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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시 Oct 15. 2023

'에세이'를 쓰는 즐거움

1인 1책 쓰기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나는 어쩌다 한 번씩 소설을 써보곤 했다. 꾸준히는 아니고, 몇 년에 한 번씩 가끔 그런 바람이 불곤 했다. ‘어쩌다 써봤다’라기엔 작법서도 여러 개 사서 공부하며 꽤 열심히 쓰긴 했다. 하지만 모든 글이 초반 몇 장까지만 신나게 써지고, 얼마부터는 도무지 써지지 않아서 완성작은 하나도 없었다. 글을 쓰다가 콱 막혀서 더 이상 써나갈 수 없어질 때, 그 막힘을 뻥 뚫을 수 있는 특단의 비법이 필요했다. 어디서 그 답을 얻을 수 있을까.

      

이런 얘기를 하면 친구들은 다들 에세이를 써보라고 제안했다. 에세이는 소설에 비해 상대적으로 분량이 짧으니까. 나는 매번 단칼에 거절했다. 에세이는 픽션이 아니라 ‘내 얘기’니까. 나에 대해 알리는 게 싫어서 평소 말도 잘 안 하는 내가, ‘내 얘기’를 누구나 볼 수 있게 글로 박제해 놓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내 글을 지인 중 누구든 읽게 된다면 아마 창피해서 모두 불태워버리고 싶어질 것이다.        


에세이에 대한 내 거부감에는 ‘에세이’ 장르에 대한 편견도 한몫했다.

‘에세이? 그거 그냥 유명한 사람들이 대충 일기 쓰면 팬들이 팬심으로 사주는, ‘인기 빨’ 없으면 안 팔리고 안 읽는 글 아닌가?’

에세이를 써본 적도, 제대로 읽어 본 적도 없으면서 건방지게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사실 '콱 막혔을 때 뻥 뚫는 방법'엔 이미 짐작하는 정답이 있었다. '마감' 아닐까? 마감이라는 강제성이 있다면 어떻게든 쥐어짜서라도 완성하겠지 싶었다. 하지만 취미로 하는 글쓰기에,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고서는 마감이 생길 일이 없었다.          


그런 이유로 마침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지역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1인 1책 쓰기’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는 글쓰기를 배우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각자의 주제로 에세이를 쓰며 2주에 한 번 완성한 원고를 내고, 멘토로 초청되신 유명작가님께 합평을 받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일단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마감하는 버릇을 들이고, 글 쓰는 근력을 기르면 소설도 완성할 수 있게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1인 1책 쓰기 프로젝트에 지원했다.               

1인 1책 쓰기 프로젝트 첫 번째 수업엔, 만화를 좋아하게 된 계기인 친한 친구와의 추억을 쓴 원고를 냈다. 월요일에 원고를 제출하고 나서 수업 날인 목요일까지 매 맞는 날을 기다리는 것처럼 내내 괴로워했다. 끙끙거리며 쓴 글이 부족하게 느껴져 영 만족스럽지 않았는데, 이런 글을 남에게 보여야 한다는 게 부끄러웠다.

단체 카톡방에 올라온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어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남의 글의 좋은 점과 내 글의 나쁜 점만을 비교하며 스스로 더 괴롭힐 내 성격을 알았기 때문이다. 막상 수업 날 작가님께 좋은 격려의 말들을 많이 들었지만,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렇게 부끄러운 과정을 14번이나 더 반복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프로젝트에 지원한 내 선택을 후회했다.     


다섯 번째 수업엔, ‘미술’이라는 진로를 포기한 뒤 힘든 마음에 위로가 되어줬던 만화 이야기를 쓴 원고를 보냈다. 전송 버튼을 누르고 너무 속상해서 목요일까지 내내 메신저를 외면했다. 글이 계속 써지지 않아 마감 시간까지 미루고 미루다 억지로 급하게 써낸 글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만화에, 가장 진지하게 공들여 쓰고 싶은 '진로'에 대한 얘기였는데 다 망쳐버렸다. 꾸준하게 마감을 한다는 건 20점짜리 글밖에 안 써지는 날도 어떻게든 완성해서 결국은 글을 보내야 하는 거구나, 씁쓸한 깨달음을 얻은 날이었다.         

 

일곱 번째 수업엔, 원고를 보내지 않고 펑크를 냈다. 작가님께 엄청 놀림을 당했다. 아마 그냥 넘어가면 계속 이런 식으로 펑크를 내다가 결국 그만두게 될까 봐 예방주사를 놓아주신 것 같았다. 사실 이쯤 되면 한두 명은 펑크 내는 사람이 더 있을 줄 알았는데, 나밖에 없었다. 다들 엄청 노력하는 중인데 나만 도망치고 있구나, 부끄러웠다. 반성하고 마음을 다시 굳게 먹게 되는 날이었다.          


열 번째 수업엔, '글로 남겨도 될 적당한'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 쓰고 싶은' 얘기를 썼다. 공시 실패로 좌절하고, 오랜 기간 고립되어 부정적인 생각에 매몰됐을 때 만나게 된 내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였다. 진심이기에 쓰기는 금방 썼는데, 막상 보내려니 망설여졌다. 글쓰기 모임에서 내가 제일 어린데 감히 불경한 소리를 철없게 하는 것 같아서 그랬다. 게다가 시청에서 일하는 동료분들도 계시는 탓에 더 걱정되기도 했다.

고민했지만, 그래도 보내기로 했다. 나름 꽤 긴 시간을 함께한 작가님과 글벗들에게 어떤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의 에세이에 표현된 각자의 삶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거나, 쉽게 말하지 않을 거'라는 신뢰였다.

수업 날 글에 대한 첨삭뿐만 아니라, 우정과 애정을 가진 지인으로서의 조언도 해 주신 작가님의 말씀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열 번째 수업 이후로는, 내게 힘을 주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위주로 밝고 희망적인 글만 쓰게 됐다. 일부러 계획한 것이 아니라 무의식 중에 저절로 그렇게 됐다. 맘속에 응어리진 이야기들을 먼저 쓰고 나니 왠지 마음이 편해지면서 같은 상황에서도 나쁜 점보다는 좋은 점을 발견해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됐다. 글쓰기에는 치유의 힘도 있다더니, 이런 걸 두고 말한 걸까. 덕분에 내 책이 듣기 싫은 푸념만 가득한 우중충한 책이 되진 않을 것 같아 다행이었다.                



1인1책 쓰기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글벗들과 ‘함께’ 글을 쓰는 것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혼자였다면 진작 포기하고 남았을, 지구력 약한 나도 글벗들의 의지와 끈기가 옮아 7, 8개월의 긴 여정을 완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글벗들의 에세이를 읽으며 그들이 아니라면 전혀 알 수 없었을 '타인의 삶과 그 희로애락'을 간접적으로 겪으며 배웠다.          


아이를 키우며 수없이 좌절하고 상처받아도 끝내 다시 딛고 일어서야 하는 '부모 입장'의 에세이를 읽으며, 평생 '딸의 입장'으로만 살아온 철없는 나도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것'의 무게와 경이로움에 대해 알게 됐다. 나는 아직 자신도 가족도 큰 병을 앓은 적 없어 마냥 태평 무지했는데, 본인이 아팠거나 아픈 가족을 간병했던 경험을 나눠주신 글벗들의 에세이를 읽으며 그 깊은 슬픔과 두려움,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닌 삶에 대해서 마치 내 일처럼 느끼고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어르신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글벗님의 에세이나,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하는 글벗님의 에세이를 읽을 때는 당장 내 한 입 먹이고 내 몸 편히 사는 데만 급급했던 주제에 뻔뻔하게 대리 만족을 느끼며 게으른 내 삶을 다시 돌아보기도 했다.          


이토록 삶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모두 반짝이고, 전부 아름답다고 느꼈다. 상투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진실로, 글벗 한 분 한 분께 깊게 감동했고 존경심이 들었다.          


‘이래서 에세이를 쓰고 읽는구나.’

감히 에세이를 우습게 여겼던 과거를 반성했다. 지금은 그야말로 에세이의 매력에 푹 빠졌다.          



열네 번째 수업이었던가, 작가님께서 만화 에세이를 다 쓰고 난 다음에는 음식과 친구에 관한 에세이를 써보라며 새로운 주제를 추천해 주셨다. 원래 이번 프로젝트만 마치고 나면 에세이는 다신 쓰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작가님 말씀을 듣자마자 음식과 친구에 대한 소재거리를 고민하는 나를 발견했다. 나도 내 변덕이 참 죽 끓듯 한다 싶은데, 인정해야겠다. 에세이 쓰는 건 참 괴롭지만 즐겁다. 그래서, 아마 또 쓰게 될 것 같다.       

   

에세이의 매력과 즐거움을 가르쳐 주신 작가님과 글벗들께 감사하며, 다음에 또 만날 수 있기를, 앞으로도 계속 함께 글을 써나갈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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