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이나 식물에 빗댄 교훈, 깨고 나오다, 탄생 또는 죽음
출퇴근 길에 아파트 단지 내 나무가 무성한 길을 걷다 보면 가끔 끔찍하게 생긴 것들이 나무에 줄줄이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매미의 유충이 우화하고 난 껍데기가 어떤 나무에는 십여 개 이상 다다다닥 붙어있다. 굼벵이의 모습이 선연하지만 그 안은 텅 비어있다. 매미가 껍질을 뚫고 밖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우화는 깃 우, 될 화, 깃이 있는 것으로 변화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제 살을 뚫고 나오는, 새로 태어나는 과정. 새로 태어날 때 내 몸을 찢고 나와야 하는 과정. (와.. 나는 못 할 것 같다...) 우리는 그 과정을 거쳐 나온 곤충을 성충이라고 부른다. 다 자란 곤충. 어른이 된 곤충. 우화 한 곤충은 대게 아름답다. 그리고 아름다움은 발전이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정말 그러할까? 매미는 굼벵이로 5~7년을 땅 속에서 아늑하게 살아간다. 그리고 오직 짝짓기를 위해 나무를 기어오르고 목숨을 걸고 우화를 하며, 2주 남짓 울어대다 짝짓기에의 성공 또는 실패를 거쳐 지쳐 죽는다. 매미에게 삶은 굼벵이 시절일까, 성충 시절일까? 매미는 언제 더 행복할까? 나는 종종 굼벵이의 삶이 매미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번식과 죽음을 위한 우화는 그저 죽음 전에 거쳐야 할 의무적인 절차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땅 밖은 위험하다. 천적과 알 수 없는 위험이 온 세상에 흩뿌려져 있다. 그런 면에서 흙 속에서의 삶을 택한 것은 여간 똑똑한 것이 아니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5~7년을 땅 속에서 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잡아먹힐 위험이 매우 낮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은 몇 년을 생존할 수 있는 것이다. 현명하고 또 현명한 처사이다. 하지만 그들은 번영해야 한다. 그것이 지구상의 모든 생명이 갖고 있는 단 하나의 공통적인 본능이다. 그래서 위험뿐인 땅 밖으로 나온다. 그것은 도전이다. 그리고 시도이다. 또한 시작이다. 그리고 끝이다. 죽음이다. 삶의 마지막이다.
삶의 마지막을 매미는 귀청을 찢는 듯한 울음소리로 가득 채운다. 짝을 찾는 소리이자, 지금까지 살아온 조용한 삶과 완전한 대척점에 있는 소란스러운 삶이다. 아마도 2주 남짓 사는 데에는 이 영향도 있을 것이다. 조용한 삶에서의 첫 소란스러움. 주변의 매미들과 함께 울어대면 얇은 와인 잔 정도는 쉽게 깨버릴 수 있을 것 같은 파괴력. 그 파괴력이 매미를 서서히 갉아먹는 것은 아닐까. 아, 여름이라면 매미 소리와 함께 시작하여 매미 소리와 함께 끝나는 것이 우리네 여름인데, 너무 비극적으로 표현하면 안 될 것 같지만, 나에게는 그 울음이 그렇게 다가온다. 아마도 고막이 터질 것 같은 소리에 너무 괴로웠을지도 모른다.
굼벵이와 매미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살려본다면 그럴싸할 우화가 될 것 같다. 우화 쓰는 것에 재능이 있는 분이 있다면 한번 써보기를 권해보고 싶기도 하다. 안락한 삶에 익숙해져서 자신의 몸을 찢고 나오는 것을 거부한 굼벵이가 하늘을 한번 날아보지도 못하고 죽는 어리석음의 이야기, 또는 위험 천만한 바깥세상을 동경하는 굼벵이가 섣불리 급하게 밖으로 나갔다가 우화 해보지도 못하고 잡아먹히는 이야기, 아니면 보다 더 높은 나무 위에서 우화 하기를 원하는 친구들에게 어쩌다가 끌려나가서 온갖 고생을 다 하다가 그 주변에서 가장 높은 나무에 도달하여 우화에 성공하는 이야기(그래서 가장 크고 훌륭한 매미와 결혼한다든가), 굼벵이로 살다가 시간을 잊어버려서 10년 넘게 땅 속에 살다 늙어 죽는 이야기 등등. 소위 교훈을 주는 이야기는 다양한 버전으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 교훈이라는 것이 무엇인가가 문제이지. 교훈, 가르침을 주는 이야기, 가르침, 어떻게 사는 것이 더 나은 삶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답게 사는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인가에 대한 선대가 후대에게 남기는 따끔한 일침. 이러한 교훈은 시대에 따라 바뀐다. 요즘 시대에 맞게 위의 스토리 라인들을 바꾸어보면 아마 논란의 여지가 상당히 있을 것이다. 안락한 땅 속에서 결혼도 않고 유유자적하게 살다가 친구들과 즐거운 나날들을 보내고 생명체의 궁극의 본능인 번식 행위 없이 자는 듯 평온하게 삶을 마무리하는 소소하고 행복한 삶. (이것이 행복한 것이냐라고 물어보는 분 분명히 있음) 누가 누구에게 가르침을 줄 것인가. 특히 요즘 같이 하루가 멀다 하고 모든 것이 눈 돌아가게 바뀌는 세상 속에서.
매미 굼벵이의 우화(羽化)는 무엇이 우화(寓話)인가를 생각하게 해주는 한 편의 우화(愚話)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