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abbin Chang Jun 11. 2021

인식된 가치(Perceived Value)

Ep.2: 인식된 가치(Perceived Value)


“네...?”


갑자기 울려 퍼진 묵직한 목소리에 일순 정적이 흘렀다. 김필립은 문득 들려온 목소리도 목소리지만, 그 목소리가 전한 어려운 단어들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아 다시 한 번 멍한 상태가 되었다.


“아하하하…! 바텐더 아저씨 선배님이신 건가요? 괜히 베테랑 앞에서 주름잡은 건가…?”

장아라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반응했다.

“선배는 무슨, 오랫동안 이 일을 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거죠.”

“에이, 어디서 주워들은 수준의 말씀이 아니신데요? 어쩐지 들어올 때부터 뭔가 센스가 남다르다고 느꼈어요.”

“센스가 남다르다니, 무슨 소리야 누나?”

“나중에 필요해지면 천천히 알려줄게. 너 방금 사장님이 하신 말씀이 뭔지는 이해했어?”


김필립은 방금 전에 들었던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보았다. 가치를 창출하여 소비자에게 인식시킨다. 그리고 그것을 유지한다. 한국어인데도 알듯 말듯한 이야기였다. 가치를 창출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이고, 소비자에게 인식시킨다는 것은 그것을 알린다는 거겠지. 그것을 유지한다는 것은 소비자가 그 가치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반복적으로 알린다는 건가.


“반만 맞았어.”

“아 좀! 잘 좀 알려줘 봐!”

“하하, 그래. 가치를 창출한다고 하니까 넌 무언가를 만든다고 했잖아? 그런데 그 무언가를 만든다는 게 꼭 물리적인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예를 들면, 그래, 네가 지금 마시고 있는 그 맥주. 그건 마트에서 사나 여기에서 사나 똑같은 병맥주야. 맛이 달라지거나 양이 늘어나지 않는다고. 그런데도 넌 이 바에 앉아 돈을 두 배는 더 내고 마시잖아? 그건 네가 여기서 맥주를 사서 마시는 것이 마트에서 맥주를 사다가 집에서 마시는 것보다 그만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그래서 두 배의 비용을 지불하고 여기서 맥주를 사 마시고 있는 거지. 물리적으로 보이지 않는 무형의 가치인 거야.”


눈을 반짝이며 생기 있게 말하는 장아라와는 달리, 김필립은 여전히 무언가가 확실하게 와닿지 않는 기분에 질문을 이어갔다.


“어... 그럼 그 무형의 가치라는 게 인건비나 인테리어 비용이나 아니면 여기 월세 같은 것을 말하는 건가?”

“또 반만 정답. 물론 그건 판매자가 생각해야만 하는 비용이고 그게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쓰인 투자이니까 아예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딱 맞는 얘기도 아니야. 너는 비용을 들여 만들어 낸 가치에 대한 값을 지불하는 것이지, 비용 그 자체를 부담하는 건 아니야. 예를 들어, 넌 사장님이 억대 연봉을 받아 마땅한 훌륭한 인재시니까 맥주값을 두 배 더 내라면 그러겠어?”

“아니, 그건 말이 안 되지.”

“맞아, 사장님이 사실은 노벨상을 딴 말도 안 되는 훌륭한 인재라 할지라도, 네가 여기서 사는 것은 어디까지나 ‘훌륭한 바텐더가 서빙하는 맥주’야. 그러니까 너는 네가 ‘인식한 가치’에 대해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지, 판매자의 비용을 거들어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그러니 억대 연봉을 받아 마땅한 사장님이 그걸 포기하고 맥주를 서빙하는 기회비용을 내라고 한다면 이상하게 느껴지는 거야. 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너는 왜 마트에서 맥주를 사다가 집에서 마시지 않고 여기 이 바에 와서 맥주를 마시기로 한 거지? 심지어 똑같은 병맥주인데 말이지.”


김필립은 그동안의 기억을 차분히 되짚어 보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바를 보고 맥주라도 마실까 해서 처음 들어왔을 때 느꼈던 알 수 없는 상쾌함. 조용하지만 우울하지는 않은 분위기. 사람이 많든 적든 신기하게도 차분한 느낌. 의외로 이 바를 꾸준히 찾는 여러 가지 이유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 여기 기분 좋게 시원하고, 조용하고 그래서 차분한 느낌이 들어. 뭘 생각하기 아주 좋아. 너무 어둡지도 밝지도 않고, 음악도 잔잔한 게 딱 내 스타일이고, 오늘 같은 날 누나 같은 사람을 불러서 얘기하기도 좋게 분위기도 세련됐고.”


“그래. 바로 그거야. 그게 바로 네가 ‘인식한 가치’라는 거야. 너는 단순히 맥주를 산 게 아니라, ‘기분 좋게 시원하면서도 조용하고 차분한, 음악이 나오는 공간에서 마시는 맥주’라는 경험을 통째로 산 거라고.”


아하. 김필립은 오늘 이야기를 시작하고 나서 처음으로 드디어 무언가 깨달은 듯한 기분을 느꼈다.


“어, 뭔가 이해는 될 것 같은데, 아니 이해는 되는데, 마케팅이 원래 이렇게 철학적인 거야...?”

“하하하 철학은 무슨…”


그때, 묵묵히 잔을 닦고 있던 바텐더가 다시 무심히 말을 건넸다.


“내가 그것과 비슷한 재밌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지. 자네, 드릴을 만드는 회사는 무엇을 판다고 생각하나?”

“네? 드릴 회사가 드릴을 팔겠지요…?”

“자네는 왜 드릴을 사나?”

“어... 구멍을 뚫으려고 사죠.”

“그러면 드릴을 만든 회사가 파는 건 드릴인가? 아니면 ‘구멍’인가?”

“예? 예?! 드릴… 아니, 구멍, 구멍이네요…!”

“그래. 드릴을 만드는 회사가 파는 건 사실 ‘구멍을 뚫게 해주는 도구’인 것이지, 드릴 그 자체가 아니야. 소비자는 원하는 대로 구멍만 잘 뚫을 수 있다면 그게 드릴이건 아니건 사실은 아무 상관이 없네. 이것이 소비자의 최종 이득, 즉 ‘엔드 베네핏(End benefit)’이라는 개념이지. 자네의 상품이 핵심적으로 소비자에게 전달해야 하는 가치라는 거야.”

“소비자의 최종 이득이라…”

“예를 들자면, 스테이크 집에서 파는 것은 단순히 불에 적당히 익힌 소의 근육덩어리가 아니네. 음식의 맛과 향, 그것을 즐기면서 오는 행복하고 즐거운 경험, 그리고 같이 식사하는 사람과 나누는 즐거움의 공감이겠지. 이것이 흔들리면 괴상망측한 일이 벌어진다네. 드릴 회사가 순금으로 만든 고급 드릴을 비싸게 팔겠다고 한다면 어떻겠나?”

“세상에 멍청한 소리겠네요. 금으로는 구멍을 제대로 뚫지도 못하는데.”

“그래. 의외로 그런 멍청한 일들이 세상엔 많이 일어나고 있다네. 자네가 마케팅을 한다면, 아니 사업을 한다면 자네가 정말 무엇을 팔고 있는지 한시도 잊으면 안 되지. ”


김필립이 바텐더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장아라는 태블릿을 꺼내 무언가를 슥슥 쓰기 시작했다.


인식된 가치 (Perceived Value) = 인식된 이득 (Perceived Benefits) – 인식된 비용 (Perceived Costs)


“자, 정리해서 좀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이게 바로 기초적인 공식이야. 너무 당연하지만 소비자는 인식된 이득이 인식된 비용보다 커야지만 구매를 하게 되겠지.”

“그럼 좋은 상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팔아야 한다는 이야기인 거잖아.”

“왜 자꾸 물리적이고 보이는 것으로 돌아가려고 그래. 방금 전에 네가 말한 것 같이 눈에 안 보이는 것도 생각을 해 봐. 이득도 비용도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것과 보이지 않는 개념적인 것이 있다고. ”

“아 맞아. 그런데 이득은 지금 이야기 한 거라고 해도, 비용은 어떤 거지? 내가 내는 돈 말고 뭔가 더 있는 거야?”

“예를 들면, 불편함? 만약에 이 바가 높은 언덕 위에 있다든지, 한참 걸어와야 한다든지 했어봐.”

“귀찮아서 안 오게 되겠네.”

“정확히 얘기하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올 무언가, 즉 이득이 없으면 오지 않는 것이지. 너의 비용, 즉 언덕을 올라와야 하는 노력이 더 크니까 말이야.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인식한’이라는 거야.”


다시 김필립의 눈이 멍해졌다.


“'인식했다'라고 하는 건, 그러니까 내가 안다는 것이잖아. 자기가 사려는 물건의 이득이나 비용 같은 걸 모를 수도 있는 건가?”

“응, 거꾸로 대부분의 경우 모른다고. 예를 들어, 너는 아까 왜 여기서 돈을 더 내고 마시는지 얘기할 때 가만히 생각하기 전까지는 여기서 술을 마시는 것의 좋은 점을 인식하지 못했어. 그것도 그나마 이곳은 물리적으로 느낄 수가 있는 공간이니 네가 나중에 기억을 떠올리며 느낀 점을 인식할 수라도 있었지. 만약 이곳에 와본 적이 없는 사람한테 네가 느낀 것을 설명하려 한다면 쉽게 할 수 있을까? 아마 상당히 어려울 거야. 즉, 이곳이라는 상품의 이점을 인식시키는 것이 그렇게 당연하고 쉬운 일만은 아니라고.”

“비용은? 자기가 손해인 것은 되게 쉽게 인식할 것 같은데?”

“맞아, 소비자들은 자신에게 이득인 것보다 손해인 것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는 하지. 하지만 비용이 꼭 손해인 경우만 있는 건 아니야. 비용을 절약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네가 온라인 쇼핑을 얘기하니까 그 예를 들자면, 옛날에 온라인 쇼핑이 처음 시작했을 때는 소비자들이 ‘그냥 나가서 사면 되는걸 왜 배달비 내고 온라인으로 시키는지 모르겠다’라고들 했단 말이야. 사실 ‘그냥 나가서 산다’는 것이 나가는데 드는 교통비, 물건 찾으러 다니는 데 드는 시간, 그리고 본인의 노력이라는 인건비 등의 비용이 포함된 얘기인데,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 거라고. 어떻게 보면 배달비가 더 저렴할 수도 있는 거지.”

아하, 그러고 보니 그렇네. 그러면 인식하지 못하고 사실은 손해이거나, 인식하지 못하고 사실은 이득인 일을 하고 있다는 건가?”

그렇지. 생각보다 많은 경우가 그래. 그래서 이러한 소비자의 이득과 비용을 소비자에게 인식시켜서 ‘사실 이것은 좋은 상품이에요라고 소비자의 가치를 창출해내는 것이 바로 마케터들이 하는 일이라고. 다시 정리하자면 이런 거지.”

 




소비자의 인식된 가치

보통 우리들은 상품 혹은 서비스의 가치가 그 물건이나 서비스 자체에 담겨 있다고 무심코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의 가치는 자동차 그 자체에 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운전을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자동차는 자동차라는 상품으로서 가치를 지니지 못합니다. 혹은 새로 나온 고급 자동차의 최첨단 사물 인식 크루즈 기능도 소비자가 그 기능을 인지하여 적절하게 사용하지 않으면 없는 기능과 다를 바 없지요. 즉, 아무리 좋은 상품이고 서비스라도 적절한 소비자가 그것을 구매하여 그 이득을 인식해야만 그것이 본래의 가치를 발휘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바로 마케팅이 세일즈와 구분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세일즈는 판매자와 상품의 입장에서 판매자의 니즈(Needs)에 따라 상품을 판매하지만, 마케팅은 소비자의 입장에서 시작하여 상품의 가치를 발견하고 창출하여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행위입니다.

예를 들어, 과거 포드의 T모델 자동차라는 세계 최초의 대량생산 자동차의 경우, 소비자에 대한 고려는 거의 없이 똑같은 자동차를 싼 가격으로 말 그대로 찍어내어 ‘판매’를 하였습니다. 반대로 최근의 수많은 화장품 브랜드를 생각해보면 브랜드마다 연상되는 고객층이 정확하게 있고, 그 고객들이 요구하는 상품군을 적절하게 갖추고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지요.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업계들이 생산자 혹은 판매자의 관점에서 세일즈를 하는 방식으로 비즈니스를 시작하였고, 아직도 그러한 업계가 남아있기도 하지만, 기술과 마케팅 방식의 발전으로 최근에는 소비자의 니즈를 중심에 둔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는 업계가 대세가 되었습니다. 물론 어느 한쪽이 옳다거나 뛰어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업계의 특성, 혹은 동종업계라 해도 각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에 따라 적절한 방식이 있을 뿐입니다.

세상의 많은 상품과 서비스들이 적절한 소비자를 찾지 못하여, 그리고 그 제품과 서비스의 진면목을 소비자에게 알리지 못하여 가치를 잃고 시장에서 사라져 갑니다. 마케터의 일은 바로 그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상품과 어울리는 소비자를 짝지어 주고, 그 가치를 올바르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전 01화 온라인 쇼핑몰을 만들고 싶은 김필립 씨의 경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