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지 삼켜버리는 것, 흩날리는 것 같은 꽃, 알 수 없는 쓸쓸함
10월입니다. 10월 첫날 아침에는 가을 아침에 걸맞게 한강에서 물안개가 가득 피어올랐습니다. 조금 떨어져 있지만, 창 밖으로 보는 바깥 풍경이 부옇다 못해 여기저기 안갯속에 잠겨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안개 세상이었어요.
음악은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줍니다. 특히 장기 기억에 있어서, 후각만큼 청각도 매우 중요한 트리거가 되지요. 벌써 2년은 넘은 것 같은 그 어느 한창 뜨거운 여름날, 추울 만큼 시원한 영화관 안에 모두 합해서 5명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앉아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 영화를 보고 나면 이 노래를 기억할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오늘 아침, 안개는 그 기억을 다시 되살렸습니다.
나 홀로 걸어가는 안개만이 자욱한 이 거리
그 언젠가 다정했던 그대에 그림자 하나
생각하면 무엇하나 지나간 추억. 그래도 애타게 그리는 마음
아아아 아아아아- 아아아 아아아아- 그 사람은 어디에 갔을까
안갯속에 외로이 하염없이 나는 간다
돌아서면 가로막는 낮은 목소리. 바람이여 안개를 걷어가 다오
아아아 아아아아- 아아아 아아아아- 그 사람은 어디에 갔을까
안갯속에 눈을 떠라 눈물을 감추어라
어릴 적 정훈희 선생님의 음색은 정말 청량하고 한없이 고왔었습니다. 그 어린아이는 벌써 나만큼 자라 버린 아이들의 엄마가 되었지만, 그 오랜 세월이 지나도 그녀의 음색이 거의 그대로라는 것에 감탄을 금치 못했었습니다. 박찬욱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 노래를 듣고 헤어질 결심이라는 영화의 콘셉트를 잡기 시작했다는 말을 했었지요. 그래서 그런지 이 노래는 그 영화를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사람이 계속 죽어나가지만, 이상하게 무섭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안타깝다는 생각만 들었었지요. 왜 우리는 항상 엇갈리는 것일까요. 정말 만나야 할 사람들은 왜 함께하기 어려운 것일까요. 만나야 할 사람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은 아마도 전생에 나라를 구한 덕이 높은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행운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니, 아니지요. 함께 해야 할 사람과 함께하지 못하는 이유는 운명 때문이 아니라, 그저 그 당시 인간의 선택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냥 다 버리고 함께하는 것을 선택하면 되는 것을, 인간은 각종의 것들에 묶여서 그렇지 못하게 되곤 하니까요. 영화 남과 여(전도연/공유 주연, 한국 영화)에서, 처음에는 소극적이었다가 나중에 마음을 연 여자가, 처음에는 적극적이었다가 후에 돌아서버린 남자에게 결국 버림받는 결론은 우리들의 마음과 선택이 얼마나 쉽게 엇갈릴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벽에 내 사진 붙여놓고, 잠도 못 자고, 오로지 내 생각만 해요.
서래(헤어질 결심 여주인공)는 그(남주인공)와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이 사라짐으로써 그의 기억 속에 평생 남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그녀는 성공했을 겁니다. 하지만 실재하지 않죠. 남자는 평생 그녀를 기억 속에 간직할 것입니다. 하지만 때때로 엄청난 슬픔 속을 헤매야하겠죠. 안갯속을 떠도는 사람처럼, 그녀의 기억 속에서 떠돌아야 할 것입니다. 그 안에 그녀는 점점이 피어있는 안개꽃처럼 흩날리듯 그의 주변을 맴돌 것입니다. 안갯속을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시나브로 옷자락이 젖고, 몸이 으슬으슬 추워집니다. 서래는 그 자체로, 안개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