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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bbin Chang Jul 02. 2021

김필립 씨의 숙제

Ep.5: 김필립 씨의 숙제


열띤 토론, 아니 사실 강의에 가까운 대화가 어느 정도 정리되자 한동안 조용한 음악만이 바에 흐르고 있었다. 김필립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조용히 맥주를 들이켜고 있었다.

 

“왜 그래? 갑자기 조용해져서.”

“아니. 그냥 뭔가 암담해져서 말이야. 대충 알 것 같은 기분도 들긴 하는데, 거꾸로 어디서부터 뭘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

“하하, 걱정하지 마. 내가 지금 말한 거 대학에서는 한 학기 동안 배우고 연습하는 내용이라고.”

“하아.. 그렇구나. 그래도 어차피 알아야 되는 건 마찬가지잖아. 한 학기 더 다닐 생각하고 지금이라도 마케팅 수업 들어갈까?”

“그것도 좋겠지만, 내가 가르쳐 줄 테니까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자고. 자, 마지막으로 하나 더 가르쳐 주지.”


장아라는 다시 태블릿에 뭔가를 슥슥 그리기 시작했다.


“자, 이걸 한번 봐봐. 이게 아까 프레임워크에서 봤던 4C분석을 생각하는 그림이야. 네가 찾아야 할 것은 바로 저 빗금 친 부분, 고객이 원하는 것 중에서 경쟁사가 제공하지 않고 너만이 제공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하는 것이야. 이걸 밸류 프로포지션, 가치제안(Value Proposition)이라고 해.”

“밸류 뭐?”

“영어를 잘해도 약간 전문용어이니까 처음 들을 수도 있어. 우리나라 말로는 가치제안이라고 번역하던데, 원래는 비즈니스에서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사업적 제안을 얘기하는 말이야. 체크메이트 같은 거지. 즉, 소비자가 진정으로 원하는데 경쟁사는 제공할 수 없고 너만 제공할 수 있다면 소비자는 반드시 네가 제공하는 그 상품을 살 수밖에 없겠지.”

“그건 맞는 말이네. 후... 근데 그런 걸 개발하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 무슨 아이폰 같이 세상에 처음 스마트폰을 내놓는 것 같은 이야기 아냐?”

“또 보이는 걸로만 돌아가네. 아이폰이 물론 그렇게 간단한 건 아니었지만, 너는 물질적이고 상품 자체의 가치만을 자꾸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그걸 빨리 떨쳐내야 돼. 세상에는 물질적인 혁신이 아니어도 엄청나게 큰 성공을 거둔 사례는 끝도 없이 많다고.”

“예를 들면?”

“자라(ZARA)라는 옷 회사 들어봤지? 자라의 가치제안이 뭐였을 것 같아?”

“글쎄...? 싼 가격에 패셔너블한 옷?”

“아니, 그런 건 많아. 정말 끝도 없이 많지. 자라가 내세웠던 것은 ‘편안하게 버릴 수 있는 옷’이야. 유행에 따라서, 아니면 한두 번 눈에 띄려고만 입고, 오래는 못 입는 그런 옷들을 편하게 버릴 수 있도록 저렴한 가격과 한 두 번만 빨면 못 입게 되는 적당한(?) 품질로 승부한 것이 처음의 가치제안이었어. 그걸로 전 세계적인 대히트를 친 거라고.”

“쉽게 버릴 수 있는 옷이라...”

“그래. 그리고 한 가지 더. 네가 생각하는 아이디어가 세계에서 유일할 필요도 없어. 정확하게 분석해. 이건 ‘경쟁사’가 제공하지 않고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 혹은 서비스야. 즉, 네가 앞으로 사업을 벌일 장소나 공간에서 벌어지는 경쟁사들과 그곳에 있는 소비자들의 이야기지 전 세계와 특허경쟁을 하고 있는 게 아니야. 네가 사업을 할 곳이 한국이면 한국, 아니 심지어 서울이면 서울, 종로구라면 종로구, 이 동네 근처라면 이 동네 근처에 있는 경쟁사와 소비자만 생각하면 된다고. 아까 얘기했던 ‘인식된 비용’이라는 말 기억나?”

“어… 만약에 이 바가 높은 언덕 위에 있으면 오기 더 힘들다는 거지?”

“맞아. 그렇게 물리적인 거리라든지 언어나 문화적인 차이는 그 ‘인식된 비용’을 높이는 충분한 요인이라고. 그런 비용이 높으면 너의 경쟁사나 고객이 되기 힘든 거지. 간단히 말하자면, 이 동네에 수제버거집을 차리면서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유명한 햄버거집이 나보다 햄버거를 더 잘 만든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 아까는 4C였잖아. 여기엔 왜 3C야? 협력사들은 어디 간 거지?”

“좋은 질문이야. 협력사들은 바로 이런 효과를 가져다주는 거라고.”


장아라는 아까의 그림에 슥슥 점선을 덧그렸다.



“이렇게 네가 제공할 수 있는 범위를 협력사가 넓혀 준다고 생각하면 돼. 당연히 빗금 친 부분의 넓이도 넓어지겠지? 처음 이 4C분석은 3C로 출발했어. 그런데 요즘에는 많은 회사들이 협업체제를 구축하고 또 인수합병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경우가 많아서 4C로 넓혀서 협력사의 개념을 갖게 된 거야.”

“그렇구나.”

“자, 이게 바로 오늘 너의 숙제야.”

“응?”

“이제 집에 가서 네가 하겠다는 온라인 쇼핑몰을, 아니 그게 아니라도 네가 하겠다는 사업을 이 4C 분석하고 스왓 분석을 써서 정리해 와. 방금 전에 얘기한 대로 네가 제공할 수 있는 가치제안이라는 것에 중점을 둬서 말이야. 협력할 사람이나 회사를 찾아서 범위를 넓히는 것도 좋을 거고. 그러면 관련된 분야의 시장조사를 하게 될 테니 자연스럽게 스왓도 완성될 거야. 그렇게 해서 뭔가 틀이 잡히면 또 연락해.”

“또 봐줄 거야?”

“그럼 이런 생초보를 어디다 내놓으라고. 하하.”

“누나 바쁘잖아.”

“괜찮아. 마케팅 얘기는 언제나 즐거우니까. 그리고 마케터, 아니 사업할 사람한테 가장 중요한 게 있는데 말이야...”

“뭔데?”

“언제나 자뻑. 자만하라는 말은 아니지만 자신감을 잃으면 안 돼. 어차피 70%는 운이라고. 논리는 30%. 심지어 잘못하면 고치면 돼. 그러니 언제나 자뻑. 내 물건은 모든 사람들이 사랑해줄 거야.”

“하하, 뭐야 그게?”

“진짜야. 네가 네 물건을 안 좋아하는데 누가 그걸 좋아하겠어? 마케터한테 자기 상품은 자기 자식 같은 거라고. 내가 생각하는 소비자를 위해 그 사람들이 좋아하라고 만든 상품을 그 사람들이 안 좋아할 리가 있을까? 그런 의심이 들면 애초부터 만들지를 말든가 아니, 그전에 그 상품 고치라고! 하하.”


마지막 남은 칵테일을 비우며 장아라는 웃으며 얘기했다.


“그리고 넌 이름이 좋잖아. 사람들은 다 이름대로 살더라.”

“그래. 고마워, 누나.”

“응, 더 있다 갈 거야? 나 내일 아침 일찍 회의 있어서 먼저 간다. 벌써 11시네.”


여전히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바에서 바텐더는 가게 정리를 시작했다. 장아라가 돌아가고 혼자 남은 김필립은 남은 맥주를 바라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오늘 배운 게 너무 많아서 약간 어지러운 것도 있지만, 장아라가 가기 전에 보내준 메모를 보고 있으니 뜬구름만 잡는 것 같던 예전보다는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한번 해보기로 한 거 반드시(必) 혼자서 일어서겠어(立). 마음을 굳히고 마지막 남은 맥주를 비운 김필립의 입가에 자신감 어린 미소가 떠올랐다.



창업자(Entrepreneur)와 마케팅

창업자가 모두 마케팅을 배워야 한다거나 혹은 마케팅적인 방식으로 비즈니스를 디자인해야 할 이유는 사실 전혀 없습니다. 아울러, 창업자들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 프레임워크도 사실 많이 존재합니다. 업계나 소비자에 따라 마케팅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경우도 있고, 혹은 이전에도 장아라가 한번 이야기했듯 계획을 세우느라 시간을 질질 끄는 것보다 그냥 한번 해보는 것이 나은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또한 마케팅 전략보다는 업계의 전문적인 지식이 더욱 중요한 경우도 있을 수 있지요.

하지만 마케팅은 소비자가 존재하는 모든 비즈니스에서 어떠한 형태로든 반드시 일어나는 과정입니다. 또한 마케팅 프레임워크가 커버할 수 있는 비즈니스의 영역은 대부분 중심적인 비즈니스 행위일 경우가 많지요. 즉, 자금조달 계획이나 주요 인재 채용전략 등 마케팅으로는 커버할 수 없는 사업계획의 몇몇 파트들을 제외하면, 마케팅 계획은 사업계획서의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내용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론적으로 어떤 도구를 사용하든 비즈니스를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은 같습니다. 자신에게 편하고 효과적인 도구를 사용하여 자신의 비즈니스 계획을 세워가는 것이겠지요. 그것이 아마 창업자 여러분이 경영자로서 내리는 첫 번째 비즈니스 판단(Business Decision)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이 글에서는 의도적으로 창업에 관련된 여러 가지 부분, 예를 들면 어떻게 자금을 조달할 것인지, 사업계획서 작성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등을 제외하고 되도록이면 마케팅 전략만을 중점적으로 다룰 것입니다. 대부분의 창업이 마케팅 전략 수립보다는 그것의 실행, 그리고 그 밖의 여러 가지 일들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것을 감안하면, 김필립의 미래는 적어도 일반적인 창업자분들의 미래보다는 편안할 듯합니다.

모든 창업자분들의 건투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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