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

노래, 시, 집안일, 죽었지만 죽지 않은 것

by Pink Brown

월요일 아침 식탁에는 항상 신나는 노래가 함께한다. 월요병에 심하게 걸려버린 아들들의 사기 진작을 위한 최애 노래 메들리가 알고리즘에 의해 무한 재생된다. 효과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외국 팝송은 가사가 잘 들리지 않고, 최근 케이팝은 가사가 뭉개져서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지만, 뉴트로 트렌드를 타고 역주행 중인 90년대 스테디셀러 노래들은 가사가 귀에 쏙쏙 박힌다. (템포, 발음의 정확도, 공기반 소리반 가창법 등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 추측해 본다. 나의 노화 때문이 아니라.......)


어릴 적 진공관 티비에서 흘러나오던 노래 중에는 시인이 가사를 쓰고, 외국 노래의 멜로디를 입힌 것들이 간혹 있었다. 크로스오버가 한창 유행일 때는 이러한 노래를 성악가와 대중음악 가수가 함께 부르기도 했었다. 그 당시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콜라보는 상식을 깨는 파격 그 자체였지만, 뭘 모르던 어린 나에게는 그저 나름 느낌이 있었다는 정도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어린 마음에도 그러한 가사들은 왠지 마음에 와닿았었다. 지금의 가볍고 후크송에 가까운 가사들과는 차원이 다르긴 했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옛 노래들을 틀어놓고 가사 노동을 시작해 본다. 그래봐야 널어놓은 빨래를 정리하고, 새로운 빨래를 세탁기에 돌리고, 다시 빨래를 널고, 일부는 건조기를 돌리고, 간단하게 바닥 먼지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하는 것뿐(아, 간단하지 않네...??)이지만 그 와중에도 노래는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듣다 간혹 귓속을 파고드는 가사들이 있는데, 너무 좋거나 너무 이상한 것들이 그러하다. 20여 년 전에는 당연시되던 가치관이 투영된 가사는 지금 들으면 괴상하기 그지없다. 아니면 나 스스로 신기하게 해석해 보는 것도 있다. 예를 들면 '먼 훗날 우리, 같은 날에 떠나'라는 가사는 그날따라 유난히 이상하게 다가와 '그럼 순장인 건가'라고 생각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던 적도 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해석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런 것들도 간혹 소소한 즐거움이 된다. (둘째에게 이야기했더니 지었던 정말 어이없다는 그 귀여운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같은 날에 떠난다는 다짐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까? 문득 가사 상태에 빠져있는 줄리엣을 보고 정말 죽은 것으로 오해한 로미오가 그 옆에서 자살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죽을 만큼 사랑하면 상대가 죽을 경우 살아있을 의지도 같이 죽어버리는 것일까. 하지만 줄리엣은 죽었지만 죽지 않았었는데. 조금만 기다렸으면 둘이 행복하게 살았을 텐데. (아 행복은 장담할 수 없다. 둘이 함께 살았을 텐데로 정정.) 그것이 셰익스피어가 의도한 운명의 장난이었겠지만, 잔인하기 그지없다. 죽었지만 죽지 않은 상태. 죽었지만, 죽지 않은 상태...... 어쩌면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가사 상태에서 좀비처럼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진짜의 나는 가사 상태로 누워있고, 머릿속의 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두 가지의 세계 중에서 진짜 내가 누구인지 헷갈리는 것처럼. 어쩌면 진짜의 나는 혼수상태에 존재하고 나는 무의식의 세계 안에서 유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끔 꾸는 꿈은 진짜 내가 진짜 세계에서 경험한 기억일지도.)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알 수 없는 무한 뫼비우스의 띠에 갇히게 되겠지만, 그래도 가끔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 어느 날 진짜의 내가 깨어나면 월요병 따위는 없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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