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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 Nov 27. 2024

점점 선 넘는 도서관

색 때문에 생긴 우연의 도서관

어디선가 최고의 인테리어는 책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집을 지어 이사를 오면서 우리 집이 그렇게 되었다. 많은 책을 수납하기 위해 책장을 거실 전면에 그것도 벽에 선반식으로 아예 고정했다. 그리고 책은 빨주노초파남보 색깔별로 꽂기로 했다.


우연히 보게 된 일본 영화 ‘나비잠’ 때문이었다. ‘우연의 도서관’이라고 불리는 주인공의 서재는 책이 주제별, 작가별, 출판사별로 꽂혀 있지 않고 표지 색깔별로 정리되어 있다. 그곳에서는 원하는 책을 찾는 대신, 우연히 책을 ‘발견’한다.


우리도 색깔별로 책을 꽂기로 했다. 하지만 꽂아보니 그렇게 되지 않았다. 일단 내 책은 무채색이 많았다. 요즘 나오는 책은, 특히 소설은 알록달록하기도 하지만 내 책들은 사회과학으로 분류되는 책들이 많아서 그런지 표지에 색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딸의 책을 초대했다. 아이들의 책은 총 천연색이니까. 그렇게 우리의 서재는 합쳐졌다.


그리고 정말 우연의 도서관이 되었다. 구획과 경계 없이 책을 꽂아놓으니 딸이 점점 내 책을 넘 보고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당장 꺼내 읽는 건 아니었고, 우연히 꽂히는 책 제목을 보고는 엄마, 이건 무슨 내용이야? 하고 묻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아이 책과 내 책의 경계에 아이가 관심을 가질 만한 책을 꽂아두기도 했다. 딸이 신화를 좋아하니까 신화 관련 책을 아이가 자주 보는 책 가까이 꽂아놓았다. 아이는 순순히 미끼를 물었고 점점 넘어오기 시작했다.


내 책과 아이 책 경계를 서성이던 딸은 이제 선을 훌쩍 넘어 쳐들어왔다. 내가 어린 딸에게 아직은, 하며 일부러 권하지 않았을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이나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을 빼내 읽었을 때 왜 하필 저 책을… 하는 마음도 들었으나 이런 서재를 만든 이상, 아이가 선을 넘게 된 이상 감수해야 할 일이었다. 그리고 막상 책을 읽은 다음 이야기를 해보니 걱정할 일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장 읽지 않더라도 우연히 책 제목에 노출되고, 우연히 꽂힌 책에 대해 궁금해서 나에게 물어오고, 가끔 꺼내 뒤적거리고, 언젠가 읽게 되면 그것만으로도 우연의 도서관은 성공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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