가 동기나 교훈이나 플롯 같은 것을 말해보라고 느꼈던 것이다. 내 숨겨진 속내를 눈치 백 단인 홍시가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거부했던 거였다.
우리는 책 읽기를 공부로 생각한다. 책을 읽고 있으면 공부한다고 생각하고, 책 많이 읽는 아이는 공부 잘하는 아이라는 상징 자산을 획득한다. 책을 많이 읽어두면 입시나 취업에 도움이 되고, 사회에 나가서도 교양이 있는 사람으로 대접받고, 하다못해 어디 가서 허세라도 부릴 수 있는 수단으로 생각한다. 독서 교육도 그걸 전제로 이루어진다. 학교나 학원에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게 하는데, 기본 포맷이 줄거리를 요약하고, 주제를 파악하고, 느낀 점과 배운 점을 정리하는 포맷으로 획일화되어 있고, 아이들은 그렇게 훈련받는다.
물론 그렇게 하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실제로 도움이 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책에 대한 호감이나 독서에 대한 재미를 느끼기 전에 우선순위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고 독후감을 강요하거나 독후감을 전제로 책을 읽히면 독서는 빨리 해치워야 하는 숙제가 되거나 정답을 찾아가는 공부가 되기 쉽다. 우선순위는 재미여야 한다. 책에서 재미를 느껴야 계속 읽을 수 있고, 계속 읽어야 습관이 되고, 책 읽는 것이 습관이 되고 읽은 책이 축적되면 감상하고 해석하고 평가하는 눈이 생긴다.
책에서 재미를 느끼려면 보다 편안하고 자유롭게 읽는 것이 우선이다. 좋은 책으로 알려진 책을 읽히려 하기보다 아이가 재미있는 책이면 그게 무엇이던 자유롭게 읽게 하고, 독후감을 요구하는 일은 잠시 보류하면 좋겠다. 책은 재미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재미로 책을 읽고, 그렇게 책 읽는 것이 습관이 되고 자유롭게 감상을 말할 수 있는 분위기와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준비가 되면 독후감을 내놓으라고 조르지 않아도 자유롭게 분출된다. 요즘 딸이 책을 읽고 말하는 것을 듣다 보면 무슨 평론가라도 된 것처럼 흘러나오는 것을 다. 그러기까지는 축적의 시간,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