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기다림, 괜한 걱정, 기울다
비가 오락가락 내리다 그쳤다를 반복한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강릉에는 거의 내리지 않는다고 한다. 올해 강릉의 강우량 평년 평균의 절반 이하이다. 얼마나 심각한지 기우제도 지냈다고 한다. 바로 옆 속초는 그렇게 심하지는 않은데, 결국 저수 시설을 어떻게 얼마나 건설했는지가 결과를 달리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비를 바라는 것은 농경사회에서 특히나 더욱 중요했다. 관계시설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는 그야말로 천수답이었으니 비가 내리지 않는 것은 1년 동안 죽기 살기로 농사지어 겨우 먹고살던 농민들에게 재앙과도 같았을 것이다. 그래서 조상님들은 하늘님께 비를 내려 달라 제사를 지냈다. 국가적인 가뭄일 때는 왕이 직접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 이는 간혹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되어 기우제를 주관한 지체 높은 인물이 비를 불러오지 못할 경우 무능함 또는 하늘이 그를 버렸다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하늘이 버리다니. 가혹하기도 하지. 차라리 비가 올 때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리든 상관없이 기우제를 지냈던 인디언들은 현명했던 것일까. 아니면 어리석었던 것일까. 이유와 목적이 어찌 되었든, 기우제는 자연 앞에 한없이 무능한 인간들이 종교처럼 심리적으로 기댈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었을 것이다. 굶어 죽게 생겼는데 뭐라도 해야지 않겠는가.
뭐라도 해야 한다고 하니 또 다른 이야기가 떠오른다. 워크숍에서 처음 시작할 때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하는 간단한 활동 또는 워크숍의 목적에 의해 다양하게 사용되는 게임 같은 것이 있다. 그 중에 한가지를 소개하자면, 각 조별로 주어지는 상황은 이러하다. 당신은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기체 결함으로 사막에 조난을 당하였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모여서 생존을 위한 논의를 하다가, 일단 비행기에서 쓸 수 있는 모든 물건을 다 모으기로 하였다. 그 결과 주어진 목록에 있는 물품이 모였다. 자, 이제 살아남은 사람들은 생존을 위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물품 중 꼭 필요한 5가지 물품을 선택하고,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지 방법을 논의하라....... 단순해 보이지만 참 어려운 문제이다. 가볍게 즐기며 할 수도 있고 정말 진지하게 접근할 수도 있다. 여기서 질문. 무엇이 가장 생존 확률이 높은 방법일까? 두구두구두구두구!!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이다. 위치를 고정하고, 방수포로 이슬을 모아 식수를 해결하며, 거울 조각으로 빛 반사를 통해 위치를 표시하는 등, 그 자리에서 최대한 버티는 것이 구조대가 그들을 찾을 확률이 가장 높다. 그런데 리더들을 대상으로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90%가 넘는 리더들이 이동을 선택한다. 뭐든 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을 받는 것이다. (팀원들이 이동을 선택하는 비율은 리더보다 낮다). 뭐라도 행동하지 않으면 무능한 리더로 보일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어찌 보면 쓸데없는 걱정 때문에 리더들은 잘못된 판단을 하기도 한다. 기우. 확신할 수 없는 것,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걱정. 걱정해도 무언가 바뀌지 않을 것에 대한 걱정. 그러한 기우는 사람의 정신을 파먹고, 중심을 잡지 못하고 어디론가 극단적인 곳으로 기울게 만든다. 기우로 인한 기움(기울어짐)은 혼란스러운 때일수록 더욱 우리를 바닥으로 잡아 당긴다. 그래서 마음의 단단함이 필요할 것이다. 기우로 인한 정신의 기움이 힘을 키우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마음의 단단함. 딛고 선 땅의 단단함. 하지만 파종하는 논이나 밭을 걸을 때에는 몸이 기울 만큼 땅이 부드러워야 풍작을 이룰 수 있다. 부드러운 흙에 발이 푹푹 파묻히며 몸이 좌우로 기울지만 균형과 중심을 잡고 가고자 하는 곳으로 걸어가는 것. 그것이야 말로 삶을 사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한다.
* 기름진 흙을 맨발로 밟아본 적이 있나요? 처음에는 걷기 힘들어서 당황스럽지만, 피부로 느껴지는 그 부드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분을 좋게 만들어 준답니다. 봄의 조금은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고소한 향기가 올라오는 부드러운 흙을 밟는 것. 어릴 적에 해보고 어른이 되어서는 한 번도 그러한 경험을 하지 못해 가끔 그 기억이 그립습니다. 언젠가 다시 한번 해볼 기회가 있으리라 믿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