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

외야, 수비, 짐승, 거침, 괴수, 어쩌면...

by Pink Brown

작년부터 인기에 불이 붙은 프로 야구의 올해 정규시즌이 마무리되었다. 우리 집에는 서울 연고의 팀과 대구 연고의 팀을 응원하는 사람이 각각 있어서, 야구에 대한 이야기를 안 듣는 것이 더 어려운 한 해를 보냈다. 3월 시범 경기부터 9월 잔여 경기까지 거의 매일 야구에 대한 이야기를 귀로 들었다. 이렇게 10년 넘게 듣다 보면 야구장에 가서 전광판을 읽을 수 있는 여자가 된다. 물론 의도한 것은 아니다. 좋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주 가끔 회사에서 대화할 때 쓸모가 있을 때도 있다. 하지만 주로 가족 간의 소통 창구로 사용되곤 한다.


야구에서 가장 잦은 일 중 하나가 선수의 부상이다. 부상입은 선수의 포지션에는 한동안 교체 선수가 뛰어야 하는데, 이때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요소가 야수 포지션이다. 크게는 내야수와 외야수, 상세하게는 우익수, 좌익수, 중견수, 유격수, 1~3루수로 분류되는 이 야수 포지션은 타격감 못지않게 선발 라인업 합류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각자 잘하는 수비 포지션이 다르기 때문이다. 최근 타격감이 괜찮은데 같은 수비 포지션에 공석이 생기면 정말 운이 좋은 것이다. 거기서 열심히 하면 주전까지 노려볼 수 있다. 실력 반, 운 반인 것은 세상 어디에 가나 비슷하게 적용되는 법칙 같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대입도, 취업도, 승진도, 제2의 직업도 결국 지금까지 쌓아온 실력 반, 그리고 적절한 시기에 뿅 나타나는 운=기회 반이다.)


야수들이 수비하는 모습을 보면 한 마리의 야수가 생각난다.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고 타격 포즈를 잡는 순간부터 야수들의 눈빛은 먹잇감을 노리는 야수의 눈으로 변모한다. 최대한 집중해야 공이 맞고 어디론가 튀어가는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여 내가 어떤 동작을 해야 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순간의 망설임은 자칫 상대의 공을 안타, 심하면 그라운드 홈런으로 만들 수도 있다. 공을 쫓는 눈빛과 날렵한 동작, 공을 잡은 후 연결되는 수비 동작은 무리를 지어 사냥하는 야수의 모습과 겹쳐진다. 딱히 말을 막 주고받지 않아도 지금까지 수없이 한 연습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동작으로 서로 공을 주고받고 주자를 쫓는다. 때로는 그 동작이 거칠기 그지없어 스스로를 다치게 만들게도 한다. 심한 슬라이딩, 무리한 다이빙 캐치, 달려오는 주자를 피할 생각이 없는, 오로지 공만 보고 있는 베이스 수비 자세. 간혹 관중석에서 오오 하는 걱정의 탄식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야수들은 막상 그 동작을 할 때에는 생각을 거치지 않는다. 몸이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플레이를 하고 있는지 인식조차 못하지 않을까 생각하곤 한다. 아니라면 당연히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본능으로 그렇게 무리한 수비를 할리가 없지 않을까.


지금,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무언가가 내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집중의 눈빛, 야수의 눈빛으로 갑자기 변모하고 온 신경이 그것에 쏠린다. 매번 실패하지만 이번에는 놓치지 않으리라. 잠시 내려앉는 순간 일상에 거의 없는 속도로 그것을 내리친다. 그리고 그것은 잡혔다. 눈이 흡족함에 휘어진다. 바로 쓰레기통으로 보내진, 일상에서 나를 순간 사냥하는 야수로 만드는 그것은, 초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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