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 여신 또는 여인, 동그라미, 두둥실
추석이다. 명절이다.
이 말은 곧 명절 노동의 시즌이라는 뜻.
왕창 일하고, 왕창 먹고, 왕창 치우고, 그래도 배가 부르면 해가 진 밖으로 나온다. 집 주변을 빙글빙글 돈다. 두어 바퀴 돌다 보면 눈에 들어온다.
두둥실 뜬 커다란 달.
추석은 정월 대보름 못지않은 큰 달을 볼 수 있는 때이다. 기상 상황에 따라 색이 달라지지만 주로 상아색 또는 연노란색을 띤 거대한 둥근 원이 하늘에 두둥실 떠 있다. 빙글빙글 돌고 있는 나의 위치와 관계없이 항상 하늘의 그 위치에서 빛나고 있다. 그만큼 거대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달이 밝은 날은 가로등이 거의 없는 시골 길도 훤하다. 가로등의 빛과는 결이 다른 빛이지만, 걷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 은은하고 조금은 차갑고, 때로는 달무리와 함께 따스해 보이기도 하는 달빛이라는 것은 그저 햇빛을 반사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태양의 위대함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달빛인지 전깃불인지 알 수 없는 밝음을 따라 또다시 빙글빙글 집 주변을 산책한다. 생각보다 길에 사람이 많다. 다들 배가 불러 밖에 나온 것일까. 아니지. 달맞이를 하러 나온 것일 게다. (돼지 눈에는 모든 사람이 돼지로 보인다는 걸 잊지 말자) 매일 뜨는 달인데, 이상하게 의미가 부여된 달은 뭔지 모르게 달라 보인다. 사람은 보이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지한대로 본다고 했던가. 모든 것은 감각세포에 닿은 그대로가 아닌, 뇌를 거쳐 해석된 결과물로 인식된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들은 같은 사물이라도 사실 모두가 다르게 인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주 미세하게 달라서 서로 같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지도.
저 멀리 몇만 광년 밖에 있는 별의 빛은 출발한 지 몇만 년 후에 우리의 눈에 도달한다. 그래서 언젠가 아이들과 별이 쏟아지듯 떠있는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 저 빛은 이미 몇만 년 전에 출발해서 이제야 네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 그래서 지금 보는 빛과 다음에 보는 빛은 다른 빛이라고. 그러니 이 별빛은 네가 다 가져도 된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달빛도 몇만 년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의 시차는 있을 것이다. 지금 내가 보는 저 달빛은 아마도 다만 몇 나노세컨드 정도만이라도 내가 가져도 될 것이다. 그래서 사진을 찍는다. 물론 눈보다 성능이 좋은 렌즈는 아직 실생활에서 멀리 동떨어져 있기에 눈만큼 사진에 담기지 않는다. 그래도 담아 본다. 오늘 저 달빛은 의미가 있는, 그리고 나만의 달빛일 것이기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몇 바퀴 더 돌고 나니 이제야 배가 좀 꺼진다. 연휴가 모두 끝난 후에 거울을 보면 거울에 두둥실 보름달이 떠 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한숨이 나온다. 여신이 되지는 못 할 망정, 탱글탱글 동글동글한 얼굴로 향해 가고 있다니. 인간의 DNA가 조금 더 빨리 변형되어, 지금만큼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축적하지 않아도 되는 몸이 된다면 참 좋을 텐데. 이미 나는 그른 몸이니,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 한동안은 저녁 시간에 집 주변을 산책해야 할 듯하다. 빙글빙글, 동글동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