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말, 같은 단어, 그러나 다양한 의미로 빚어낸 이야기
남자의 눈이 번뜩였다. 손이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수십 년 간 고미술 사기꾼으로 먹고 살아왔지만 정말 진품을 만나기는 처음이었다. 며칠 전, 어느 고깃배의 그물에 이상한 도자기들이 꽤 많이 끌어올려졌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달려온 그 사기꾼은, 진흙으로 더러워지고 군데군데 깨져버린 그릇들 틈 사이에서 푸른 무늬가 영롱하게 새겨진 찻주전자 하나를 욕망으로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오랜 기간의 사기꾼 행각은 어느 순간 진품을 알아보는 눈을 갖게 만들었다. 문득 정신이 든 사기꾼은 사기 주전자를 품에 꼭 안았다. 꺼져가던 희망의 불씨가 다시 은은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한껏 사기가 충전된 사기꾼은 다시 뭍으로 돌아가기 위하 사기 주전자를 소중히 싸서 드높은 사기로 인한 위풍당당함을 애써 감추며 잽싸게 배에 올랐다. 바다는 잔잔했다. 배는 미끄러지듯 바다를 갈랐다. 너무 오랫동안 비어있었던 배를 채우기 위해 배낭 속에 아무렇게나 들어있던 배를 들어 베어 물었다. 흥분으로 가득한 채 배 위에서 먹는 배는 그저 배를 채우기 위한 수분 많은 그 무언가에 불과했다. 하지만 사기꾼은 사기 주전자를 생각하며 그 배를 몽땅 먹어치웠다. 할 일이 많았다. 손이 많이 가는 클리닝과 약간의 복원 작업을 직접 스스로, 그것도 하나하나 손으로 해야 했다. 다른 누군가에게 맞길 수는 없었다. 너무 위험했다. 반드시 그의 손으로 직접 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최대한 빨리 작업을 마친 후에 장물업자에게 처분해야 한다. 그가 국가적인 유물이 될 뻔한 진품을 슬쩍했다는 것을 들키는 날에는 모든 것이 허사가 될 것이었다. 어느덧 항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물이 뭍은 손을 바지에 슥슥 닦고는 사기 주전자가 보이지 않게 무릎 담요로 둘둘 감싸서 옆구리에 끼었다. 항구에 거의 다 다다를 무렵 그는 갑판으로 나갔다. 갑판 난간을 잡고 있던 손에 갑자기 힘이 들어갔다. 손에 낀 반지가 고통스럽게 살을 파고들 정도로 그는 난간을 거의 필사적으로 잡고 있었다. 누가 봐도 사복 경찰인 듯한 사람들이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재빨리 많은 가능성을 점검하였다. 다른 범죄자가 이 배에 타고 있을까? 아니, 내가 너무 예민한 것일지도 몰라, 그저 배에 실려있는 어떤 물건을 찾으러 온 것일지도. 아니면 참고인이 배 안에 타고 있어서 그 사람을 데리러 나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를 찾으러 온 것이면 어떡하지? 아직 고깃배 그물에 걸려 올라온 사기 그릇에 대한 뉴스는 어디에도 실리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면 아직 경찰에서도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사기꾼은 경찰에 걸려있는 것이 한두개가 아니었다. 사기로 걸려있는 사건이 최소 3건은 되었다. 사기꾼은 배에서 내리기를 기다리는 인파 속에 숨어 서둘러 선글라스를 쓰고, 모자를 푹 눌러썼다. 그때 작고 하얀 포동포동한 손이 그의 손 안으로 들어왔다. 흠칫 놀라 내려다보니 어떤 예쁘장한 꼬마 아가씨가 그의 손을 잡고 배시시 웃으며 올려다보고 있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이런 대책 없는 귀여운 아이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손을 잡은 그 아이에게 손을 써서 무사히 이 항구를 빠져나갈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아이의 보호자가 그때까지 아이에게 딱히 신경을 쓰지 말아야 가능할 것이었다. 그는 다정한 말투로 아이의 외모를 칭찬하고는 주머니에 있던 사탕을 하나 까서 입에 넣어주며 이름과 나이, 그리고 이 배에 누구와 탔는지 등을 물어보았다. 아이는 섬에서 뭍에 있는 할머니댁에 가기 위해 혼자 배에 탔으며, 항구에서 할머니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파도가 일렁이는 선착장에 내릴 생각을 하니 갑자기 무서워져서 얼결에 옆에 있던 그의 손을 잡은 것이라고 했다. 그럼 되었다. 그는 무사히 항구를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사기꾼은 사기 주전자를 옆구리에 끼고, 배가 적당히 찬 배를 문지르며 자신감과 사기 충만한 마음으로 아이의 손을 잡고 이 상황에서 손 쓸만한 가능성을 찾아 천천히 배에서 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