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한 꼭지, 새해의 처음, 절기의 변화
9월 23일은 추분이었다. 24절기 중에 하나,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1년에 딱 두 번 있는 날. 절기에는 세시 풍속이 따라오기 마련인데, 사실 추분에는 딱히 세시 풍속이라고 부를만한 것은 없다. 그저 이제 정말 가을이 되어 가는구나를 체감할 수 있는 절기라고나 할까. 그래서 그런지 이번 주부터 긴팔 옷이 어울리는 날이 되었다. 자연의 흐름과 그에 맞춰져 있는 절기를 보다 보면 정말 신기하기 그지없다. 기상 이변이 있다 해도 때가 되면 으레 그러했던 듯이 그렇게 된다. 이 흐름조차 엉망이 되면 정말 돌이킬 수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싶지만 그래도 가급적 최대한 오래오래 자연이 절기와 함께 흐르기를 바란다.
세시는 새해의 처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잘 쓰는 말은 아닌, 정말 낯선 의미이지만 사전적 정의에 새해의 처음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었다. 한 해의 시작, 절기의 변화, 자연의 흐름을 모두 의미하는 세시. 농경문화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하며, 지금도 농촌에서는 절기에 따라 농사일이 결정될 정도로 여전히 유의미하게 사용되고 있다. 세시 풍속은 계절별로 나누어서 살펴볼 수 있는데, 내 나름의 해석으로는 봄에는 주로 액막이와 한 해의 준비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여름에는 더운 여름을 무사히 나기 위한 보양과 보신 중심, 가을에는 추수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연상되는 것들 (성공, 학업, 수입 등등)에 대한 기원과 감사가 주를 이루며, 겨울에는 어두운 밤이 깊은 만큼 귀신을 막고 집을 지키는 의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은 농사를 짓지는 않지만, 정월대보름에는 달을 구경하고 (잠깐이라도 쳐다본다), 부럼을 깬다. 설과 추석에는 차례를 지내(는 것에 참여하)고, 입춘에는 절에 방문해서 한 해의 소원을 적어 넣은 초를 밝힌다. 복날에는 보양식을, 동지에는 새알심을 넣은 팥죽을 먹는다. 주로 먹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지만, 이상하게도 정월대보름과 입춘, 동지는 챙기게 된달까. 한 해의 시작과 마지막이라는 느낌이 때문이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아니면 어릴 적 기억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몇 살인지 기억나지 않는 어느 해의 정월대보름 날, 이른 새벽에 엄마가 가만히 나를 흔들어 깨웠다. 액막이 술이라며 한 모금 마시라고 해서 잠결에 마셨던 약간 차가웠던 청주의 맛은 쓰기도 하고 달기도 한 희한한 맛이었다. 차가운 공기에 부르르 떨어가며 비몽사몽 간에 엄마가 시키는대로 껍질 땅콩을 깨고, 결국 다시 잠에 들었던 기억은 지금도 머릿속에 부연 기억으로 남아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거의 남아있지 않은 소중한 기억의 편린 중에 하나일 것으로 짐작한다.
문득 올해 초에 낙산사의 해수관음상 옆 보관함에 소중히 넣어놓고 온 우리 가족의 소원 촛불은 잘 있을까 궁금해진다. 올해 소원을 뭐라고 썼었더라. 아마도 우리 가족 모두가 자신 나름의 길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랐던 것 같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오후 세 시, 세시와 세시 풍속, 그리고 그에 대한 추억 속을 떠 다니는 나는 과연 올해의 소원을 이루고 있을지. 연말에 다시 한번 가서 봐야겠다. 소원 촛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