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점점 달아오르면서 김필립은 소비자, 그리고 가치라는 것이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어렴풋이나마 알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게 어떻게 자기 사업에 도움이 될지 구체적으로 와닿지가 않는 것이 문제였다.
“누나, 뭔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기는 하는데 아직도 엄청 철학적인 것 같거든? 온라인 쇼핑몰 만드는데 도움이 안 되진 않겠지만…”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지? 아하하하.”
“하하, 응. 솔직히 사실 좀 뜬구름 잡는 얘기잖아. 원래 난 누나한테 마케팅… 아니, 광고하는 법 배워서 바로 물건 정해 가지고 일단 시작해볼까 했단 말이야.”
“엉? 물건도 안 정하고 아무 준비도 안 했는데? 아니, 사실 그것도 방법이긴 하지만 말이지.”
“그것도 방법이라니?”
“마케팅이 아니라 사업, 비즈니스잖아. 백 가지 계획보단 한 가지 실천이 나을 수도 있지. 하지만 말이야, 유니클로 창업자인 야나이 타다시 씨는 이런 말을 했지. ‘비즈니스는 30%가 논리(Logic)이고 70%가 운입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30%의 논리를 완벽하게 준비해야 70%의 운이 자기 앞에 왔을 때 놓치지 않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의미심장하네.”
“마케팅뿐만 아니고, 많은 회사들이 프로젝트가 끝나면 담당자에게 하는 세 가지 질문이 있어. ‘왜 성공 혹은 실패했는가, 어떤 것이 좋았고 어떤 것이 좋지 않았나, 지금 과거로 돌아가서 딱 한 가지를 바꿀 수 있다면 무엇을 바꾸고 싶은가.’ 야나이 씨의 이야기나, 이 질문이나 결과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한 가지야. 만약 네가 좋은 계획을 논리적으로 만들어서 비즈니스를 했다면, 성공했을 땐 같은 일을 다시 할 수 있을 것이고, 실패했다면 계획에서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알아내서 수정할 수 있겠지. 왜 성공했는지 또는 실패했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너의 과거가 성공이든 실패든 의미 있는 경험이 되는 거야.”
“응… 그렇네. 준비한 거라고는 이거밖에 없는데...”
김필립은 고민하며 적어두었던 종이를 쭈뼛거리며 꺼냈다. 나름대로는 오랜 시간 고민했던 세 문장이었지만 이야기를 듣고 보니 너무 준비한 게 없는 것 같아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장아라는 눈을 빛내며 흥미롭게 그것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많은 자본이 없다: 초기 투자가 많이 필요하지 않은 사업
특별한 기술이 없다: 제조나 개발이 필요하지 않은 사업
비즈니스 센스가 있고 논리적이다: 데이터 분석이나 계산이 중요한 사업
“혼자서 이걸 쓴 거야?”
“아, 너무 그러지 마. 그거 쓰는 데만 해도 오래 걸렸다고.”
“아니 아니, 하하. 너 의외로 마케팅 센스, 아니 비즈니스 센스가 있는데? 여기 써놓은 것처럼 말이야. 너 스왓 분석(SWOT Analysis)이라고 들어본 적 있어?”
“응, 그거 여기저기서 많이 나오는 거 아닌가? 뭔지는 잘 모르지만.”
“그래. 네가 지금 여기 써놓은 게 그거랑 비슷한 거라고. 내부 요인만 적어놓긴 했지만.”
장아라는 그렇게 얘기하며 다시 태블릿으로 슥슥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자, 너의 생각을 정리하는데 이게 도움이 될 거야.”
“후와, 이거 드디어 뭔가 전문적인 냄새가 확 나는데?”
“땡, 또 틀렸어. 현업 마케터들은 실전에서 이런 거 안 그려.”
“으잉? 그럼 이게 다 뭐야?”
“이건 마케팅을 공부할 때 배우는 기본적이고 중심이 되는 프레임워크(Framework)야. 기본적이라서 현업들이 안 쓰는 게 아니야. ‘프레임워크’라는 말이 중요해. 프레임워크는 마치 운동선수가 늘 같은 폼을 유지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같은 거야. 그래, 자세교정 의자나 치아교정기 같은 거를 생각해도 되겠네. 즉, 네가 마케터의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게 훈련을 시켜주는 생각하는 틀이라고. 궁극적으로는 저런 것을 그리지 않더라도 저런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게 연습을 시키는 거야.”
“그러니까… 결국 달달 외워서 익숙해지라는 얘기 아니야?”
“아니, 틀려. 프레임워크는 아무렇게나 그릴 수 있어. 예를 들어, 우리가 방금 얘기한 여기 가장 위에 있는 스왓을 생각해볼까? 이것은 간단히 설명하면 ‘좋음/나쁨’과 ‘내부 요인/외부 요인’을 가지고 만든 2 x 2의 표에 불과해. 너는 사실 ‘좋음/나쁨’ 대신 ‘좋음/중간/나쁨’으로 나눌 수도 있고, ‘내부/외부’ 대신 ‘현재/미래’ 같은 것을 넣을 수도 있어. 그렇게 바꾼 것 중에 대표적인 예가 BCG Matrix야. 별로 안 중요하니까 지금 찾지 말고 나중에 찾아봐. 아무튼 중요한 것은 프레임 워크 자체가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이라는 거야. 예를 하나 더 들어볼까?”
장아라는 태블릿에 간단하게 끄적거렸다.
매출 = 판매 가격 x 판매개수
“어때, 이 공식 쉽게 이해되지? 이건 아주 좋은 프레임워크라고.”
“이게 저 위에 누나가 그린 거랑 비교가 되냐고요.”
“아니, 봐봐. 이 공식을 프레임워크로 생각하면, 네가 매출을 올리기 위한 전략은 ‘판매 가격을 높일 것이냐’ 아니면 ‘판매개수를 늘릴 것이냐’라는 생각으로 전개되지. 그러면 당연히 ‘어떻게?’가 나올 것이고, 경쟁사 가격, 매장 방문객 수 등등 무엇을 생각할지 정리가 된다고. 그런데 이것은 ‘매출’에 관한 프레임워크라서 너의 생각이 매출에 집중된다는 문제도 있어. 예를 들어 너의 프레임워크가 ‘수익 = 매출 – 비용’이었다면, 너는 매출뿐만이 아니라 비용도 같이 생각할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매출이 아니라 수익을 올리는 방법을 생각하게 되겠지.”
“무슨 소린지 알 것 같네.”
“이 공식은 사업하는 사람들이면 동네 슈퍼부터 대기업까지 다 해당되는 이야기야. 너는 이 세상 모든 사장님들이 이 공식을 달달 외워서 써놓고 전략을 고민할 것 같아?”
“아니, 아니겠지.”
“그럼 그렇다고 저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아니, 당연히 본능적으로들 하고 있지 않을까?”
“그래. 그거야. 저 마케팅 프레임워크를 달달 외워서 저런 걸 매일 그리는 게 목표가 아니고 언제나 저렇게 생각하는 습관을 들여서 딱히 저런 걸 매번 그리지 않더라도 늘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너의 목표야. 물론 그리는 게 나쁘다는 건 아니야. 언제나 직접 써보고 정리하는 것은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되지. 그걸 그리는 자체가 목표가 되면 안 된다는 이야기야.”
“그러면 내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이 프레임워크라는 것을 내 맘대로 만들어도 되는 건가?”
“그럼, 당연하지. 실제로 컨설턴트나 전문 에이전시들은 프레임워크를 프로젝트에 따라 만들어 낼 때도 많이 있다고. 하지만 여기 그려놓은 마케팅 프레임워크들은 오랫동안 많은 마케터 선배들이 배우고 가르치면서 쓴 것들이야. 즉, 꽤나 효율적이고 검증된 프레임워크란 말이지. 일단은 이것에 익숙해지는 것에 집중해 보자고.”
김필립은 방금 장아라가 그려놓은 마케팅 프레임워크를 다시 한 번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마케팅 프레임워크 (Marketing Frameworks)
많은 경영학부 대학생들이나 마케팅을 공부하시는 분들이 적어도 한 번쯤은 보았을 마케팅 프레임워크들입니다. 특히 스왓 분석(SWOT Analysis)은 너무 유명해져서 마케팅과 그다지 관계없는 곳에서도 자주 애용되는 분석기법이지요. 이렇게 많은 프레임워크들과 스왓, 3C (5편에 나오게 되겠지만, 이 글에서는 협력사 Collaborators를 포함하여 4C로 표현합니다) 나 4P 같이 영어가 그대로 들어가 있는, 무슨 뜻인지 알 수도 없는 표들이 잔뜩 나와 있다 보니, 이 프레임워크를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케팅 전문가 취급을 받는 웃지 못할 일들도 종종 벌어집니다.
장아라가 본문에서 설명하였듯, 마케팅 프레임워크는 말 그대로 프레임워크, 뼈대 작업에 불과합니다. 마케터가 생각을 쉽게 정리할 수 있도록 가이드의 역할을 해주는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뼈대가 아니라 그 속에 든 알맹이, 즉, 어떤 생각으로 마케팅 플랜을 짜는 것인가입니다.
본문에 나온 이야기를 다시 한 번 강조하는 이유는, 많은 초보 마케터들이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스왓 분석을 하거나 마케팅 프레임워크를 그리고 있는 것을 너무나도 많이 봐왔기 때문입니다. 사실 생각하는 방법만 맞다면 프레임워크를 지킬 필요도, 이유도 없습니다. 통째로 들어낼 때도 있고 각 요소를 빼거나 더할 수도 있겠지요. 아니, 본문에서 장아라가 이야기했듯이, 전문 전략 컨설팅 펌이나 마케팅 에이전시들은 아예 새로운 프레임워크를 만들 때도 많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프레임워크를 이용하여 자기가 얻으려는 결과물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이 논리적으로 맞는 이야기인가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스왓 분석을 했어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스왓 분석을 하였는지, 그리고 그 분석을 통하여 알게 된 결론이 무엇인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장아라가 그린 마케팅 프레임워크를 이제부터 하나하나, 차근차근 설명해 나갈 것입니다. 마케팅 초보자인 김필립도 이 글이 끝날 때쯤에는 프레임워크가 필요 없어질까요? 여러분들도 마케팅 프레임워크의 방식대로 생각하는 일에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복잡하게 그려놓은 프레임워크가 점점 필요 없어지는 경험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