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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버틴 육아, 꿈으로 나아가며

나를 버티게 한 '글쓰기' 그리고 그 매력적임.

by 글쓰는 맘


결혼 생활 중 남편에게 가장 섭섭했던 부분은.

남편이 가장 공감해 주지 못했던 “글쓰기”이다.


남편에게 글쓰기란, 돈도 되지 않고 시간만 낭비하는 생산적이지 않는 일로 보였을 것이다.

글쓰기 공부를 시작한 7년 전 가장 많이 싸웠던 거 같다.

마흔이라는 나이에 영상작가학원을 다니며 글쓰기에 시간을 좀 더 할애했던 시기에 나는 자존감도 바닥으로 떨어지고 눈치 보는 병도 심각해졌다.


돈을 버는 남편은 남은 시간에 보드를 배우고, 킥복싱을 배우고, 대략 1미터짜리 어항에 물고기를 키워도 당당하다.

하지만 육아하는 아줌마는, 애들이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있는 시간. 3~4시간을 쪼개 글을 써도 눈치가 보였다.


"넌 애 키우는 게 너무 쉽지?"

"애 둘 키우는 건 시간이 남아돌지?"


정확히 이렇게 말하진 않았지만, 결혼 중반쯤 싸움이 많았던 시절 남편의 반응이 대략 이랬다.

물론 지금은 이렇게 반응하지는 않지만, 이혼의 위기에 있던 시기에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더 서로의 아픈 부분을 긁었던 거 같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남편이 두 아이와 나를 책임져야 한다는 ‘가장의 무게감’에 짓눌려 서로를 경쟁상대로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남편이 갑자기 짊어진 가장의 무게를 이제는 어느 정도 이해한다.

서로가 상대를 좀 더 존중했더라면 이렇게 오랫동안 싸우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부부 싸움이 격했던 시기.

남편과 시부모님은 나를 돈 달라고 매달려 있는 “기생충”처럼 취급했다.

본인들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나는 그런 느낌을 받았고. 왜 이런 취급을 받는지 그때는 몰랐다.


"늘 감사해해라." 남자들이 돈 벌어주는 것에 늘 감사하라는 시어머님의 가르침에 처음에는 감사함보다는 억울함이 컸다.

늘 잘 못 된 점, 나쁜 점만 꼬집어 바로 세우시려는 단호한 어조로 나를 가르치셨다.

내가 미워서가 아니라 칭찬이 어색한 분들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하지만 그때는, 인정받지 못하는 억울한 존재로 늘 감사해라는 말씀은.

어떤 부분을 감사해야 할지 모르는 강요 같았고 괴로웠다.


‘나도 출산과 육아와 집안일로 힘든데 난 왜 늘 감사해야만 하는 걸까?’


내 일을 포기하고 출산과 육아, 집안일에 온전히 내 시간을 쓰고 있는 것에 대해 한 번도 고맙다거나 고생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는데... 진심으로 억울했다.


그래서 글이라도 쓰고 싶었다.

내가 살기 위한 소심한 반항이었다.


며느리 노릇, 아내 노릇, 어린 두 아이 육아가 너무 버거워서.

내 삶이 너무 벅차서 “글쓰기”를 도피처로 찾은 거 같다.


그때는 내 몸에 산소를 주입하는 간절함이었다.

그 시기 글을 쓰지 않았다면 산후우울증 증세가 심각해져서 큰 병에 걸리거나 이혼을 선택했을 거 같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알 것이다.

글쓰기라는 것의 매력을 말이다.


작가는 아니지만 이제 글쓰기가 삶의 일부인 사람이다.

글쓰기는 삶의 상처를 치유하고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방향을 안내해 준다.

하지만 글쓰기가 주는 이런 매력을 모르는 사람들은. 힘든 육아를 버티며 글을 쓰는 나의 간절함 앞에.

그 시간에 “차라리 애들 공부에 신경 좀 써”라는 말로 쉽게 반응할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에겐 하찮은 행위가 누군가에게는 진정한 간절함이 될 수도 있다.


글쓰기란, 나에게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 내기 위해’ 또는 ‘버텨내기 위해’ 애쓰는 간절한 행위이다.




한국 사람들은 빠른 것을 좋아한다.


누구보다 먼저 누구보다 빨리 어린 나이에 성공을 바라고, 어린 나이에 어떤 반열에 오르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것을 부러워하고 대단히 우러른다.


그런 한국이라는 사회의 흐름에서 마흔이라는 나이에 글쓰기를 시작하고 오십이라는 나이에 생산적이지 않는 행위를 유지한다는 것은. 한심할 수 있다.


남들의 인정을 바라고 시작한 건 아니다.

다만 나만이 느낄 수 있는 ‘만족감’이다.


마흔이 넘어 글을 쓰며 느리게 얻는 것에 대한 엄청난 가치를 알게 되었다.


가끔은 왜? 나는 늦은 나이를 두려워할까? 스스로에게 묻는다.

어쩌면 느린 나이를 두려워하게 만들려는 음모가 아닐까?

왜 세상은 나이가 많으면 포기하게 만들까?


이런 이상한 음모론을 혼자서 생각하며 주먹을 불 끈 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오십이 된 나의 모습이 아련해진다.


벌써 오십이다.

나이만 먹고 뒤돌아 보니 “나”라는 사람을 찾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런 내가, 천천히 뒤돌아 나를 반성하고 천천히 나에게 맞는 옷을 하나씩 찾아가며 ‘글쓰기’라는 것과 ‘독서’에 푹 빠졌다.


삶이란 정답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사지선다형 구조가 아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배운 정답 찾기가 아직도 익숙하다.

어린 시절 정답을 제대로 못 찾으면 늘 혼났다.

쑥스러움이 많은 나는, 교실 뒤에서 손들고 서있는 게 제일 무서웠다.


“맞고 틀림”을 찾고 “누구보다 잘 났고 못났고”를 따지는 법만 배우다가 50이라는 나이가 되었다.


내 삶의 진정한 가치를 찾을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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