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유튜브와 넷플릭스 덕분에, 내 마음을 마주할 수 있었다

by 여기 지금

퇴사 후, 갑자기 너무 많은 시간이 생겼다.

마치 내 몸에 맞춰 살아가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눈이 떠지면 멍하니 휴대폰을 보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졸리면 자고, 다시 눈뜨면 유튜브와 넷플릭스의 알고리즘에 기대 하루를 보냈다. 처음엔 나태하고 무기력한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시간을 반복할수록 내 마음속에서 작고 묵직한 감정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 왜 이렇게 아무것도 하기 싫은 걸까?

유튜브와 넷플릭스는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기 위한 도구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는 거울이 되었다. 그 안에서 나는 도망치고 있었고, 숨고 있었고, 회피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도 몰랐던 ‘내가 진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조금씩 마주하게 되었다. 시간을 그저 보내면서 콘텐츠 안에서 나와 닮은 사람도 마주하게 되고, 나의 흥미도 관찰하게 되고, 멍하니 콘텐츠를 보면서 나는 무엇이 하고 싶은지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은 말할 수 있다.
유튜브와 넷플릭스 덕분에, 내 마음을 마주할 수 있었다.


1. 퇴사 후의 시간은 단순한 '쉼'이 아니었다

퇴사 후 3~4주간, 회사를 다니는 것을 벗어나기 위한 수단이었던 블로그 수익화를 위해 글을 썼다.

많은 강의를 들으며 블로그 수익화에 대해 공부를 해보았다.

구글에 글이 노출되고, 작은 성과도 있었지만 '돈 되는 글'만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생기면서 스스로를 또다시 몰아붙이게 됐다.

수익화 블로그에 대해 알면 알수록 나에게는 압박감이 불어났다. 어떤 특정 키워드를 품은 글을 쓰지 않으면 당신은 망한 블로그라고...


2. 쉼의 끝에서 마주한 '회피'라는 감정

매일 유튜브, 넷플릭스, 늦잠, 배고플 때 밥… 루틴 없는 생활을 반복하며, "내가 지금 무언가를 회피하고 있다"는 자각이 들었다.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보는 이유는 '내가 나답게 살지 못할 때' 나는 자꾸 현실을 도피할 때라는 것을 인지하게 됐다.

수익화 만을 위한 블로그를 쓸 때, 회피하는 버릇이 생긴 것 같았다.

수익화만을 위한 블로그를 쓰기 시작하자, 이상하게도 자꾸 글쓰기를 미루는 습관이 생겼다.
글을 쓰려는 마음은 분명 있었지만, 막상 컴퓨터 앞에 앉으면 유튜브를 켜고, 넷플릭스를 보면서 시간을 흘려보내곤 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게으름이나 집중력 부족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느꼈다. 나는 지금 ‘회피’하고 있는 거구나.

글을 쓸 주제는 정해져 있고, 키워드도 정리되어 있었지만, 그것들을 마주하는 순간 마음이 불편해졌다. 내가 정말 쓰고 싶은 이야기가 아닌, ‘조회수와 수익을 위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마음을 짓눌렀다.
그렇게 되자, 블로그는 내 공간이 아니라 누군가를 만족시키기 위한 무대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무대를 마주할 용기가 없을 땐, 딴짓을 하면서 회피하게 된 것이다.

나는 이 회피가 게으름의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이 진짜 원하는 방향과 어긋난 행동을 강제로 하려 할 때 생기는 저항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4. 그럼에도 발견한 ‘나’의 모습

놀랍게도 퇴사 후 3주 동안 나는 배달음식을 한번도 시킨 적이 없다. 대신 직접 요리하고, 매일 설거지를 위한 개수대는 깨끗하게 유지되었다. 조리대는 늘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이런 점으로 부터, 나는 ‘절약’, ‘맛있는 음식에 대한 갈망’, ‘요리에 대한 애정’을 발견했다.

돈이 되든 아니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요리하는 데에 들이는 시간과 정성, 그리고 그걸 끝낸 뒤의 작은 성취감은 생각보다 컸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요리를 좋아한다는 것, 그리고 맛있는 것을 먹고 싶어하는 욕망이 단순한 식탐이 아니라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 중 하나라는 걸.

수익이 되든, 콘텐츠가 되든 상관없이, 요리는 지금의 나를 지탱해주는 중심 중 하나였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돈이 되는지 아닌지를 기준으로 판단하기보다, 나의 열망에 기반한 일을 해보자.


5. 이제는 내가 나를 먼저 살아야 할 때

전 직장에서 돈은 충분히 받았지만, 흥미 없는 일을 할 땐 지쳤고, 주도적인 일을 할 때만 흥미를 느꼈다.

지금의 나의 선택은, 돈보다 ‘내 삶을 내가 채우는 것’에 대한 결단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나는 누군가의 기준에 맞춰 움직이는 것보다, 내가 주도할 수 있는 일을 할 때 비로소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라는 걸. 회사에서도 그랬다. 지시받은 일을 할 땐 힘이 들었지만, 내가 주도한 프로젝트에는 열정을 쏟을 수 있었다.

그래서, 블로그도 마찬가지다. 수익화만을 위한 글쓰기는 금세 흥미를 잃게 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주제로 내가 쓰고 싶은 방식으로 글을 써보려고 한다.


6. 이 길이 맞는지 몰라도, 나를 믿고 걸어가겠다

"겨우 4층 빌라까지 올라왔는데 다시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느낌"이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생각한다:
“뭐 어쩌라고. 내가 먼저 살아야지.”


절대 가만히 있지 않겠다.

내가 나를 더 격력하게 사랑해야겠다(=내가 좋아하는 일들로 하루를 채워야겠다)



keyword
이전 06화서비스기획에서 데이터의사결정보다 더 중요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