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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bbin Chang Oct 19. 2021

랑콤, 키엘, 로레알이 다 같은 회사라고?

STP와 브랜드 포트폴리오

유명 백화점의 1층은 언제나 가장 화려하고 눈부신 리테일의 격전장입니다. 내로라하는 브랜드들이 저마다 화려하게 매장을 꾸미고 백화점에 들어오는 손님들을 맞이하지요. 백화점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 화려한 격전지의 주인공은 화장품 브랜드들입니다. 화려한 색상과 아름다운 모델, 매혹적인 향기까지. 화장품에 관심이 없더라도 백화점에 들어오는 모든 고객들의 마음을 한껏 들뜨게 하는 수많은 브랜드의 향연은 아름답기 그지없지요. 하지만 이 수많은 브랜드의 대다수가 같은 회사의 형제자매 브랜드라는 사실은 모르는 고객들이 많습니다.


세계 1위의 화장품 회사인 로레알은 랑콤, 키엘, 로레알, 비오템 등 유명 화장품 브랜드를 포함해 무려 35개의 브랜드를 산하에 거느리고 있습니다. 2위인 에스티로더 역시 바비 브라운 등 24개의 화장품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지요. 대형 글로벌 7개사가 소유한 화장품 브랜드가 180개를 넘는다고 하니, 백화점 한 층 정도는 서너 개 회사가 메우고도 충분히 남을만한 숫자입니다. 이렇게 수많은 브랜드를 거느리는 것은 화장품 전문기업뿐만이 아닙니다. 존슨 앤 존슨, 피앤지, LG생활건강 등은 화장품 브랜드도 소유하고 있지만 오랄비나 페리오 같은 생활필수품 브랜드들도 다수 보유하고 있는 회사들이지요. 브랜드 수집욕(?)은 명품 회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럭셔리 브랜드 루이뷔통은 LVMH라는 회사의 브랜드입니다. LVMH는 펜디나 마크 제이콥스 등 럭셔리 어패럴 브랜드는 물론이고 헤네시나 돔 페리뇽 등의 주류 브랜드도 보유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티파니까지 합병하여 주얼리 업계까지 본격적으로 손을 뻗치기도 했습니다. 이 정도라면 뉴스에 가끔 나오는 전화번호와 메뉴는 다 다르지만 사실은 한 집이었던 배달전문 음식점이 떠오를 정도입니다. 전화번호만 바꿔서 전단지를 찍어내면 되는 음식점과는 달리, 수많은 브랜드를 제대로 관리하려면 엄청난 노력과 비용이 필요할 것은 자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회사가 이렇게 수많은 브랜드를 보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전문가용 제품군을 제외하고도 3개 카테고리,  35개 브랜드가 속해 있는 거대한 화장품 제국 로레알입니다. 


브랜드와 표딱지의 공통점과 차이점

마케팅, 특히 브랜드가 강조되기 시작하면서 의외로 잊히고 있는 개념이 있습니다. 바로 브랜드란 ‘상품을 구분하기 위해 만든 표시’라는 것이지요. 똑같은 비누이지만 나의 상품과 타사의 상품이 다르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생긴 것이 바로 브랜드라는 개념입니다. ‘다르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브랜드를 붙이기 시작했다면, 당연히 붙여놓은 표딱지만 달라서는 아무도 다르다는 것을 믿지 않겠지요. 새로운 성분을 개발한 우리 비누가 더 잘 닦인다는 이야기가 브랜드에 포함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경쟁사도 바보는 아닐 테니 두 손 놓고 더 안 닦이는 비누를 팔고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서로 잘 닦이는 비누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어느 순간 기술의 발전이 한계에 달해, 기능적인 면으로는 더 이상 다를 것이 없게 되어버립니다. 때문에 약간의 상품 변형을 주고 감성적인 이미지를 더해 브랜드를 구분하기 시작하지요. 남성을 위한 비누, 혹은 천연 비누 등 다양한 각도에서 상품을 해석하고 그 느낌을 브랜드에 담기 시작합니다. 단순히 더 잘 닦이는 비누에서 시작한 브랜드가 이제 ‘보습효과가 뛰어나 건조한 피부를 걱정하는 여성들이 쓰기 좋은 비누’라는 이야기를 갖게 됩니다. 다른 제품보다 보습 성분이 많이 첨가된 것은 물론이고 포장지는 보기만해도 촉촉해질 듯 한 소재에, 누가 봐도 여성을 위한 제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색깔이 사용됩니다. 즉, 브랜드가 약속하는 가치(Brand Promise)가 생기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기능적인 혜택(Functional Benefit)과 감성적인 혜택(Emotional Benefit)이 어우러져 타사의 제품과는 다른 우리만의 특별한 브랜드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 '브랜드가 약속하는 가치'를 어디까지 공유할 수 있는지가 바로 하나의 브랜드로 여러 가지 상품을 내놓을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야 하는지를 구분하는 척도가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유니레버의 ‘도브’라는 브랜드는 샴푸와 컨디셔너, 비누와 바디솝 상품을 모두 전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쟁사인 피앤지는 '펜틴'이나 '헤드 앤 숄더' 등의 헤어케어 상품과 '아이보리' 비누의 브랜드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지요. 도브의 브랜드 약속은 피부나 헤어 양쪽에 모두 적용할 수 있는 ‘보습’인 반면, 펜틴과 헤드 앤 숄더는 전문적인 헤어케어 제품이라는 것이 브랜드의 약속이기 때문에 같은 업계의 비슷한 회사라도 브랜드에 대한 전략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브랜드로 모든 소비자를 커버하라

이렇게만 생각하면 처음 이야기했듯 왜 이렇게 많은 브랜드를 만들어 내는 것인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도브의 예처럼 우리 회사가 전개하고 있는 상품들이 모두 공유할 수 있는 브랜드 약속을 하나 만들어내고, 그 브랜드를 모든 상품들이 공유하면 비용도 절약되고 머리도 덜 아플 텐데 말입니다. 없는 일도 만들어내는 마케팅 부장님의 심술이 도가 지나친 것일까요?


사실 브랜드 전략의 기초는 마케팅 교과서에도 자주 소개되는 STP전략, 즉 세그먼트, 타겟, 포지셔닝(Segment, Target, Positioning)에서 시작됩니다. 우리의 가치제안 (Value Proposition)을 잘 전달하기 위해 시장에 있는 소비자를 전략적 기준에 따라 세그먼트로 나누고, 그중에 우리가 가치제안을 전달할 타겟 세그먼트를 확정하는 것이지요. 그러고 나서 해당 세그먼트에 존재하는 경쟁사들과 비교하여 어떤 차별점을 가지고 우리를 포지셔닝할 것인지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개념적인 요소들과 물리적인 상품들을 통합하여 하나의 상표로 구체화시킨 것이 바로 브랜드입니다. 즉, 브랜드가 타겟 세그먼트에 속한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기능적 혜택과 감성적 혜택, 그리고 동일 세그먼트에 속한 경쟁 브랜드와의 차별점을 정립하는 것이 브랜드의 기초인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같은 샴푸 시장이라도 성격이 다른 여러 개의 세그먼트를 타겟으로 삼는다면, 각 세그먼트의 고객에게 알맞은 브랜드를 개발하여 타사와 다른 가치를 전달해야 합니다. 같은 피앤지의 헤어케어 브랜드라도 펜틴의 경우에는 머릿결을 보호하는 것이 중요한, 여성을 주요 타겟 세그먼트로 하는 브랜드라면, 헤드 앤 숄더는 두피를 전문적으로 케어하는 남녀공용 브랜드로 시장을 나누고 있는 것이지요. 당연히 시장이 크고 소비자의 개성이 다양하여 더욱 많은 세그먼트가 필요하다면, 그 시장을 커버하기 위해 더욱 많은 브랜드가 필요하게 됩니다. 많은 여성분들의 다양하고 화려하며 개성 있는 화장기법과 스킨케어 노하우를 보고 있으면 왜 하나의 회사가 35개의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어야 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지요. 


우리에게 친숙한 브랜드들의 실소유 회사를 알게 된다면 세계를 뒤에서 조종하는 암흑의 손 음모론이 떠오를 지경입니다.*


상품 포트폴리오도 마찬가지겠지만 브랜드 포트폴리오 역시 최소한의 숫자로 최대한 많은 고객을 커버하는 것이 회사로서는 유리한 선택입니다. 비슷한 느낌의 브랜드를 통합하거나 혹은 매각해 버리는 것은 결국 전략적 가치가 떨어지는 브랜드를 정리하여 경영 효율을 높이기 위한 것이지요. 하지만 사람은 저마다 다른 생각과 취향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세상에 단 한 명도 같은 사람은 없기 때문에 시장에는 언제나 새로운 자리가 존재하고 또 생겨나지요. 아무리 꽉꽉 들어차 있어 보이는 시장이라도 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빈자리가 존재하고, 그 수요를 채우기 위해 새로운 브랜드들이 등장합니다. 여러분의 브랜드는 어떤 고객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타겟팅한 고객 세그먼트가 원하는 브랜드의 약속, 그 약속을 달성하는 기능적 혜택과 감성적 혜택이 명확하다면, 여러분의 브랜드도 이 넓은 시장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진은 과거 시점의 예시로 현재의 상황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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