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간

깨끗하고 투영한, 방금 세수하고 난 맑은 낯빛

by Pink Brown

한참 전이다. 유아용 티비 프로그램 중에 안녕, 꺄아, 우당탕, 시러, 우응이 난무하던 프로그램이 있었다. 빨강, 보라, 노랑, 초록이가 나와서 정말 단순하고 귀여운 하루를 보내던 내용. 시작은 항상 어린 아기의 웃는 얼굴이 들어있는 해가 방긋이 뜨는 장면이었다. 그 얼굴을 보면서 나는 항상 얼굴이 참 말갛다라고 생각하곤 했었다.


말간 얼굴, 깨끗이 씻은 얼굴 말간 해야 솟아라,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듯한 시구절. 그래서 그런지 말갛다는 말을 들으면 방금 세수한 투영한 피부의 깨끗하게 웃는 낯이 떠오른다. 비누 없이도 물로만 문질문질해도 금방 깨끗해지던 아이들의 얼굴. 세상 무해한 표정으로 돌아보며 웃던 밝음. 어두움이라고는 단 한 점도 묻어있지 않던 그 맑던 아해들. 나도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놀고 있을 때는 그런 얼굴이었을까? 그랬기를 바래본다. 나도 말갛고 말간 얼굴을 가지고 있었기를 바란다. 아이들과 함께 모든 것을 잊고 순간이라도 행복했었기를 바란다. 유아 프로그램에 나오던 하루의 시작과 끝을 알리던 햇빛 아가 얼굴처럼, 아마 그랬을 것이다.


깨끗하고 투영한 것들, 그중에서도 말간 것들이라 함은 이상하게 물을 연상시킨다. 트래킹에서 만난 작은 개울에 흐르던 물이라든가, 오랜 시간 청정한 환경에서 내리고 흘러 만들어진 잔잔하고 차디찬 호수, 투명한 유리그릇에 담긴 시원한 물, 방금 수영장 샤워실에서 나온 발간 볼의 아이들. 맑고 산뜻하다는 사전적 정의에 어울리는 연상이기도 하다. 물론 정신이 말갛다라든가, 시야가 말갛다라든가, 피부가 말갛다는 말도 종종 예시로 사용된다. 그런데도 꼭 물이 같이 연상되는 이유는 뭘까. 냉수를 한 바가지 맞은 것 같이 말간 정신, 세수해서 맑아진 피부, 유리창을 물로 훅 씻어내어 말갛게 된 시야. 편견이지만 동시에 독특함이기도 할 것이다. 비에 싹 씻긴 말간 날씨, 오전의 안개를 말끔히 말려버리고 드높은 솟은 하늘에서 느껴지는 청량한 말감. 말갛다는 단어에 이토록 이끌리는 이유는 그 깨끗함과 뭐든 다 씻어버리고 마음까지 개운해져 버린 그 상태를 동경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도 언제든 그렇게 말간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런 바람.


흐르는 물에 손을 닦아 본다. 시원한 물의 감촉과 흐르는 물소리가 기분 좋다. 그리고 흘려보낸다. 손으로 만져질 만큼 강렬했던 많은 기억들, 그리고 감정들. 그리고 거울을 본다. 깨끗한 손으로 잔머리를 꼼꼼히 귀 뒤로 꽂아 넣는다. 자, 이제 준비가 된 것 같다. 다시 나가볼까? 말갛게 갠 정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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