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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bbin Chang Jul 09. 2021

고객의 니즈(Needs)

둘째 날: 가치의 창출 (Value Creation)


백만 명이 그럭저럭 좋아할 만한 것이 아니라, 백 명이 진심으로 사랑할 무언가를 만들어라. (브라이언 체스키, 2013)


Ep.6: 고객의 니즈(Needs)


장아라를 만나고 난 후 김필립은 며칠 동안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시작했다. 하루 종일 오로지 스왓과 4C만을 생각하다 보니 눈만 감으면 사각형과 네 개의 고리가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루 종일 생각해본들 상자와 원은 장아라가 노트를 보내준 그날 아침과 비교해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



장아라를 만나기 전 종이에 써놨던 세 가지가 이제는 스왓이라는 그럴싸한 박스 안에 들어가 있다는 것만이 유일하게 달라진 점이었다. 대체 어떻게 저 수많은 상자들과 원을 채워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기회라면 요즘 비트코인이 오르는데 그게 기회인가? 아니, 다시 떨어진다니까 기회가 아니라 위협인가? 아니야, 아니야. 사업이랑 상관이 없는 건 써봤자 의미가 없다며. 아, 그럼 비트코인 가지고 사업을 하면 되나...? 뭘 하지? 잠깐, 애초에 그거 프로그래밍인데 하긴 뭘 해. 당당히 특별한 기술이 없다고 써놓기까지 하고서. 후... 잠깐 놔두고 4C를 먼저 볼까…? 회사, 고객, 경쟁사… 아 진짜 뭘 할지 알아야 고객이고 경쟁사고 있는 거지! 답답해 죽겠네!’


‘상자를 채우는 건 중요한 게 아니다’라는 말을 떠올리며 답답한 마음을 다스리고 차분히 다시 생각하다가도 결국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자신을 깨닫고 김필립은 분통이 터질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장아라를 만나고 3일째 되던 날, 수업이 끝났는지도 모르고 빈 교실에서 멍하게 생각에 잠겨 있다 정신이 든 김필립은 결국 핸드폰을 꺼냈다.


‘누나, 어디서부터 생각해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어. 계속 뱅글뱅글 돌기만 하고 아이디어 같은 건 안 떠올라. 이렇게 생각하는 거 아닌 거 같아.’


반쯤은 포기한 기분으로 카톡을 보내 놓고 김필립은 예의 동네 바로 향했다. 오늘 같이 마음이 답답할 때는 역시 맥주나 한 잔 하면서 생각을 해봐야 했다.


“그래서 비트코인으로 제가 뭘 할 수도 없고 미치겠다 이 말이죠.”

“자네 오늘 말이 많구먼. 허허, 뭔가 꽤나 답답했던 모양이야?”


벌써 두 병째 놓여있는 빈 병을 옆으로 치우고 새로운 하이네켄 병을 따며 김필립은 계속 얘기했다.


“어휴 말도 마세요. 며칠 동안 말도 몇 마디 안 했다고요. 아무튼 그래서 문제는, 아.직.도. 뭘 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사장님 뭔가 아이디어 없으세요? 그날 같이 들으셨잖아요.”

“아니, 이 세상에 단 하나도 상품이 아닌 게 없는데 뭘 해야 될지 모르겠다니 그게 무슨 해괴한 소린가? 자네가 하고 싶은걸 고르면 되지.”

“아니, 그러니까 그걸 모르겠다고요. 그래, 맞다. 사장님은 어쩌다가 바를 하기로 결정하신 거예요?”

“뭐 살다 보니 어쩌다...”

“아휴, 좀 잘 좀 가르쳐 주세요! 왜 다들 나를 괴롭히려고 그러는 거야.”

“허허, 아니 뭘 옛날 얘기를 쑥스럽게 꺼내라고.”

“아 좀, 인생 후배 구원해주시는 셈 좀 치고!”


바텐더는 허허거리며 바 안쪽으로 들어가 따뜻한 물을 한 컵 가져왔다. 살짝 김이 나는 물을 천천히 한 모금 마시고 나서, 초로의 바텐더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바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건, 그래, 벌써 한 30년 가까이 됐구먼. 어쩌다가 일본에 놀러 갈 일이 있었지. 호텔에서 일하던 때라 이런저런 서비스업에 관심이 많았는데, 긴자에 있는 바들이 유명하다는 얘기를 듣고 한번 들어가봐야겠다고 생각했지. 거기서 보고 느꼈던 바의 분위기에 심취했던 것 같아. 그게 너무 좋아서 한국에서도 이런 걸 만들어야겠구나 했던 거지.”

“아, 저도 만화책 같은 데서 본 적 있어요. 일본 긴자의 바가 유명하다고. 역시 한국에 별로 없는 고풍스러운 바라든지, 정통 칵테일 같은 걸 만드는 바를 들여오신 거군요.”

“아니, 아니야. 자네도 보면 알겠지만 전혀 고풍스럽지도, 정통 칵테일을 만들지도 않지 않나. 내가 본 것은 그쪽이 아니네. 손님 쪽이야. 물론 술도 맛있었고 바텐더들의 서비스도 좋았지만, 그것보다는 손님들이 편안하게 즐기는 모습, 세련되고 우아한 느낌, 그 도심 한가운데 있는데도 일상에서 벗어난 듯한 기분이 좋았다네. 막 일을 끝내고 왔을 손님들이 마치 다른 차원에라도 온 듯이 유쾌하고 즐거워하는 그런 분위기. 꼭 테마파크처럼 다른 세상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었지. 그러고 보면 호텔에 취직한 것도 그랬던 것 같네. 나의 서비스를 받고 기뻐하는 손님들의 모습이 좋았던 게 호텔에서 일했던 이유였던 것 같군. 그러다 보니 이렇게 제대로 만드는 것도 없는 별 볼 일 없는 바가 되고 말았는지 모르겠네만.”

“무슨 말씀이세요, 이렇게 좋은 바가 어디 있다고.”

“그래, 내가 한 가지 자네한테 조언을 해줄 게 있겠군.”

“네, 꼭 좀 해주세요.”

“손님을 생각하게. 나도 그렇게 시작했던 것 같아. 손님들이 원하는 게 뭘까, 어떻게 하면 손님들이 좋아할까, 어떻게 하면 손님들이 들어올까, 어떻게 하면 손님들이 다시 올까. 내가 마케팅은 책 몇 권 읽고 어디서 주워들은 얘기 밖에는 없지만, 마케팅도 사업에 대한 이야기니 손님에서 시작하는 것은 틀리지 않을 걸세.”

“손님에서 시작한다라... 그런데 저는 아직 손님이 없는데요? 아무것도 팔 게 없어서. 하하.”

“손님이 없다니, 이 사람아. 방금 전에도 얘기했지 않나. 이 세상에 단 하나도 상품이 아닌 게 없는데 손님이 없다니. 자네도 손님이고 나도 손님이야.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손님이네. 명심하게. 자네는 자네가 팔 수 있는 것이나 팔고 싶은 것을 파는 게 아니네. 손님이 원하는 것을 파는 것이지. 자네가 손님이라면 어떤 것을 사고 싶겠나? 자네 친구들이라면 어떤가? 부모님이나 친척들은 어떤가? 어떤 것을 사고 싶어 하고, 어떤 점에서 불편을 느끼는지 잘 생각해보게. 거기에 힌트가 있지 않을까 싶어.”


내가 팔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친구가 사고 싶어 하는 것. 김필립은 무언가 머리가 확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타이밍 좋게 퇴근한 회사원 몇 명이 바에 들어왔고, 바텐더가 새로 온 손님을 맞는 동안 김필립은 다시 노트를 꺼내 뭔가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지. 이렇게 써 놓으니까 뭔가 보이네.’


김필립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자기가 써놓은 것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사업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고 세달 만에 두 번째로 써놓을 만한 무언가가 나온 것이다. 소비자의 입장에 서서 소비자들은 어떤 것에 관심이 있을까를 생각하니 길이 보이기 시작하는 듯했다.


‘좋아. 옷은 공통의 관심사겠지. 다이어트랑 운동은 어느 정도 겹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옷하고 운동이면... 운동복? 뭐, 그런 비슷한 거라면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아니, 게임, 화장품, 여행, IT기기 이런 건 애초에 내가 뭘 할 수가 없잖아...?’


고객의 관심사 중, 자신이 할 수 없는 것과 해볼 만한 것들의 리스트를 정리해 나가자 김필립은 점점 머릿속이 정리되어가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신발도 생각해보면 패션의 일종이잖아. 아니, 사실 운동도 다이어트도 마찬가지네. 다 패션에 관심 있으니까 몸을 만드는 거지. 20대에 건강 챙기려고 하는 운동...이 없진 않아도 아무래도 대부분은 몸 만들기잖아? 잠깐, 그러면 이렇게 그리면...’



오오오! 고객을 생각하는 자에게 영광 있으라! 김필립은 드디어 무언가가 제대로 채워져 가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아직 구체적이진 않은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암흑과 같았던 지난 며칠 간의 제자리걸음에 비하자면 너무나도 큰 한 발이었다.


‘드디어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아!’


마지막 남은 다섯 병째의 맥주를 들이켜고 김필립은 기분 좋게 바를 나섰다. 내일은 학교에서 이것저것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을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김필립의 핸드폰에서 문득 메시지 알림의 진동이 느껴졌다.


‘고객을 알면 마법을 알게 되지.* 고객이라는 것부터 생각해봐!’


장아라에게서 온 카톡 메시지가 김필립의 마음에 확신을 안겨주었다.


*“Know the user, know the magic, connect the two.” (Steve Vranakis, 2015)



고객의 니즈

맨 처음 Episode 1에서 마케팅의 정의를 논할 때 ‘가치(Value)’와 ‘고객(Customer)’이라는 언급을 한 적이 있습니다. 첫째 날 밤의 김필립은 아직 가치나 고객에 대한 개념이 잡히지 않아 구름 위에 떠있는 듯한 느낌으로 장아라가 설명하는 고객이나 가치에 대해 일단 이해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요. 하지만 고객이나 고객의 가치라는 것이 사실 그렇게 구름 위에 떠있는 존재가 아님을 깨닫는 것이 오늘 밤의 김필립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본문에서 사장님이 말씀하셨듯, 현대의 인간 사회에서는 단 하나도 상품 혹은 서비스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앉아 있는 의자나 계시는 건물은 물론이고, 입고 있는 겉옷부터 속옷, 오늘 바른 화장품, 먹은 음식, 마시는 물이 생수여도 수돗물이어도 모든 것들이 다 누군가의 상품이며 서비스입니다. 심지어 여러분이 지금 들이마시는 공기까지도 어떤 형태로든 관리되거나 정화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여러분은 지금 이 순간, 매 순간순간마다 무엇인가를 소비하며 누군가의 고객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멋진 용어를 사용하며 ‘고객의 니즈(Customer Needs)’라는 말을 쓰고 있지만, 그 뜻과 본질은 바로 여러분이 매 순간 느끼고 사용하고 아쉬워하는 어떤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바꾸고 개선하여 소비자에게 전달하느냐가 바로 가치 창출인 것이지요. 다시 한번 사장님의 말씀을 빌자면, 여러분이 원하는 것 혹은 팔 수 있는 것을 판매하는 것은 마케팅이 아니라 세일즈입니다. 물론 특정한 조건이나 상황이 맞아떨어진다면 좋은 전략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자본이 없고 기술이 없다면 그러한 상황에 있을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여러분이 충족시키고자 하는 소비자의 니즈는 무엇입니까. 어떻게 그것을 해석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시겠습니까. 기억하세요. 비데를 개발한 사람은 분명 화장실에서 휴지를 뜯으며 소비자의 가치를 창출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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