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단법석

소란스럽고 복잡한, 절에서 유래한 한자어

by Pink Brown

바야흐로 운동회의 계절이다.

서울 아파트 단지 사이에 끼어있는 초등학교의 손바닥만 한 운동장에는 빙 둘러서 아이들이 복작복작 앉아있고, 부모들은 그 뒤 스탠드에 뒤엉켜 서서 아이들에게 연신 손을 흔든다. 나 어릴 적, 이만한 운동장에 전교생이 다 앉으려면 달리기 할 공간조차 없었을 테지만, 2025년 10월의 운동장은 그럭저럭 운동회 할 공간이 나온다. 아직 얼굴에 아기 티가 가시지 않은 1~2학년 꼬맹이들부터 그냥 보면 어른인지 아이인지 모르겠을 덩치 큰 6학년 선배들까지, 보이는 것에 관계없이 모두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와글와글 즐거움을 토해낸다. 종목이 바뀔 때마다 피어오르는 흙먼지와 함께 자리로 들어가는 아이들, 운동장으로 나오는 아이들로 야단법석이지만 나름 별 사건사고 없이 진행된다. 선생님들과 진행 업체의 노하우겠지. 저기 아버지회로 활동하는 우리 집 가장도 보인다. 나서는 건 정말 기가 막히게 좋아한다.


말 그대로 운동회 내내 야단법석이다. 법당이 좁아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없을 때, 야외에 단을 펴고 설법을 듣는 자리를 의미하는 야단법석(野壇法席). 그 옛날 고승의 설법을 듣는 자리는 얼마나 반가운 자리였을까. 먼 마을에 있는 친지가 서로 만나고, 시집가서 얼굴 못 보던 친구도 만나고, 오랜만에 지인들이 만나서 이야기 꽃을 피우고 부처님께 기원을 올리던 자리. 그 시끌벅적함은 보지 않아도 눈앞에 선하다. 그 모양이 얼마나 인상적이었던지, 일상에서도 사람들이 많이 모여 북적거리는 모습을 야단법석이라고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때의 야단법석은 惹端法席이다. 앞 두 글자 야단은 떠들썩하거나 큰 소리로 꾸짖는 것이라고 한다. 그냥 시끄럽다는 말일게다. 야단법석, 북새통, 도떼기 시장, 아수라장, 아사리판 등등 무언가 혼란스럽고 시끄럽고 무질서해 보이는 모양새를 일컫는 말은 다양하다. 공동체 생활이 몸에 밴 우리 조상들에게는 이런 모습이 종종 목격되는 장면이었나 보다. 그러니 이렇게 다양한 말이 존재하겠지.


친구들보다 머리 한 개는 쑥 올라온 둘째가 운동장으로 나선다. 애들 눈높이에 맞추느라 그런 건지, 그저 육중한 몸이 무거워서 그런 건지 양옆으로 조금씩 흔들며 어깨를 수그리고 건들건들 걷는다. 작년까지만 해도 같은 학교에 다니던 첫째한테 갔다가, 둘째에게 갔다가 무한 왕복을 반복하며 운동회를 구경했었는데, 이제는 둘째 옆에만 있으면 된다. 왠지 어색하다. 뭔가 분주하게 걸어 다녀야 할 것 같은데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게 약간 신기한 기분이 든다. 이번에는 신발 멀리 던지기 단체 게임이다. 양쪽에서 청군 백군이 운동장의 중앙을 향해 신발 한 짝 씩을 기운차게 차올린다. 신발 수십 개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은 실로 장관이다. 어떤 아이들은 신발을 제자리로 쏘아 올려 제 신발에 맞기도 하고, 옆에서 날아온 신발에 놀라 달아나기도 한다. 모든 아이들이 뒤뚱뒤뚱 깽깽이 걸음으로 자기 신발을 찾으러 한바탕 난리가 난다. 먼지와 함께 야단법석의 모양새가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아, 동점이라 한 번 더 던진다고 한다. 아이들 사이에서 야유가 터지고 (분명 본인 팀이 더 잘했다고 서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다시 한번 수십 개의 신발이 하늘을 난다. 하늘에서도 순간 야단법석이 날아간다. 그렇게 북적북적한 혼란 속에서 운동회는 프로그램을 이어간다. 누가 이기는 것은 솔직히 중요하지 않다. (아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지만서도.) 이 좋은 날씨에 수업을 하지 않고 다 같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일 테다. 그것도 야단법석 즐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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